▲조성주는 말한다 "증오와 조롱의 언어 대신, 희망과 가능성, 통합의 언어로 나아가야 한다"
참여사회
- 정의당 당대표 선거가 진행되면서 '30대 대표가 탄생하는 건가?' 기대를 품었던 분들이 많았다. 예전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을 했다. 천문학자가 되고자 대학에 진학했으나 다른 별의 일보다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웃음). 학생운동을 남다른 방식으로 하면서 청년유니온 등 이른바 '청년 의제'를 만들어 냈다. 선배들 쫓아다니며 통일운동도 하고 민주노동당 선거운동도 하고 그러다가, 큰 사회변화의 담론을 좇는 운동이 아니라 학생들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운동이 필요하다 싶었다.
군대를 다녀와 보니까 내 주변 친구들의 삶이 너무 힘들더라.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고민하다 등록금 운동을 시작했고, 그게 청년실업, 청년노동의 문제로 이어졌다.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결성, 국회에서의 보좌관 활동, 서울시 노동전문관 활동 등도 모두 그런 고민이 이어진 결과였다. 청년의 문제는 결국 노동조합과 입법, 행정 등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으니까."
- '청년유니온'은 지난 2010년 결성 당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던, 세대를 묶는 노동조합이었다. 조직사업이 어지간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노동조합 조직이 한국에 선례가 없다 보니 정말 막막했다. 그러다 당시 노동연구원 연구원이던 은수미 현 국회의원이 일본의 수도권청년유니온 사례를 일러줘 돌파구를 찾았다. 국회에서 청년실업과 노동 문제를 다루는 의원 보좌관으로 일할 때였는데, 전국을 다니며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설명해도 그게 무슨 노조냐, 시민운동단체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다 김영경, 조금득, 한지혜 등 동료를 얻게 되었다."
- 다들 의구심을 갖던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지금 어떻게 자리 잡고 있나?"출범 당시 조합원은 30~40여 명이었다. 지금은 조합원 1200명, 별도 후원회원 500명 정도의 큰 노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조합원 1000명이 넘는 노동조합이 대한민국에서 20%가 안 된다. 대단한 규모다. 5년의 활동으로 청년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 성장한 것이다."
- 청년들이 이 노동조합과 함께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되지 않는 다음에는 대부분 청년들이 영세한 기업에서 일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수적으로 압도적 다수지만,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노조가 없기 때문에 부당한 노동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 권리를 어떻게 지킬지 막막한 청년들이 먼저 청년유니온을 찾아와 체불임금 등의 문제를 상담한다. 유니온이 권리를 일러주고 소송을 대리해주고 하면서 청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면서 조합원이 되곤 한다.
학교에서 한번도 배워본 적 없는 노동법 공부모임 등 조합원들끼리 공부도 한다. 청년실업자들이 집에 혼자 있지 않고 유니온에 와서 비슷한 고민을 가진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큰 효과다. 실패를 거듭하며 자책하고 고립하기 시작하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다. 청년유니온 초창기에 서로 대화하기도 힘들어 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친구들이 참 많이 합류했다. 유니온 친구들은 요즘도 고시원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은 청년들의 뉴스를 접하면 자기 일처럼 아파한다."
- 청년들의 목을 옥죄는 현실을 '닫힌 민주주의'라고 표현하던데?"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그런 청년들이나 영세자영업자 분들을 대변하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게 문제임을 깨달았다. 독재와 싸우던 '요새'에서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진출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토론과 정치 공간이 열렸다. 하지만 어느새 이 광장이 점점 좁아지고 닫히면서, 사람들을 광장 밖으로 조용히 추방하기 시작했다. 공정하게 대변되지 못하는, 삭제된 목소리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아졌다. 나는 그런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었다."
- 대의 민주주의의 실패는 정당정치의 실패와도 연결되는 문제 아닌가? 어떻게 정치를 생각하게 되었나? "청년유니온 1기 집행부끼리 약속한 게 있다. "우리 중 한 명은 반드시 정치를 한다!" 법과 제도가 많은 걸 바꾼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장집 교수, 박상훈 박사 등의 책을 보고 강의를 쫓아다니며 정치의 힘, 민주주의의 소중함, 1인 1표의 의미 등을 배웠다. 그러면서 학생운동했던 선배들을 보니 다들 개인으로서, 스타로서 정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직'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정당의 의미도 새로이 깨달았다. 그렇게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목표 아래 정당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보다 더 젊은 친구들이 정치를 하고 싶다면서 스타 연예인 되는 거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사실 대한민국 정치가 좀 그렇다. 다른 분야에서 계속 수혈되는 구조이니 말이다. 하지만 난 늘 그들에게 말한다. '네가 대변하고 싶은 문제, 해결하고 싶은 갈등을 먼저 찾아라. 그리고는 어느 당이 적합한지 찾고, 그 다음 당직자가 될지 정치인이 될지를 결정해라.'"
신입당원 아닌 40대 초반에서 열렬한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