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중학교 졸업식장에서의 지원
최경숙
남들은 위장전입까지 하며 들어가고 싶어 하는 목동의 중학교에 산골 아이 지원이가 전학한 것은 중3 개학을 앞둔 날이다. 당시 나는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서울로 인사교류를 신청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누가 서울에서 지리산 산골로 내려오랴 싶었다. 그래서 정작 맞교대를 원한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나는 당황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지원아, 지난번에 엄마가 서울 가고 싶다고 신청해 놓은 것 있지? 엄마랑 직장을 바꾸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그 사람이랑 바꾸게 되면 우리는 서울 가서 살아야 하는데, 지원이는 어때?"사실 지원이가 가고 싶지 않다면 포기할 생각으로 물어본 것이다. 지원이 역시 막연하게 생각했던 서울로의 이사가 현실로 다가오자 평소와는 달리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음, 좀 겁나는데."그 말을 듣고 내가 말한다.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지원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된다. 중2 같은 반 친구 중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과 헤어진다는 아쉬움은 컸지만, 가끔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기 위해 방문했던 도시, 서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살아보고 싶은 곳이 있고 기회가 왔는데 그곳에 가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지원이의 얼굴에는 마침내 결심이 섰을 때 짓는 특유의 표정이 떠오른다.
"좀 겁나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어요."그렇게 우리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서울에 오게 된다. 목동의 집은 인사교류 상대방이 우리의 사정을 알고 마침 유학을 가느라 집을 내놓은 친구를 소개해주어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들어간 목동의 중학교에서 새 교복을 입고 전학생으로 소개를 받은 첫날, 지원이는 말 한마디 못 하고 집에 온다. 우선 입을 열면 튀어나올 사투리 때문에 입 벙긋하기가 두렵다. 엄격한 복장검사를 했던 지방 소도시의 여중생들만 보다가 긴 머리를 그대로 늘어뜨리고 화장도 살짝 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에도 적응이 안 된다. 집에 온 지원이는 아이들이 다 무섭다며 의기소침해 한다.
다음 날, 지원이는 용기를 내어 새 친구를 물색해본다. 3학년 새 학기라 아직 반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한 듯한 여자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한다. 마침 친한 친구들과 반이 갈려 쓸쓸해 하던 그 친구도 지원이가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지원이는 친구를 사귄다. 지원이는 드라마로 일본어를 배운 실력을 살려 외국어를 익히듯 서울말을 익힌다. 친구들을 따라 화장을 하는 것도 배운다. 지하철 타는 법도 배우고 주말에는 홍대에 나가 맛집이라는 것을 찾아다니기도 하며 지원이는 점점 행동반경을 넓혀간다.
서울하고도 무려 목동이다. 어렵게 확인 조사라는 관문을 통과하여 들어간 학교는 어마어마한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을 것 같지만.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 다니는 평범한 학교다. 선생님들이 좀 더 상냥하고 아이들이 좀 더 자유분방할 뿐이다. 지원이는 예상외로 목동의 중학교에서 내신성적이 오른다. 아이가 마음잡고 열심히 공부해서 오른 것이라면 좋으련만, 실상은 아니다. 남녀공학에서는 남학생들이 소위 '바닥을 깔고' 있었다. 지원이가 아무리 평소대로 공부를 안 하고 시험을 못 쳐도 그 부동의 바닥권을 비집고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지원이의 성적은 마침내 최하위권에서 그냥 하위권이 된다.
뜻밖의 것은 하나 더 있다. 지원이는 학교에서 꽤 유명인사가 된다. 사투리 때문이다. 다중 언어를 쓰는 아이처럼 지원이에게 사투리는 하나의 자산이 된다. 지원이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저 아이가 그 '사투리'야"라고 속삭인다. 거의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게 된 지원이가 무심코 사투리를 쓰면 아이들은 깜박 넘어간다. 어쩌다 엄마(나)에게서 전화가 오는 순간은 가장 적나라한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원이가 "응, 엄마."라며 전화기를 들면 주변의 아이들은 "앗싸!"라며 숨을 죽이고 통화가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전학생으로 아이들 앞에 선 경험만 세 번. 산골과 소도시, 서울 모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흔치 않은 경력을 소유하게 된 지원이는 그만큼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했다. 이 글을 쓰며 새삼 궁금하다. 그때 서울에 오기로 한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문자를 보낸다. 지원이의 답장이 온다.
"서울에 오기로 한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아요. 작은 틀에서 붓 휘두르는 방법조차 몰랐던 아이가 서울이라는 커다란 도화지 위에서 붓을 가지고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선택했어요. 행복해지기로, 꾸밈없이 나를 드러내기로요."결국, 어디서 사느냐의 선택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의 선택이다.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이 16살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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