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에 점령당한 마라도
류외향
힘들었지만, 아이에게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다 마라도가 나를 많이 힘들게 했지만, 마라도여서 감사한 것도 있었는데, 바로 아이에 관해서다. 달리 천혜의 섬이라고 부르겠는가. 하늘이 내린 자연, 깨끗한 바다와 대기. 아이에게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그리고 마라도의 모든 생업이 오후 4시 30분에 끝난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막배가 그 시간에 떠나고 나면 섬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즈넉해지고, 낮 동안 돈과 사람들에 휩싸여 들떠 있던 섬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오후가 온다.
가게 마무리를 한 뒤, 남편은 오토바이 타고 낚시를 떠나고, 나는 30여 분 꿀잠에 빠졌다가 산책을 나갔다. 우리 집 개들에게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라도 하얀 개들이 언제 나타날까 늘 경계를 해야 했지만, 좀 익숙해지니 그들이 자주 다니는 길과 시간대가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해져 처음보다는 수월해졌다.
태교의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나는 그 중에서 산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산모가 걸으면 양수가 출렁이고, 출렁이는 양수는 아이의 피부세포 하나하나를 마사지한다. 태아 때의 피부세포는 제2의 뇌세포라고 한다. 자극이 많을수록 태아의 뇌도 발달하고, 장기를 비롯한 온몸의 기능이 활발해지고, 그만큼 건강해진다. 그리고 산책은 산모의 몸도 건강하게 만들고, 출산할 때 그만큼 덜 힘들어진다. 김순선 원장님은 언제나 많이 움직이라고 당부했다.
나는 매달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가면서 가끔은 친정 엄마를 만난 듯 짜장면 파는 일이 힘들다고, 남편이 너무 부려먹는다고 하소연하곤 했는데, 웬걸, 원장님은 내 편이 아니었다. 되려 남편한테 일을 더 시키라고, 애 나오기 직전까지 일을 시키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산모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게 자연주의 출산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무리 나와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나는 그 대목에서 무척 섭섭했고, 남편은 환호작약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라는 존재, 아내라는 존재, 거기다 산모라는 존재에 대해 챙기고 아끼고 보살피는 일에 손톱만큼도 소질이 없는 남편은 천군만마를 만난 듯 기뻐했다. 배 부른 아내 부려먹는 일이 '합법적'이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하여 나는 자연스럽게 쉼 없이 양수를 출렁이며 몸을 움직이는 훌륭한 산모가 되었다. 원장님 하명대로 출산 예정일을 3일 앞두고 마라도를 나오기 직전까지 오름처럼 부푼 배를 내민 채 면을 뽑고 삶고 건지고 그릇에 담는 일련의 과정들을 해내었다.
물론 나는 우리 엄마에게 아주 건강한 몸을 물려받아 체력이 보통이 아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왕년에 무슨 운동(스포츠)이라도 했냐고 물을 정도로 근육질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삭이어도 막노동을 방불케 하는 가게 일을 해낼 수 있었고, 그 이후로도 가게를 세 번이나 옮겨서 뜯어 고치는 진짜 막노동도 한 번 앓아누운 적 없이 다 해내었다. 결국 내 일복은 타고 났다는 얘기다.
능력도 되고 체력도 되고, '멀티 플레이'도 되는 몸이다 보니, 게으름대마왕 남편과 지지고 볶고 해도 결국 모든 일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랑처럼 들리지만, 이건 결코 자랑이 아니다. 몸이 받쳐준다고 워커홀릭이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일이 좋아서 한 게 아니라, 게으름대마왕 남편 때문에 밀린 일이 내 몫으로 떨어지니, 어쩔 수 없이 일복이 넘치게 되었다는 하소연이다.
짜장면에서 MSG 뺄 생각? 아무나 못 한다 아이로 하여금 발을 내딛기 시작한 또 다른 세계의 중심에는 짜장면이 있었다. 내 아이에게 먹일 수 없는 첫 번째 블랙리스트 목록은 MSG, 즉 L-글루탐산나트륨이었고, 그것이 내 아이뿐만 아니라 손님이라는 불특정다수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또한 그것이 진짜 요리사의 자세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단순명확한 개념이지만, 짜장면에서 MSG를 뺄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나 못 한다.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애초에 그런 발상조차 하기 힘들다. 몇 년씩 그렇게 배우고, 몇 십 년씩 그렇게 요리를 해오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철옹성이다. 남편에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요리 스승이 없기 때문이었다. 남편도 누군가에게 요리를 전수받았다면 MSG를 뺀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후에 하나씩하나씩 빼게 된 다른 모든 첨가물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MSG가 왜 나쁜가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아직도 그것이 나쁘냐, 안 나쁘냐는 논란이 팽배하고, 그 제품 하나로 막대한 이윤을 남기며 덩치를 키워온 한국의 해당 기업은 미국의 FDA(식품의약국)에서 일정량을 평생 먹어도 해가 없다고 했다며, MSG를 모유와 동급으로 선전하는 황당무계한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8년 동안 먹거리와 첨가물 공부를 하면서 결론을 내린, 쉽고 간단한 판단 방법은 '어떤 식품이나 물질이 논란이 있다면 그것은 그 식품이나 물질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방증이다'라는 것이다.
시금치가 몸에 해롭냐, 그렇지 않냐는 논란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그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은 물질로, 특히나 인공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MSG가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아미노산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즉, 화학적 정제 또는 추출이라는 인공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사탕수수에서 MSG만 골라서 먹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논란이 있다면, 일단은 멀리하고 볼 일이다.
모유나 멸치 속에 든 천연 MSG는 비타민, 미네랄, 섬유질, 아미노산 등과 결합된 복합체이지만, 인공조미료인 MSG는 유리(遊離, free)된 형태이다. 복합체의 형태를 띤 MSG는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대사되어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유리된 형태의 MSG는 혈액 속으로 흘러들어가 뇌세포 또는 신경세포를 공격한다. 가장 취약한 것이 신경세포(뉴런)인데, 신경세포를 과도하게 흥분시켜 파괴하기 때문에 신경과학자들은 MSG를 '흥분독소(Excitotoxin)'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화학자들이 전문가라는 딱지를 붙이고 나와서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자생물학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즉, 모든 것을 분자 단위로 이해하면 모유나 멸치 속의 MSG나 유리된 MSG나 똑같은 것으로 보인다. 인체도 결국 분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 MSG를 먹으나, 저 MSG를 먹으나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분자보다 더 작은 단위인 전자, 양자, 중성자의 수준에서 다루는 양자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분자생물학은 자가당착적인 학문으로 빠지기 쉽다. 분자생물학에 따르면 GMO(유전자조작생물체) 역시 분자를 섭취하는 것일 뿐이니, 해 될 게 없다는 식이다. 이 얼마나 가당찮은가. 이쯤에 이르면 분자생물학은 하루 빨리 폐기해야 하는 분야로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툭하면 미국의 FDA를 들먹거리는데, 이것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FDA가 공신력이 있는 기관인가? 절대 아니다.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포진해 있으면서도 GMO조차 실험하지 않고 기업에서 내민 실험보고서만 보고 승인을 해주는 곳이다. 검증 작업도 안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회전문 인사 때문이다.
'회전문 인사'란 호텔 현관문으로 주로 사용되는 '롤링 도어(rolling door)'에 빗댄 것으로 인사이동이 정부와 기업 간에 돌고 도는 것을 뜻한다. 정부 관료로 있던 사람이 기업의 CEO나 이사로 이동하고, 기업의 임원으로 있다가 정부 고위 공직자로 이동하는 숱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아스파탐을 예로 들어보자. 아스파탐은 특허 만료 이전에는 몬산토의 자회사인 셜(Searle) 사가 대량 생산을 했었는데, 정신분열, 뇌암, 알츠하이머 등을 유발하는 유해 물질로 판명이 나서 FDA에서 76년까지 승인을 거부했었다. 그러다 아버지 부시 정권 하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던 도널드 럼스펠드가 셜 사장으로 옮긴 77년에 전격적으로 승인이 되었다.
럼스펠드는 아들 부시 정권 때도 국방장관 자리를 꿰찬 이력이 있어 회전문 인사 중에서도 해외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FDA이고, 이런 엉터리 기관에서 면죄부를 준 MSG를 정말로 해가 없다고 믿고 안심하고 먹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만성대장염의 원인, MSG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