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설리번의 기록 <헬렌 켈러는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겉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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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7살 어린 소녀 헬렌 켈러는 어떻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잘 아시다시피 헬렌 켈러는 장애를 극복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헬렌 켈러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입으로 말할 수도 없는 세 가지 장애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서 시청각장애인으로는 최초로 학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작가이면서 사회주의 사회운동가로 활동하였습니다. 장애인의 권리와 여성 인권, 사형제 폐지, 아동 노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 등에 참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를 이겨 낸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헬렌 켈러를 기억하면서도 그녀가 사회주의 계열의 사회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던 그녀가 읽고, 쓰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앤 설리번이라는 가정교사를 만나 그녀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많이 알고 있지만, 어떻게 가르쳐서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읽고, 쓸 수 있게 하였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생후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는 7살에 만난 설리번 선생의 헌신과 자신의 강한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고는 20살에 대학에 입학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난 더는 벙어리가 아닙니다" 라고 말입니다. 앨 설리번은 어떻게 헬렌 켈러를 가르쳤을까요?
앤 설리번이 헬렌 켈러를 가르치면서 가졌던 원칙은 "그녀의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정상인과 차별을 두지 않고 가르치는 방식을 늘 연구하고 고민하였던 것입니다.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 앤 설리번 역시 시각장애인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였던 앤 설리번은 시각장애인학교에서 철자법을 배우고 점자를 읽을 수 있게 된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시력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앓았던 결막염 때문에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공부하였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시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한 때 맹인에 가까운 시절을 보냈고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헬렌 켈러의 선생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앤 설리번은 1886년에 퍼킨스 학교를 졸업하고 1887년 3월 3일 헬렌 켈러 가족이 사는 투스컵비아에 도착하여 그녀의 가정교사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앤 설리번의 기록을 엮은 <헬렌 켈러는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는 헬렌 켈러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퍼킨스 시각장애아 학교 기숙사 여사감인 홉킨스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중심으로 그녀가 쓴 논문과 보고서를 엮은 책입니다.
헬렌 켈러의 집에 도착한 첫날, 앤 설리번은 퍼킨스 시각장애아 학교 학생들이 보낸 인형을 주면서 'd-o-l-l'이라는 글자를 그녀의 손바닥에 써 줍니다. 앤 설리번은 그날부터 매일매일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단어를 쓰기 시작합니다. 헬렌 켈러 스스로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쉼 없이 반복하였습니다.
앨 설리번을 만날 때 일곱 살이었던 헬렌은 생후 1년 8개월 때 심각한 병을 앓고서 청력과 시력을 잃은 뒤 그때까지 어떤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한 마디로 천방지축이었고 망나니처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왔던 것이지요.
집안사람들 모두가 헬렌이 늘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고, 그녀가 떼를 쓰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헬렌을 가르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서는 '푸른 담쟁이 집'이라고 부르는 외딴집에서 단둘이 생활하기도 하였더군요.
2주간 외딴집에서 가족과 격리되어 생활하는 동안 앤 설리번과 헬렌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야생동물은 아이로 변했습니다." 아이와 신뢰를 회복한 앤 설리번은 끊임없이 아이의 손바닥에 영어 철자를 쓰면서 사물의 이름을 반복해서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헬렌에게 단어를 가르쳐주는 시간이 이때뿐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저는 하루 종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아이의 손에 써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이는 아직 그 단어가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자연에서 뛰어놀며 손바닥 글씨로 가르쳤다앤 설리번은 단어를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구슬 꿰기, 바느질, 코바늘뜨기 등을 가르치고, 집 밖으로 나가 자연에서 뛰어노는 일에도 정성을 기울입니다. 정해진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아이와 놀이를 하면서, 아이와 산책을 하면서 늘 사물을 가르친 것이지요.
어느 날 헬렌 켈러는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는 것과, 수화 문자가 자신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의 열쇠라는 걸 깨닫는 경험을 합니다. 예컨대 'm-u-g'와 'm-i-l-k'를 써 놓고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똑같이 마시는 시늉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날 아침 세수를 하다가 'w-a-t-e-r'라는 단어를 알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착안한 앤 설리번은 펌프질을 하면서 헬렌에게 컵으로 물을 받도록 해놓고, 컵에 물이 넘치는 순간 그녀의 손바닥에 'w-a-t-e-r'라고 써줍니다.
"찬물이 쏟아져 컵에 물이 가득 찼을 때 헬렌의 손바닥에 'w-a-t-e-r'이라고 썼죠. 그 단어가 손바닥에 힘차게 쏟아진 찬물의 감각과 딱 맞은 것이 아이를 깜짝 놀라게 한 모양입니다. 아이는 컵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어요""환한 표정이 아이의 얼굴에 나타났죠. 아이는 몇 번이나 'w-a-t-e-r'이라고 썼어요. 그리고 바닥에 떨어뜨린 것의 이름을 묻고, 또 펌프나 격자 울타리를 가리키고, 갑자기 뒤돌아보면서 제 이름을 묻는 겁니다. 저는 'teacher'라고 썼어요."이날의 경험으로 비로소 엔 설리번 선생이 자신의 손바닥에 쓰는 글씨가 사물의 이름을 나타낸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의 이름을 배워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깨달음에서 배움이 시작이런 깨달음을 경험한 후에 아이는 "매일매일, 아니 거의 매시간 발전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고 합니다. 모든 사물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하였고, 다른 사람에게 단어를 써주고 싶어 하거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철자를 가르쳐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겁니다. 아울러 그전까지 사용하던 신호나 몸짓을 그만두고 새로 배운 단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규칙적인 수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저는 헬렌을 딱 2살짜리 아이 다루듯이 다루고 있죠. 아이가 아직 쓸모 있는 용어를 습득하지 않은 시기에 학습 시간이나 장소를 정하거나 정해진 과제를 외우게 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그리고 그때부터 보통 아이들처럼 언어를 익힐 수 있도록 지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보통의 아이들이 말하기 전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한 말을 먼저 알아듣는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지요.
앤 설리번은 엄마가 아기의 귀에 이야기하듯 헬렌의 손에 모든 것을 써 주는 방식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아기들이 엄마를 따라 하듯이 헬렌이 자신을 따라 할 때까지 말입니다. 또 아이가 자신이 들은 이야기 경험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지적 진보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6월이 되었을 때 헬렌은 고유명사 외에 대략 400단어 이상을 알게 되었고, 숫자를 30까지 셀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헬렌은 자기가 관심 가진 것들을 종이에 쓰는 일을 반복하였다고 합니다. 더 많은 단어와 어휘를 사용하게 되면서 아이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방식으로 가르쳐라 "헬렌은 이제 의문을 제기하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어요. 하루 종일 무엇이?, 왜? 언제? 를 달고 살고, 특히 '왜?'를 연발하는데,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질문도 더 집요해지고 있죠. 왜? 라는 물음은 아이의 이성이 성찰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7월 말이 되었을 때 헬렌은 "어떻게 목수는 집을 짓는 방법을 배웠을까?, 누가 달걀 안에 병아리를 넣었을까?" 비니(흑인)는 왜 까만 걸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냈다는 것입니다. 눈부신 발전이 아닐 수 없지요. 9월 말이 되었을 때 헬렌은 촉각을 통해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예컨대 하늘, 낮과 밤, 산과 바다에 관한 질문들입니다.
앤 설리번의 보고서를 보면 교과서와 같이 꾸며낸 대화로 언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아이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아가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옳았다는 회고가 나옵니다. 예컨대 아이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데 적절한 단어를 몰라 망설일 때 단어나 숙어를 알려주는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보고서에는 경험 세계 특히 감각적인 경험 세계가 아이의 언어능력과 인지 능력을 월등하게 향상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와 있습니다. 예컨대 단것을 먹었을 때 '달다'라는 단어를 가르치고, 신 것을 먹었을 때 '시다'라는 단어를 가르치는 것처럼, 좋다·나쁘다·크다·작다 게으르다·슬프다·사랑한다와 같은 개념을 익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놀라운 관찰력을 얻게 되고 일반 사람들이 비언어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처럼 비언어적 메시지도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겨우 30%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이고, 나머지 70%는 비언어적 메시지로 소통한다고 하지요. 헬렌 역시 그런 비언어적 메시지를 능숙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기교육과 기초교육 반복이 아이들을 망친다헬렌을 가르쳤던 경험을 통해 앤 설리번 선생님은 아이들이 배우고자 할 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계획한 수업보다는 계획하지 않았던 경험의 현장에서 아이가 궁금해할 때 가르쳤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녀가 가정교사라는 방식으로 헬렌 켈러를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언어는 생활 속에서 생장하고 필요와 갖가지 경험에서 늘어난다. 나는 결코 언어를 가르칠 목적으로 언어를 가르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변함없이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언어의 학습은 지식의 획득과 일치한다."예컨대 아이에게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를 깨워주지 못한다면, 언어 훈련만으로 아이가 유창하게 언어를 사용하게 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히 쓰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쓰는 것이 자연스럽고 유쾌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개념이 기억되고 지식에 의해 마음이 풍부해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억제하는 일 없이 생각하고 읽고 이야기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될 것이다."아이가 생각하고 읽고 이야기하는 것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면 쓰고 싶어 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지요. 한글 교육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쓰기 교육'에 매달리는 한국의 사교육 전문가들과 학부모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 글자를 가르치는 것, 지식과 생각을 확장하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도 다시 한 번 깨닫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앤 설리번의 말처럼 "우리가 올바르게 지도한다면 신속하게 발달할 수 있는 고귀한 능력을 모든 아이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이른 나이부터 이른바 '조기교육' 열풍 때문에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려고 안달 난 한국 엄마들이 꼭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었습니다.
헬렌켈러는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 앤 설리번의 기록
앤 설리번 지음, 장호정 옮김,
라의눈,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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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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