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꿈 깨는 게' 목표, 이런 학교도 있습니다

[꿈의 학교를 찾아서⑦] 피어라! 꿈, 날아라! 청소년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 학교

등록 2015.09.16 08:32수정 2015.11.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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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하는 모습, 왼쪽이 이민지 학생, 오른쪽이 최정선 학부모
연기하는 모습, 왼쪽이 이민지 학생, 오른쪽이 최정선 학부모이민선

'감독은 중1, 카메라 감독은 중3, 배우는 카메라 감독 친구와 촬영 구경하러 왔다가 느닷없이 배역을 맡은 사회복지사, 이 영화 잘될까?'

'피어라! 꿈, 날아라! 청소년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 학교(아래 영화제작 꿈의 학교)'가 지난 12일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지난 8월 초 2박 3일 캠프를 시작으로 학교 문을 연 지 약 한 달 만이다. 작품을 완성한 뒤 내년 1월 즈음에 제작 발표회 겸 마을잔치를 벌일 계획이다.

캠프부터 진행한 것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맛보기를 할 필요가 있어서다. 그러나 맛보기라고 해서 그럭저럭 대충하진 않았다. 8개의 모둠으로 나눠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촬영까지 마쳤다. 영화 한 편을 완성한 것이다.

캠프를 마친 뒤 9개 모둠으로 다시 나눠 시나리오를 짜고 감독, 카메라, 배우 등 각자 맡을 역할을 정했다. 영화제작 꿈의 학교 학생은 총 64명이다. 이 아이들이 총 10여 편의 영화를 만들게 된다. 활동 기간은 올 7월부터 내년 2월까지다.

이 학교는 전문 영화인들이 설립했다. 영화 진흥위원회 영화정책 연구원장, 남양주 종합 영화 촬영소장 등을 역임한 이덕행(67세) 전 남양주 YMCA 이사장이 교장을 맡았다. 이 교장은 영화 <꽃잎>(감독 장선우, 배우 이정현) 등을 기획한 전문 기획자이기도 하다.

이건우 영화감독과 김동철 남양주 종합 촬영소 대리가 학부모, 학생 등과 함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송하영 감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이준하씨 등이 강사로 활동하는데, 대부분 남양주 출신이다.

지난 10일 오후 이덕행 교장을 '남양주 종합 촬영소(아래 종합 촬영소)'에서 만나 영화제작 꿈의 학교 설립 배경과 목적, 과정 등에 대해 들었다. 이 교장에 따르면 종합 촬영소가 영화제작 꿈의 학교 모티프(동기)를 제공했고, 실제 설립도 가능케 했다. 이 교장은 "지역에 있는 좋은 시설과 전문 영화 인력을 활용해보자는 취지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장은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 일체와 세트장, 녹음실 등을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빌려주기로 해서 학교 설립이 가능했다"라고 덧붙였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는 6개의 촬영 스튜디오와 전통한옥, 저잣거리 등의 오픈 세트를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 영화 촬영소다.

"학교 밖 아이들 창의력 남달라... 그 독특함이 빛난다"


 이덕행(67세)  ‘피어라! 꿈, 날아라! 청소년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 학교 교장
이덕행(67세) ‘피어라! 꿈, 날아라! 청소년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 학교 교장이민선

 남양주 종합 촬영소. 실내 세트장 전경
남양주 종합 촬영소. 실내 세트장 전경이민선

학교 기반이 이처럼 탄탄하다 보니 총 56명을 모집하는 학교에 90여 명이나 몰렸다. 어쩔 수 없이 면접시험을 쳐서 입학생을 뽑아야 했는데, 영화에 대한 꿈의 크기 같은 일반적인 내용이 우선 합격 기준은 아니었다.

"영화배우나 감독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아이보다, 뭘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아이를 먼저 뽑았습니다. 또 왕따 등의 이유로 학교를 포기했거나 학교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서 거부한 아이도 특별 선출했고요. 이 아이들 정말 잘합니다.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창의력도 남다릅니다.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섞어놓으니까 그 독특함이 빛이 나는 거죠."

학교 밖 아이나 꿈을 찾지 못한 아이를 우선 선발한 까닭은 묻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꿈의 학교 기본 정신을 철저히 지키기 위함이란 걸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어서다. 최종 선발 인원은 모집 예정보다 많은 64명이다.

학생들만큼이나 학부모들에게도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는 게 이 학교 특징이다. 입학할 즈음 학부모 동의서를 받아오게 했고, 학부모 설명회도 따로 열었다. 오리엔테이션도 학부모와 함께했다.

이 교장은 "학부모가, 아이들이 꿈을 찾는 데 조력자이기도 하지만, 방해자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학부모에게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 이유를 설명했다. 학부모를 방해자가 아닌 조력자로 이끌기 위함이라는 것. 그래서 그런지 학부모들 참여가 지금도 꽤 적극적이다. 학부모 지원단이라는 모임이 있을 정도다. 학부모 지원단은 현재 영화 스태프는 물론 배우로도 참여하고 있다.

이 교장 목표는 아이들에게 영화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것만이 아니다. 영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깨서 아이들 꿈을 좀 더 구체화 시키겠다는 게 더 중요한 목표다. 거기에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겠다는 의지도 깔렸다.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는 노가다'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영화에 대한 환상이 깨질 테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진정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될 겁니다. 또 절대 혼자만 잘해서는 만들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될 테고요. 자연히 공동체 의식이 길러지는 거죠. 상상력이 왜 필요한지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자기 적성도 발견하게 되겠죠. 이게 꿈의 학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영화배우나 영화감독, 어린 시절 한 번쯤 꿈꿔 봤음직한 직업이다. 쉽게 그 길에 발을 들이지 못한 것은 '정말 내가 소질이 있을까', '뜨지 못하면(인기가 없으면) 배가 고프다는데' 따위인데,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 교장, 이 문제에 대한 시원한 답을 내놓았다.

"진정 즐긴다면 못할 게 없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즐기는 사람만큼은 잘할 수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직업이 곧 돈?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두려움 없이 도전할 용기가 필요하지요. 그래야 영혼이 자유로워지고, 상상력도 나옵니다. 다만 선택할 때까지는 충분한 정보를 입수해야 합니다. 우린(영화제작 꿈의 학교) 충분한 정보를 줘서 학생들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고요."

"예", "미쳤어요" 두 마디 하고 5시간... "그래도 재미있어요"

 '피어라! 꿈, 날아라! 청소년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 학교 업소용 콜라 팀' 촬영 현장.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무늬 학생(감독), 세 번째가 전예진 학생(카메라 감독)
'피어라! 꿈, 날아라! 청소년 남양주 영화제작 꿈의 학교 업소용 콜라 팀' 촬영 현장.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무늬 학생(감독), 세 번째가 전예진 학생(카메라 감독)이민선

 연기가 잘 됐나, 확인하는 모습
연기가 잘 됐나, 확인하는 모습이민선

이 교장을 만나고 이틀 뒤인 12일 오후 9개 모둠 중 하나인 '업소용 콜라 팀' 촬영 현장을 찾았다. 남양주 수동 중학교다. 교실 안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진지한 분위기에 눌려 차마 인터뷰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해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교실 안 장면 촬영은 20여 분 만에 끝이 났다. 다음 장면은 복도에서 찍었는데 이때도 말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역시 분위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아이들은 1분도 안 되는 짧은 장면을 찍고 또 찍었다. 5시간째 이런 식으로 몇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학부모 몇몇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고, 한 학부모는 즉석에서 '담임선생님 역'을 맡아 아이들과 함께 진을 빼고 있었다.

같은 장면을 9번 찍을 때쯤 용기를 내 '저~ 인터뷰 좀' 하고 말을 걸었다. 아이들 몇몇이 "아 네 좋아요" 하고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누군가 "한 번 더 가자"라고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촬영에 돌입했다. 결국, 인터뷰는 그날 촬영을 마무리한 다음에야 할 수 있었다.

감독을 맡은 김무늬(중1, 남) 학생과 카메라를 잡은 전예진(중3, 여) 학생은 영화감독이 꿈이고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영화 연출과에 가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세우고 있었다. 두 학생 모두 "힘들지만, 무척 재미가 있어 지루하진 않다"고 말했다.

학생 역을 맡은 이민지(중3, 여) 학생은 영화제작 꿈의 학교 학생이 아니다. 카메라를 잡고 있는 예진이한테 캐스팅돼서 배우로 데뷔했다. 민지는 "아직 꿈이 없어서, 혹시 이곳에서 꿈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아직 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 만드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민지는 이날 학생 역을 맡아 교사 역을 맡은 학부모 최정선(44, 여)씨와 함께 같은 장면을 10번 이상 찍으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 놀라운 참을성을 보여줬다. 최정선씨는 사회복지사다. 그는 "떨리지만, 무척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참에 직업을 바꾸면 어떻겠냐'고 농을 치자 "지금 하는 일이 좋다"며 손사래를 쳤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려고 할 때 "저도 인터뷰해 주세요"라는 발랄한 외침이 들렸다. "네"와 "미쳤어요", 단 두 마디만 하고 5시간을 버티는 '신공'을 보여준 이유빈(중3, 여) 학생과 "네" 한마디와 수군거리는 장면만 찍고 역시 5시간을 견디는 '묘기'를 보여준 유지원(중3, 여) 학생이다.

두 학생 모두 영화제작 꿈의 학교 학생은 아니다. 민지처럼 예진이한테 갑작스레 캐스팅돼서 배우가 됐다. 두 학생은 "무척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제작 꿈의 학교가 있는 줄 몰라서 오지 못했다"며 "내년에도 하면 꼭 오고 싶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만드는 영화 장르는 스릴러다. 시험에서 꼴찌를 하면 다른 학교로 강제 전학해야 하는 숨 막히는 학교가 배경이다. 꼴찌를 한 여학생의 저주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시나리오 작성에서부터 촬영까지 학생들이 직접 한다. 강사는 방법만 알려준다.

이 영화의 목적은 '꿈'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아이들이 자기 꿈을 찾으면 좋은 일이고, 영화인이 되려는 꿈을 가진 아이가 그 꿈을 구체화 시키면 더욱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꿈을 꼭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못 찾아도 그만이다. 이곳은 아이들이 자기 인생길의 앞과 뒤뿐만 아니라 옆도 돌아볼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주는 '꿈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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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혜경 기자

#꿈의 학교 #‘피어라! 꿈, 날아라! 청소년 남양주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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