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선포한 서울시 성동구 정원오 구청장과 주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동구제공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이제 방법이 없다. 12월에 가게를 비워줘야 할 것 같다."
"건물주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하겠다. 오그라드는 마음이다."2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1가제2동 주민센터 2층 회의실. 건물주와 세입자 대표들이 만나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세입자들은 하늘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고, 건물주들은 세입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리는 성동구(구청장 정원오)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선포하려고 마련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갑자기 상권이 형성된 지역에 임대료가 올라 세입자들이 밖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서울의 홍대나 신촌, 가로수길, 삼청동길 등 최근 급부상한 곳마다 나타난 현상으로, 지역활성화에 기여한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게 된다.
평범한 준공업지역이던 성동구 성수동 일대는 지난 2012년부터 젊은 예술가와 사회적기업들이 입주하면서 개성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갤러리, 공방 등이 들어섰다. 이어 서울시의 도시재생시범지역으로 지정되자 입소문을 타 순식간에 '뜨는' 지역으로 변신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강남과의 접근성이 뛰어나고 서울숲, 한강 등 자연환경이 우수한 데다 상대적으로 싼 임대료가 큰 몫을 했다.
그러나 동네가 뜨자 임대료가 같이 치솟아 성수동의 변신을 주도했던 이들이 오히려 견디지 못하고 성수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성동구에 따르면, 성수동1가의 임대료 상승폭은 2012-2013년 5%였으나, 2014-2015년은 평균 35%로 폭증했다.
성동구가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정식 명칭 '서울특별시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 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만들게 된 것은, 모처럼 활성화된 성수동 지역이 임대료 상승에 발목 잡힐 우려 때문이다.
이 조례에는 관할 구역에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한 뒤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임대료 인상률과 임대기간 등을 정해 세입자들을 보호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대형 프랜차이즈, 주점 등이 입점해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했다.
이는 미국 뉴욕시에서 운영중인 '커뮤니티 보드(Community Board)'의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지역주민들로 이뤄진 커뮤니티 보드가 심의를 통해 토지 이용방안 등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 뉴욕시가 이를 정책에 반영한다. 맨해튼·브루클린·퀸스·브롱스·스테이튼아일랜드 등 뉴욕시 전역에서 모두 59개의 커뮤니티 보드가 활동중이라고 성동구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