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할 하드디스크를 분해해서 커버는 재생하고 나머지는 종류별로 박스에 담아 폐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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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업체 파견사원으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모 대기업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일자리는 오전 8시까지 출근을 해서 오후 5시면 퇴근을 할 수 있었고 주5일 근무제라 주말은 쉴 수 있었다. 가끔 나에게 일을 시키는 그 회사 정규직원이 '잔업해서 돈 좀 벌어라'는 식으로 말할 때도 있었지만 순전히 내 의지에 따라 하고 말고가 가능했다.
나는 그 회사의 '스토리지 사업부' 건물 지하에 있는 창고 한쪽 귀퉁이에서 일을 했다. 그 창고는 그 회사에서 만든 컴퓨터 하드디스크 폐기 물량이 들어와 잠시 보관되는 장소였다. 이 창고에서는 나 포함 총 3명의 파견사원이 근무를 했는데 나머지 2명은 나와 담당하는 업무가 달랐다.
그 둘의 업무는 폐기할 하드디스크 물량이 입고 되면 가져와 모델별로 분류해서 보관하는 일이었고 내 업무는 하드디스크를 해체해서 재활용할 자재를 '재생'시키고 나머지는 폐기처리하는 일이었다. 나와 똑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파견사원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사람은 2층에 있는 이 회사 정규직 사원들이 일하는 생산라인에 함께 섞여서 일을 했다.
그 사람은 당시 나이도 좀 있는 편이었고 일 잘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사람이었다. 그 이야기는 그 라인을 관리하는 정규직 관리사원들의 입에서도 자주 들렸다. 왜 그런지 봤더니 한 자리에서 2년 가까이를 그 일만 해온 사람이라 그랬다. 이제 곧 2년이 채워지는데 그는 내심 이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당시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은 2년이었다.)
일을 잘한다고는 했지만 그 '일'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업무는 아니었다. 하드디스크 케이스를 '재생'하는 일이었는데 폐기할 하드디스크 중 깨끗한 케이스는 분리를 해서 앞에 붙은 라벨을 알콜과 커터칼을 이용해 제거하는 일이었다. 이 일에서 일을 잘하는 것은 커터칼을 이용해 라벨을 제거할 때 하드디스크 케이스에 스크래치를 남기지 않는 것과 빠른 손놀림으로 많은 양의 케이스를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그 별 거 아닌 일을 하면서 '잘한다'는 소리를 자꾸 들어서인지 그 사람은 계속해서 '헛된 희망'을 가지고 2년이라는 시간을 여기서 보낸 듯했다. 그 사람에게 '잘한다'는 말을 계속 하며 '희망고문'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를 그 회사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그 사람은 그 헛된 꿈을 계속 꾸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몇 달 뒤 그 사람은 소리소문 없이 조용하게 그 회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는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와서 그 일을 했다.
내가 처음 그 회사에 출근했을 때 내가 할 일에 대한 교육은 10분만에 끝이 났다. 그만큼 단순한 업무였다. 단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마나 빠르게 할 수 있는지 숙련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사를 다니는 몇 달 동안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다른 2명이 하는 일을 도와주며 '농땡이'를 부렸고 내가 거기서 농땡이를 부려도 아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감히 '을' 주제에 어디서 일을 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