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비룡소
준비에브 브리작 님이 글을 쓰고, 미셸 게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올가는 학교가 싫다>(비룡소,1997)를 읽습니다. <올가는 학교가 싫다>에 나오는 '올가'라는 아이는 학교에 처음 들어간 아이로구나 싶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아이가 몇 살부터 학교에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는 일고여덟 살로 보입니다. 이 아이는 앞으로 '문방구 가게 임자'가 되려는 꿈을 꿉니다. 그래서 언제나 제 가방에 온갖 장난감을 챙깁니다.
문방구 가게 임자가 되려면 온갖 장난감을 다룰 줄 알고, 만들기도 해야 하며, 잘 알아야 하거든요. 그러니 올가는 교과서나 공책이나 다른 것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에만 온마음을 쏟습니다.
올가는 엄마에게 공책을 한 권 내밀었다. "선생님이 여기다가 뭐라고 써 주셨는데, 뭔지 모르겠어. 나는 읽을 줄 모르잖아. 엄마, 나는 책읽기를 배우고 싶지도 않아.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꼭 읽을 줄 알아야만 되는 건 아니잖아." (12쪽) 이야기책을 가만히 읽으면, 올가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올가한테 거의 아무런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이하고 이야기를 거의 안 하고, 아이가 하는 말을 아이 어머니도 아버지도 거의 안 듣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바빠서 안 들을 뿐 아니라, 이내 잊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바깥일, 그러니까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만 하느라 바빠서 아이 얼굴을 볼 틈도 없습니다.
책을 읽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아니, 한국만 이런 모습이 아니네 하고. 프랑스라는 나라에서도 이러네 하고.
게다가 학교에서도 올가는 고단합니다. 올가가 다니는 학급을 맡은 교사는 올가하고 말을 제대로 섞지 않습니다. 그저 올가 가방에 있는 장난감을 아무 말 없이 몽땅 빼앗을 뿐입니다. 장난감만 챙긴다고 해서 아이를 윽박지르고 큰 소리로 꾸짖을 뿐입니다. 아이한테 왜 이런 장난감을 챙기느냐고 차분히 묻지 못하는 교사요, 아이한테 부드럽거나 따스한 말로 '학교에서 무엇을 하면서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는 교사입니다.
올가는 저녁마다 자그마한 깜짝쇼가 벌어지지 않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러나 올가는 엄마가 더 이상 선물을 하지 않으니까 이젠 자기가 엄마에게 선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일은 전염되는 법이니까. (19쪽)"엄마! 엄마는 왜 내 목걸이 선물을 받고서 그걸 목에 걸지 않는 거야? 엄마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야." 올가는 뾰로통해졌다. (22쪽)모든 교사가 훌륭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교사가 훌륭할 수 없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사가 훌륭해야 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사라는 자리에 서려면 '교과서 수업 진도 나가기'가 아닌 '아이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아이 마음을 읽고 아이한테 무엇을 즐겁게 가르쳐서 이 아이가 아름답게 자라도록 도울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먼저 차분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훌륭한 교사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아침부터 저녁(이나 낮)까지 마주하는 어버이 같은 몫을 맡는 교사라면, 아이가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북돋우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가정 연락장에는 날마다 선생님 편지가 씌어 있었다. 올가가 가지고 가는 수집품들은 뭐든지 다 압수당했고, 분명한 이유조차 모르면서 올가는 늘 야단맞았다. 그래서 올가는 늘 허둥거렸으며, 걸핏하면 소리 지르고 소란부터 떨곤 했다.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