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목줄 풀린 개'처럼 살자

[홀로 배낭여행 초보자의 인도 여행기46] 개에게서 인생을 보다

등록 2015.10.21 11:03수정 2015.10.2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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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매가 고약하게 생긴 점박이. 오토바이를 뒤쫒아 자빠트리고 결국 목줄에 묶였다.
눈매가 고약하게 생긴 점박이. 오토바이를 뒤쫒아 자빠트리고 결국 목줄에 묶였다.송성영

인도의 소들이 그렇듯이 개들 또한 묶여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헌데 점박이 녀석이 묶여있다. 바로 어제였다. 녀석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내를 왕왕 짖어대며 쫒아갔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에게 녀석이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바람에 그가 급히 핸들을 틀었다. 그리고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길 옆으로 자빠졌다. 곧장 팔꿈치와 바지를 털며 일어선 청년은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때마침 집 앞에 서 있던 중년 사내가 급히 다가가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줬다. 청년은 그 점박이 주인과 시비 없이 잠시 몇 마디를 주고받았고 오토바이는 다시 제 갈 길을 향했다. 하지만 점박이 녀석은 짧은 줄에 묶여 오토바이를 공격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눈매가 고약하게 생긴 점박이 녀석은 고집불통이었던 어린 시절의 내 눈매를 닮았다. 녀석은 처음 나와 마주쳤을 때도 컹컹 짖어댔다. 어려서부터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던 나는 녀석이 짖거나 말거나 강아지를 달래듯이 혓바닥을 깔딱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내 주변을 빙빙 돌며 경계심을 풀었다. 그 뒤로 내가 지나칠 때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따라오곤 했었다.

목줄 없이 자유롭게 떠도는 개들

 북인도 코사니에서 만난 삽살개 닮은 녀석. 우리가 말하는 '삽살개'의 잡종일까.
북인도 코사니에서 만난 삽살개 닮은 녀석. 우리가 말하는 '삽살개'의 잡종일까.송성영

인도 여행길에서 만난 도시 개들이 사람에게 짖어대는 걸 거의 본적이 없다. 그만큼 사람에게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한적한 시골의 개들은 종종 낯선 사람에게 짖어대곤 한다. 그렇다고 송곳니를 내밀어 물어뜯을 것처럼 험악하게 달려들지는 않는다. 녀석들이 짖어대는 것은 단지 제 집 앞을 사수하겠다는 몸짓에 불과하다.

다람살라에서 만났던 인상이 험악한 검둥개나 코사니의 점박이가 그랬듯이 짖어대는 녀석들에게 '너를 해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친구가 되고 싶다'라는 몸짓으로 손을 내밀어 다가가면 머뭇거리다 경계심을 풀고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개와 함께 생활한 내 경험으로 보자면 길거리에서 컹컹 짖는 개들보다는 목줄에 묶인 채 짖지도 않고, 번뜩이는 눈빛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는 녀석들이 더 위험하다.

끈 풀린 개처럼 이른 아침 시골 길을 걷다보면 사람들과 더불어 코를 벌름거리며 길거리를 자유롭게 싸돌아다니는 다양한 개들을 만나게 된다. 거의 매일 같이 마주치는 늙은 개, 멍멍이를 비롯해 좀 전에 만났던 점박이, 검둥이, 누렁이 등의 녀석들과도 눈인사를 나눈다.


짧은 줄에 묶여 버둥거리는 점박이네 집을 지나치자 늙은 멍멍이가 검둥이 하고 놀고 있었다. 아니 놀고 있다기보다는 검둥이가 멍멍이의 앞뒤를 오가며 알랑거리고 있었다. 멍멍이는 자신의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는 검둥이가 귀찮은 듯 피하는 눈치였다.

 나와 안면을 트고 지낸 검둥이와 멍멍이
나와 안면을 트고 지낸 검둥이와 멍멍이송성영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안에 묶여 있는 개들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목테를 두른 개를 보면 신기할 정도였다. 개 목테는 먹고 살만한 집안의 개들이 누리는 특권처럼 보였다. 그 시절 개들이 내 밭 네 밭 가리지 않고 아무 밭에 들어가 여기저기 발 도장을 찍어 놓아도 크게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쩌다 끈 풀린 개들이 다른 집 밭에 들어가면 그 집 주인과 대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묶어 놓은 개들처럼 사람 인심도 꽁꽁 묶여 있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개뿐만 아니라 종종 우리에서 벗어난 돼지들이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먹고 살기 힘든 가난한 그 시절보다, 먹고 살만한 지금의 더 인심이 사납다. 그 시절은 떡 한 쪼가리라도 나눠 먹으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 떡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떡까지 넘보려한다. 개들도 사람만큼 사나워 졌다. 묶여 있기 때문이다.

코사니의 산책길에서 늘 만나게 되는 멍멍이가 그렇듯이, 목테 없이 자유롭게 떠도는 개들은 대체로 짖지 않는다. 집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들은 자기 영역을 사수하기 위해 심하게 짖어댄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을 사수하겠다고 핏대를 세우지 않는다. 북인도 코사니의 늙은 개 멍멍이처럼 낯선 이방인인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적대감 없이 받아드린다. 나의 유년 시절이 그러했듯이 개들이 자유롭게 싸돌아다니는 마을에서는 사람들의 인심 또한 후하다. 살림살이는 가난하지만 개들을 풀어 놓고 살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

낯선 이에게도 짜이 한잔 건네는 사람들

 아무런 조건없이 짜이를 내준 가족. 학교 가기에 앞서 어린 아들이 뿔 피리를 불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짜이를 내준 가족. 학교 가기에 앞서 어린 아들이 뿔 피리를 불었다. 송성영

공동 우물에서 한 사내가 어께에 물둥이를 이고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나마스테' 인사를 하자 빙그레 웃으며 짜이 한 잔 하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서슴없이 좋다고 답했다. 앞장 서서 걷는 그를 따라 대 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로 갔다.

인상이 후덕한 그의 어머니와 두 아들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짜이 한 잔을 내 왔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사내에게 물었더니 본체와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집 한 채를 가리킨다. 얼마 전 딸을 낳고 산후 조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사내의 어머니가 내어온 짜이를 마시고 있는데 등교를 서두르던 작은 아들이 방문 앞에서 뿔피리를 뿌우 뿌우 불어댔다.

"당신 아들이 뿔피리를 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크리슈나 신을 위한 것입니다."

크리슈나는 브라만, 시바와 함께 힌두교의 3대 신으로 꼽는 비슈누의 화신이다. 비슈누는 커다란 금시조 가루다를 타고 다니며 악을 제거하고 정의를 바로 잡는 평화의 신이다. 힌두교에서는 10명의 비슈누의 아바타(화신이라는 뜻으로 신이 이 세상을 구제하고자 여러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다고 여긴다)가 있다. 그 중에 아홉 번째가 석가모니 붓다며 크리슈나는 여덟 번째 화신이라 여기고 있다.

비슈누의 여덟 번째 화신인 크리슈나는 어린 아기, 소년, 젊은 연인, 무사, 왕, 현자 등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피리 부는 어린 소년의 그림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는데 그 그림이 바로 사랑의 화신, 크리슈나의 모습인 것이다.

장황한 힌두어와 짧은 영어가 뒤섞여 있는 사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짐작하건대 어린 아들의 뿔피리 소리에는 크리슈나의 피리와 다름없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지 않나 싶었다.

매일 아침 뿔피리를 불고 있다는 녀석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싶었지만 등교를 서두르는 바람에 다시 불어 달라 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가족사진으로 대신했다. 사내의 집을 빠져나오면서 내내 뿔피리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이들 가족은 어린 아들의 뿔피리 소리와 함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라는 하루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을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데 공터에서 몇 마리의 개들이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놀고 있다. 그중에 낯익은 개 한 마리가 보였다. 녀석은 한국의 토종개로 여기는 '삽살개'의 잡종을 닮아 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다른 개들과 달리 컹컹 짖어대며 경계의 몸짓을 보인다. 사진기를 들이대자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질 않는다.

 다른 개들과 달리 낯선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 한국의 토종견, 삽살개의 성깔을 닮았다.
다른 개들과 달리 낯선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 한국의 토종견, 삽살개의 성깔을 닮았다.송성영

 티베트의 옛땅,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 자리한 스피티 가는 길목의 레콩피오에서 만난 삽살개와 흡사한 녀석
티베트의 옛땅,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 자리한 스피티 가는 길목의 레콩피오에서 만난 삽살개와 흡사한 녀석송성영

낯선 사람에게 쉽게 다가서질 않는 성깔조차 한국의 삽살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경산의 삽살개'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된 삽살개(삽사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그 '경산의 삽살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 개들 중 왕초 노릇을 하던 삽살개가 한 마리 있었다.

온 동네를 주름잡고 다니던 그 삽살개와 황구 사이에 나온 새끼 역시 온몸이 긴 털로 뒤덮여 있었다. 북인도 코사니에서 만난, 삽살개 닮은 녀석은 그 털이 북실북실한 우리 동네 잡종견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북인도 어딘가에 '경산의 삽살개'와 흡사한 순종이 있을 것이었다.

이후 만난 녀석들이 있다. 티베트에 자리한 히말라야의 성산 카알라스와 이름이 같은 북인도 카알라스 산(Kinner Kailash 해발 6,050m)이 올려다 보이는 레콩피오(Reckong Peo, 해발 2290미터로 중국과 네팔의 국경지대다)에서 만난 녀석들이었다. 북인도 깊숙히 옛 티베트 땅이자 평균 고도가 3천 미터를 훨씬 넘기는 스피티(Spiti)의 고산지대에서 만난 녀석들은 삽살개의 원형에 가까웠다. 

삽살개처럼 온몸이 긴 털로 뒤덮여 있는 녀석들은 아무래도 겨울이 긴 고산지대에 적합할 것이다. 나는 녀석들과 만나면서 잡종견과 토종견이란 것이 개들에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우리가 고집하는 토종견이라는 개념을 되짚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잡종견과 토종견을 따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끈 풀린 개들이 알게 된다면 그야말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점박이를 다시 만났다. 아까와는 달리 목줄이 풀려 있다. 점박이네 집 주인도 무던하다. 녀석 때문에 오토바이 청년이 넘어졌고, 주인으로서 난처했을 터인데 그럼에도 하루 만에 다시 점박이를 풀어놨다. 내가 손짓하자 녀석이 부리나케 달려온다.

평소 내 주변을 빙빙 돌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가까이 다가온다. 내 손바닥 위에 혓바닥을 내밀고 코를 벌름거린다. 내 다리에 주둥이를 비벼대기도 했다. 묶여 있다 풀려난 것이 너무나 좋은가 보다. 내가 손으로 턱 밑을 어루만져 주자 얌전한 강아지가 된다. 멍멍이나 검둥이처럼 이제 녀석과도 친구가 되었다.

 하루 만에 풀려낸 사고뭉치 점박이 녀석이 내게 다가와 혓바닥을 내밀었다.
하루 만에 풀려낸 사고뭉치 점박이 녀석이 내게 다가와 혓바닥을 내밀었다.송성영

내 뒤를 할 일 없이 따라오던 녀석이 갑자기 언덕 위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언덕 위에는 집 주변에 붙박혀 좀처럼 밖으로 나서지 않는 개 두 마리가 있다. 점박이 녀석은 두 녀석에게 달려들어 엎어치기를 당하지만, 그럼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이리저리 날뛰다가 벌러덩 자빠지곤 한다.

목줄에 풀려 망아지처럼 펄쩍펄쩍 뛰어 다니는 점박이를 보다가 문득 자본과 권력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은 묶여 있는 개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생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며 개 사료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대가로 목줄에 묶여 살아가는, 그야말로 '개 같은 인생'일 것이다.

추악한 자본, 추악한 권력과 맞서려면 밥 한 끼를 굶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그 자본의 먹이에서 자유로와야 할 것이다. 끈 풀린 개들은 쓰레기를 뒤지고 다닐망정 개 줄에 꽁꽁 묶여 개 사료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 개 같은 노예의 삶을 개들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
#북인도 코사니 #목줄과 사료 #자본의 노예 #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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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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