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김련희씨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하며 흐느끼고 있다.(CNN 보도화면 갈무리)
CNN
지난 추석 연휴 미국의 뉴스 방송 CNN은 대구에서 사는 탈북자 김련희씨의 사연을 소개하고, 평양에 있는 그녀의 딸과 남편을 인터뷰한 내용을 방송했다. 김씨는 질병치료를 위해 중국으로 나갔다가 탈북 브로커의 꼬임에 빠져서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는 이를 후회하고 우리 당국에 북한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 당한 후,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CNN은 한국에서는 탈북자를 북한에 돌려보내는 것이 불법이라고 덧붙였다.
CNN의 인터뷰는 북한당국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당국과 선전매체들도 즉시 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여론화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통일부는 김씨의 국내 입국 당시에 상당 기간 조사과정을 통해 자유의사를 확인하고 보호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현행법상 우리 국민(보호결정이 된 북한이탈주민)을 북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당사자와 북한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북송 요구 김련희씨와 대북 전단통일부의 설명은 틀리지 않은 말이다. 15년 전 비전향장기수 63명을 북송할 때도 같은 고민이 있었다. 비전향장기수도 법적으로 우리 국민이었고, 우리 국민이 북한에 영구 이주하는 것을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나 절차가 현행법 체계에는 없다.
당시 통일부는 어쩔 수 없이 비전향장기수의 북송 절차를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르기로 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통일부의 방북 허가를 받아 북한으로 돌아갔다. 무기한 방북은 입법취지상 허용될 수 없기에 방문기간은 최장 허용한도인 10년으로 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승인된 기간을 초과하여 불법으로 북한에 체류하고 있는 셈이다.
김씨를 당장 돌려 보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탈북자 중에는 남한 생활이 어렵다고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러나 자유의사를 확인하고 보호결정을 받은 북한이탈주민이 후에 마음을 바꾸어 북한에 돌아 갈 수 있는 합법적 길이 열린다면 악용될 소지가 너무 크다. 북한 간첩의 자유왕래 통로가 될 수도 있고, 사업실패나 범죄 등 여러 이유로 입장이 어려워진 자가 도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검토는 신중하게 해야지만 이와 관련된 법은 필요하다. 법이 없어 일을 못한다면 그것은 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 국민이 북한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비전향장기수의 경우에서 이런 필요는 확인됐다. 특히 19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합의된 5개의 기본의제 중에는 가족 재결합 문제도 있는데, 향후 남북관계 진전으로 이것이 실현되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령 이산가족이 여생을 자손과 함께 하자 할 때에 법이 없어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통일부가 법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고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휴전선 부근에서 전단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법이 없어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것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법적인 근거도 없이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법은 없지만 통제 필요성이 있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이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종잡을 수 없는 실정이다. 상황에 따라 통제도 하고 방관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당국자가 관련 단체를 찾아가 통사정하기도 한다. 법이 없으니 정치적 판단과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법은 왜 만들어졌나
▲탈북자단체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 8월 14일 오전 경기도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을 규탄하는 대북전단 살포 계획이 경찰에 의해 저지되자, 소속 회원들이 이미 연천과 파주 인근에서 대북전단 20만 장을 대형 비닐풍선 10개에 매달아 살포했다며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유성호
1990년대 남북교류협력법이 시행될 때까지 남북 왕래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국민의 방북이 허용된 것은 1988년의 '7.7선언'에 의해서다. 이전까지는 북한방문이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남북회담을 위해 소수 당국자들이 예외적으로 남북을 왕래하였지만 특히 민간인의 남북 왕래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일반적으로 금지된 사항이었다. 회담을 위한 당국자들의 남북왕래는 통치권 차원의 행위로 보아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7.7선언 이후 처음 방북한 사람은 정주영 회장이다. 두 달 후에 문익환 목사가 방북했다. 문 목사의 방북(밀입북)은 남북관계를 일시에 악화 시키고 당시 정부의 과감한 대북정책에 위기를 불러왔다. 정치적 논란은 별개로 한 사람은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았고 또 한 사람은 승인받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당시 정부의 논리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는 애매했다. 정부가 설명한 통치행위 이론은 미흡했고 정부의 자의성을 문제 삼아 법치주의에 반한다는 비판이 곧 제기되었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서둘러서 남북왕래와 교류협력 등을 뒷받침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로써 통치행위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일반인의 남북왕래가 법적으로 가능해지고, 남북교류협력을 질서 있게 추진하도록 정부의 개입 기준과 절차도 마련하였다.
대북 전단 살포 문제도 필요하다면 그 허용 요건이나 절차가 법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 불필요하게 북한군의 도발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고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군의 작전이 오히려 방해받을 수도 있고 해당 지역주민에게 뜻하지 않은 피해와 불안을 줄 수도 있다. 법이 없다고만 정당화 되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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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고경빈은 통일부의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친 '통일맨'이다. 인도지원국장, 교류협력국장,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정책홍보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남북관계 현장애서 실질적 업무를 총괄했다. 2009년 퇴임 이후 잠시 남북교류협력협회 회장으로도 일했으며, 지금은 평화재단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
어떤 경우에 허용되고 어떤 경우에 통제할 수 있는지를 당국자의 자의적 기준과 판단에 맡기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요하다. 국가안보와 지역주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법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면, 필요한 법을 만들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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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요구' 김련희씨와 대북 전단, 그 닮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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