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혼자 잘 살자고 한 것도 아닌데, 괜찮아"

'무상급식 지키기' 외치다 법정 선 학부모, 재판부에 탄원서 제출

등록 2015.10.19 11:23수정 2015.10.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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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혼자 잘 살자고 한 것도 아닌데.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난 괜찮아."

한 아이가 법정에 서게 된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경남도의회를 찾아 '무상급식 중단 철회' 등을 요구하다 법정에 선 학부모가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탄원서에는 학부모가 아이와 나눈 대화를 소개해 놓았다.

19일 친환경 무상급식 지키기 경남운동본부는 창원지방법원에 2명의 학부모가 탄원서를 냈다고 밝혔다. 이들을 포함한 학부모 6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퇴거불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무상급식 예산 살리려다 벌금 맞은 학부모, 탄원서 제출

a  7월 23일 오전 학부모들이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홍준표 주민소환으로 무상급식 원상회복'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7월 23일 오전 학부모들이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홍준표 주민소환으로 무상급식 원상회복'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 윤성효


이들은 홍준표 지사가 중단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되살리기 위해 나섰던 학부모들이다. 학부모 6명은 지난 3월 17일 경남도의회 김윤근 의장 면담을 요구하며 의회 건물 안에 들어갔다.

당시 김 의장은 면담 도중 다른 일정을 이유로 자리를 떴고, 학부모들은 면담을 계속할 것을 요구하며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 경남도의회는 퇴거를 요청했지만 이들은 응하지 않았고, 지난 18일 저녁 경찰에 의해 끌려 나왔다.

검찰은 학부모들에 대해 약식기소명령으로 각각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고, 법원은 각각 벌금 100만 원을 통보했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법원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첫 공판이 지난 16일 창원지법에서 열렸다.


첫 공판에서 검찰은 낮아진 벌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학부모 측 박훈 변호사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양형에 이의를 제기했다. 다음 공판은 11월 18일 창원지법에서 열린다.

법정에 섰던 학부모 정은미씨는 '시작이 끝이길, 간절한 마음으로'라는 제목, 이정화씨는 '눈칫밥 먹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했습니다'라는 제목의 탄원서를 재판부에 냈다. 학부모들은 탄원서에서 '무상급식 중단 철회 투쟁'에 나섰던 절절한 이야기를 해놓았다. 다음은 두 학부모의 탄원서 전문이다.


정은미 <시작이 끝이길 간절한 맘으로>

들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하는 이 농심입니다. 저도 시골에서 농사짓고 아이 키우며 산 지 14년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볼 욕심으로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를 업고 여섯 살 큰아이 손을 잡고 낯선 이곳 작은 학교 하나 보고 덜렁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이도 낳고 큰아이가 벌써 고3이 되었습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땐 8명의 아이 중, 시골 할머니 밑에 자라는 아이, 외가에서 다니는 아이, 한 부모 가정 아이, 반은 온 가정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이만 잘 키운다고 내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같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야 우리 아이의 행복도 온전한 행복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 키우며 농사짓고 살던 시골 아낙이 작년 가을부터 바빠졌습니다. 이제껏 잘 해오던 무상급식이 도지사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초·중·고 세 아이 밥값으로 매달 35만 원에 돈을 내야 하는 현실과 차별 없이 똑같이 나누던 밥이 이제 눈칫밥이 된다는 서글픔에 이러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될 것 같았습니다.

1년을 준비하는 농사는 봄부터 가을까지 땀 흘려 농사지어 추수하는 재미가 젤로 크다고 했습니다. 자식농사는 인간에 삶 전체 평생 농사입니다. 그게 우리 사회 백 년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농민은 단지 배가 고프고 굶더라도 오늘 힘들다고 씨나락을 먹지 않습니다. 종자를 보관해야만 내년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눈칫밥으로 키운다면 우리의 내일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이러다 말겠지, 설마 도지사라는 높은 분이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하겠냐는 것이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지난 4월부터 급식비가 통장에서 따박따박 나가게 될 때까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음을 태웠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시골 무지랭이 아낙으로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인 것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맘에 상처는 두고두고 아이에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도 제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가난해서 우유 급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흰 우유가 어찌나 부럽던지…. 수요일 아침 피켓을 준비하는 맘이 바빠집니다.

초등 3학년, 아직 잠자리에서 비비적거리는 아이를 닦달해 깨워서 밥을 떠먹이다시피 먹이곤 부지런히 20분 남짓 거리에 있는 군청을 향해 움직입니다.

어느새 또 한 계절이 넘어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급식문제로,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길 1년이 넘었습니다. 농사짓고 아이만 키우던 시골 아낙을 거리로 내몰고 이제는 법정이란 곳까지 서게 만들었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죄인이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신호위반 한 번 없던 제가 무상급식 때문에 도의회 의장 만나려고 기다리다 강제점거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죄 목으로 죄인이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큰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엄마가 경찰에 잡혀가고 조사받고 왔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혼자 잘 살자고 한 것도 아닌데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난 괜찮아"라고 했습니다. 법도 사람이 살자고 만들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법원이란 곳에 서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법을 어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하는 일 참 어렵습니다. 의장이 기다리는 학부모 맘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a  경남 지역 학부모 6명은 무상급식 계속을 요구하며 경남도의회 의장 재면담을 요구하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로부터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지난 16일 오전 창원지방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규탄하고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남 지역 학부모 6명은 무상급식 계속을 요구하며 경남도의회 의장 재면담을 요구하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로부터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지난 16일 오전 창원지방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규탄하고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윤성효


이정화 <눈칫밥 먹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했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1학년 딸을 둔 엄마입니다. 어린이 책을 읽는 모임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토론하고, 아이들 키우는 고민·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친구들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이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사는 현실을 더 잘 보게 되고, 경쟁과 학습에 내몰리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힘겨움을 같이 느끼고, 상처받고 소외당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 흘리기도 합니다.

몇 해 전에는 <소나기밥 공주>라는 동화를 읽었습니다. 지하 단칸방에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공주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학교에서 주는 점심 급식 한 끼로 하루를 버티는 아이입니다. 오로지 천천히 소화되기만을 기도하며 식판에 수북이 밥을 떠 와서는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공주를 친구들은 '소나기밥 공주', 또는 '소나기밥 돼지'라고 놀립니다.

사정 모르는 선생님은 그렇게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공주를 신기해합니다. 저는 이 동화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공주가 학교에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고 공주가 혹시라도 아파서 학교에 오지 못할까 봐, 그래서 온종일 밥 한 끼도 먹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지하방에 누워 있을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이 동화가 자꾸 생각이 납니다. 공주가 만약 경남에 사는 아이였다면 점심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아이였겠지요? 하루에 유일한 한 끼를 안 먹을 수는 없으니 저소득층 급식비 지원을 받아야겠지요. 어두컴컴하고 냄새난다는 친구들의 말이 듣기 싫어 집에 친구도 데리고 오지 않는 공주는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학교에 제출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는 그나마도 많이 먹는다고 눈치 보였는데 혼자서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지원대상자'라는 사실을 들킬까 전전긍긍해 할 공주가 눈에 선합니다.

모두 다 알다시피 초·중학교는 의무교육입니다. 원하는 원하지 않든 일정 나이가 되면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점심 또한 의무급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의무 복역하는 군인에게 점심값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딸들이 부모인 나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학교에 가서 마음 편히, 아니 당당하게 점심을 먹기를 바랍니다. 결국 급식 또한 부모인 우리가 낸 세금으로 집행되는 것이므로 교육 현장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복지로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저희 남편은 자동차 영업일을 합니다. 경기의 변동에 따라 영업이 잘 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는 특히 더 어려워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습니다. 저는 도움이 필요로 하는 시민단체나 형편이 어려운 잡지사 등에 한 달에 10만 원 정도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통장 정리를 해 보니 몇 달째 후원금이 빠져나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동안 경남도와 교육청에서 의무로 지원받고 있던 딸아이들의 급식비인 9만 6000원(4만 8000원, 2명)이 스쿨뱅킹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후원을 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저는 후원금과 아이들의 급식비, 둘 다를 감당하기 버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몇 군데의 후원을 끊어야 했습니다.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이 급식비를 내지 못한 아이로 호명 당하거나 불러가서 상처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라고 <소나기밥 공주> 동화 속의 공주처럼 형편이 어려워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겠습니까?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때에는 더 많은 공주들이 생겨나겠지요.

도의회에 가서 의장님과 면담하면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도의회 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고민하기보다 교육감 탓만 하는 그분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급식 재정이 달려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선거할 때에는 여당 야당에 상관없이 보편복지를 주장하던 그분들이 도의회에 들어가고 나서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퇴거명령서'라는 무서운 서류를 받고 나서도 면담실에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위법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섭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의장님이 그 날 늦게라도 다시 오실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평범한 엄마들이 아이들 밥 문제로 어려운 곳을 찾아갔는데 끝끝내 모른 척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면담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고 그 다음 날 밤까지 퇴거 명령서는 4차까지 늘어 갔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난생처음 경찰에게 연행되어 경찰서라는 곳에 가 보았습니다. 평범한 엄마로 살아온 제가 오늘 이렇게 처음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퇴거 명령이라는 법적인 명령에 응하지 않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 모두가 따뜻한 밥 한 끼 당당히 먹어야 한다는 저희 엄마들의 행동이 법정에 설 만큼 위중한 것인가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부당함이 가해질 때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 어른인가요? 내 아이만 급식비 낼 수 있다고 모른 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저희 엄마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무상급식 #창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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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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