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람들처럼> 책 표지(말레네 뤼달 지음 / 강현주 옮김 / 로그인 펴냄 / 2015.04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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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이야기할 가치는 신뢰입니다.
신뢰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토대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 때 또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받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삶과 인간을 긍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는 국민 78%가 다른 사람을 믿는다고 응답할 정도로 신뢰가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정부와 기관을 믿는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더 높아서 84%에 달합니다.
한 예로 덴마크 엄마들은 식당에 왔는데 아기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면 식당 밖에 유모차를 세울 때 아기도 그대로 두고 들어갑니다. 신뢰가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일일지 모릅니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덴마크 출신 엄마가 아기가 자는 유모차를 식당 밖에 세워 두었다가 체포된 일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덴마크 사람들은 오페라 극장에서 수백 명이 코트를 밖에 벗어 두고 들어가는데, 옷을 훔쳐가지 못하게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끝나면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자기 코트를 찾아서 입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신뢰가 높으면 부패가 발붙이기 힘듭니다. 어쩌면 부패의 핵심은 신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덴마크는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지 않은 나라로 손꼽힙니다. 물론 덴마크에서도 부패 사례가 있긴 합니다. 현 덴마크 총리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은 몇 년 전 GGGI(Global Green Growth Institute, 글로벌녹색성장기구)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공금으로 명품 속옷을 잔뜩 산 사실이 발각돼 국민의 분노를 샀습니다.
이른바 '속옷 스캔들'로 불리는 이 사태에서 국민은 뢰케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의장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옷을 살 순 있지만, 겉에 입는 정장이 아니라 보이지도 않는 속옷을 샀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공직자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게 부패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정할 자유다음으로 이야기할 가치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어떤 사람이 될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저는 행복의 시작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덴마크에서는 젊은 사람들 60%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수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자유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육의 초점이 개성 개발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모든 아이에게 재능이 있다고 믿습니다. 창의력이 높은 아이, 음악적 자질이 있는 아이, 수학을 잘하는 아이 등 각자 다양한 재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능은 똑같이 가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져 왔던 수학이나 영어에 재능이 있는 아이만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덴마크에서는 창의력만으로도 학교에서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코펜하겐에 사는 친구와 저녁을 함께하는데 그녀는 21살 된 아들이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며 아주 기뻐했습니다. 무엇이 되려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들이 청소부가 되려고 한다며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자식이 청소부가 되겠다는데 부모가 돼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지 의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만약 청소부가 없다면 쓰레기는 누가 치울까요? 모든 직업은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에서 똑같이 중요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청소부나 변호사나 의사나 사회적인 역할이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청소부를 만나면 항상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사람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이 존중받을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모가 자녀의 자유를 빼앗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를 자신의 '미니미'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랑을 핑계로 부모의 욕구를 자녀에게 투사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부모는 자기의 꿈을 자녀를 통해 이루려고 합니다. 자녀를 성공하면 자신이 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아이를 참 잘 키우셨네요'라는 말이 최고의 칭찬입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부모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덴마크에서 18살이 되면 집을 떠나 독립을 하고 정부가 매달 760유로씩 지원을 하는 것은 부모가 혹시라도 자녀의 인생에 끼어들어서 자녀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입니다. 부모의 수입에 상관없이 모든 청년은 지원금을 똑같이 받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자유를 더 많이 누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압력을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자유를 이야기할 때 남녀평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덴마크에서는 남녀평등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논쟁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해서 남자에게 더욱 많은 자유를 허락합니다. 남자가 집에서 육아를 전담한다거나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고정관념 때문에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남녀평등은 여자가 남자처럼 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냥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일 뿐입니다. 남녀평등은 여자든 남자든 고정관념이나 금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역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이뤄집니다.
공동체 의식,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