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전공은 주체사상, 그게 어때서요?

[주장] 참을 수 없는 '주체'의 가벼움... 북한 공부한다고 북한 닮는다는 건 어불성설

등록 2015.10.26 20:23수정 2015.10.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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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손을 잡은 채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손을 잡은 채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을 배우는 학생'은 필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필자는 김일성 주체사상만을 배우지는 않았다. 김정일 주체사상, 김정은 주체사상까지 다 배웠다. 주체사상의 내용은 물론 주체사상의 역사까지 세세히 공부했다. 지금 필자의 말을 듣고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필자가 주체사상을 공부한 이유는 간단했다. 무엇보다 주체사상을 알아야 북한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필자는 동국대학교 북한학과를 다닌다.

필자가 주체사상을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번에 '뜨악'하는 표정을 짓거나 "그럼 북한을 옹호해?"하고 묻는다. 직접적으로 "빨갱이야?"하고 비꼬는가 하면, 군필자인 필자에게 "군대 헛 갔다왔네"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가 평소 북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공부한다'는 말을 곧 '주체사상을 믿고 따른다', 혹은 '주체사상을 믿고자 하고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필자가 말하는 공부는 후자의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고, 순수하게 그 의미와 역사를 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여야만 사람들도 '아~' 한다. '네가 그 정도는 아닐 줄 알았어'하는 안도감과 함께. 물론, '그래도 그건 아냐'라며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온건한 것, 불온한 것

한국의 공부는 온건한 공부와 불온한 공부의 두 갈래로 나뉜다. 온건한 공부는 불온하지 않은 공부이고, 불온한 공부란 국가비판적 공부다. 불온한 공부의 3대 대명사가 바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이다. 누군가 경제학의 케인즈주의를 공부한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케인즈주의자'라고 일컫지 않는다. 하지만 불온한 공부의 3대 대명사는 다르다. '저 공산주의 공부해요'라고 말했다간, 근처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등짝을 얻어맞기 딱 좋다. 그것이 불온한 공부기 때문이고, 앞서 말했듯 불온한 공부는 불온한 사상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은 결과적으로 '수령절대주의' 사상이다. 주체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를지언정,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주체사상을 실제로 공부해본 결과, 그것이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실은 더 명확해졌을 뿐이다. 고등교육과정 정도를 거친 누구라도 주체사상을 공부해 본다면, 그 부정적인 진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주체사상은 아직까지 금단의 영역이자 악의 성지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이 금단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기 위해 '주체사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나왔을 때, 시민사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는 크게 두 가지의 비판을 했다. 첫째,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그럼 역사교육을 받은 한국 청년이 전부 주사파냐? 둘째, 그래, 역사교과서에서 주체사상 가르친다. 북한의 현실을 명확히 꼬집을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있다. 새누리당이 주체사상 운운하는 데에 대하여, '우린 너희가 생각하는 종북좌파가 아니야!'라고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국가, 식솔로서의 시민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 강화 북괴 김정은 타도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 강화 북괴 김정은 타도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다.연합뉴스

이런 비판의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모든 반대파가 종북좌파가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합리적인 비판을 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반대파를 '종북좌파'나 '빨갱이'의 사상프레임 속에 가둬놓으려고 하는 것은 진부하기까지 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들이 끊임없이 '종북프레임'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이 전략이 먹혀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새누리당 집권층을 공고히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파 또한 그 프레임 속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건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니스벳은 그의 저서 <생각의 지도>에서 "한국과 북한을 비교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논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면 모두가 한국의 우월성을 인정할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전통이 없는 한국인에게는 옳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 정부는 북한에 관한 정보로부터국민을 '보호'하고자 했고, 북한에 관한 어떠한 형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한국과 오늘날의 한국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종북' 담론은 반국가적 세력에 대한 국가의 무제한적 탄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북 담론은 옳은 사상을 가진 국가가 사상적으로 미성숙한 시민을 보호한다는 식의 가부장적 기제와 닿아 있다. 새누리당은 '주체사상 학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주사파의 부활을 암시했다. 주사파의 부활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비상사태일 뿐만 아니라, 미성숙한 시민들에 대한 사상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북한이라는 적을 앞에 둔 상태에서, 국가는 또 한 번 아버지로서의 존재를 꿈꾸고, 시민은 '아버지, 저희 그런 거 아니에요!'하고 외치며 기겁하고 있다.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 내가 너보다 북한 비판 잘할 걸?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직 대한민국 사상공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국가는 물론 시민조차도,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합리적 사고를 통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아직도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라는 질문에 극도로 조심스럽다.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른바 NL계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핵심적으로는 그건 그 질문에 응당 따라나올 '북한이 말하는 거니까', '북한에 동조하려고?'식의 비논리적인 비판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한다. '일본의 다케시마 주장을 읽으면 거기에 동조하게 되니? 중국의 동북공정을 공부하면 고구려를 빼앗기니? 그건 바보지.' 새누리당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주체'적 정치논리에 끌려다니지 말고, 합리적이며 전면적으로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주체사상 배우면 어때서?"라고, "대한민국 시민이 주체사상을 공부한다고 주체사상에 빠져버릴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고.

주체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북한 김씨 일가의 연설이나 담화를 접하게 된다.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은 "당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수정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북한식의 주체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1992년 1월 3일 김정일은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이라는 담화에서 배신자들의 반동적 궤변에 의해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고 있다고 외쳤다.

지난 10월 10일 김정은은 당창건기념일 연설에서, 인민은 당을 어머니처럼 무한히 신뢰해야 하여 일심단결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인 10월 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자 "하나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사상 배우길 참 잘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주체사상 #김일성 #북한 #새누리당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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