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철길 집. 철길 옆 무허가 판자촌에 10여 세대가 살았다.
대구인권시민기자단
IMF 이후 거리 노숙자 문제의 심각성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고층빌딩에 가려진 극빈층 삶 터의 문제는 단기적인 상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2001년 대구 쪽방 상담소가 생겼다. 복지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쪽방 거주자들에게 세탁·주거제공·급식 등 기초생활서비스와 각종 상담을 지원하는 쪽방 상담소에서 근무하다 보니 위의 김씨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쪽방 거주자가 처음부터 빈곤했던 것만은 아니다혹자는 쪽방 거주인, 노숙인 등은 게을러서 그렇게 사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박씨의 사례를 보자.
박씨는 대기업 건설업체에서 근무했다. 멀리 중동 지역 폭염속에서도 열심히 일했던 그는 퇴직하면서 작은 기업체를 만들었다. 그런데 국제유가 파동으로 문을 닫게 되면서 10억 원 이상의 채무가 생기게 되었다. 믿고 돈을 빌려준 지인들에게 면목이 없고 가족을 볼 자신도 없어서 박씨는 거리 노숙과 쪽방생활 등의 도피생활을 시작하였다.
박씨는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했지만 위기 상황에서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가족들과 행복했던 시간, 잘나갔던 옛 시절은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눈물이 되어버렸다.
이후 대장암이 발병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아픈 와중에도 수술비와 병원비 마련을 위해 건설 일용직을 다니다가 '화장실을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는 핀잔만 듣고 왔다고 한다. 한때는 잘 나갔던 그는 이제 병든 몸으로 혼자 쓸쓸히 쪽방을 지킬 뿐이다.
화려한 건물 뒤에 가려진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