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탕 없이 짜장면 만들기, 가능하네

[류외향의 자연주의 음식과 삶의 이야기⑥] 설탕, 그 문제적 식재료를 극복하다

등록 2015.11.06 16:56수정 2015.11.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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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조미료(아래 'MSG') 제거에서 시작된 우리의 자연주의 음식은 설탕 문제로 나아갔다.


"설탕? 설탕이 뭐?"

나는 남편이 설탕 문제를 꺼냈을 때 '죄 없는 설탕'을 두둔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30여 년 동안 맹신한 MSG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과 똑같이, 30여 년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즐겨왔던 '달다구리'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짜장도 단맛이 꼭 필요한 음식이다. 천연의 단맛을 내기 위해 양파를 많이 사용하지만, 아무리 양파를 많이 넣어도 적당한 단맛을 내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설탕을 넣게 되는데, 원래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뽑아내는 이 설탕은 당연히 천연이어야 마땅하고, 그랬다면 우리가 배신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장 흔한 것은 정백당으로 불리는 정제설탕이다. 백설탕, 황설탕, 흑설탕 불문이다. 사탕수수나 사탕무의 즙을 짜서 얻는 원당까지는 천연이지만, 정제설탕은 이 원당을 '정제'라는 필수 공정을 거쳐 만든다. 당 성분 이외에는 모든 것을 '불순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제거하고 순백의 하얀색을 만들기 위해 표백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무려 20가지 이상의 화학약품이 들어간다.

나는 예전에는 황설탕과 흑설탕은 표백 과정이 필요 없는 것이므로 백설탕보다 화학약품이 적게 들어간다고 알고 있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2008년 당시 우리 가게는 마스코바도를 쓰는 짜장면집으로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창간 13주년을 기념하는 그 특별호에는 설탕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해당 잡지에 따르면 연한 갈색을 띠는 황설탕은 백설탕을 끓여서 시럽으로 만들어 재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열을 가해 갈변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성분의 99퍼센트는 백설탕이라고 했다. 진한 갈색을 띠는 흑설탕은 이 황설탕에 캐러멜 시럽과 기타 물질을 첨가해서 더욱 검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제조 과정을 보면 백설탕보다 더 건강에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성분으로는 백설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진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소개한 정제설탕의 특징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소개한 정제설탕의 특징 류외향

설탕을 만드는 공정은 기업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설탕 이외의 '놀라운' 물질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가도 보호를 받는다. 불행히도 우리는 식품첨가물산업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저 산업이 던져주는 먹거리를 받아먹고 사는 신세일 뿐이라, 이런 사실을 접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아이 덕에 식재료 하나하나 매의 눈으로 뜯어보는 요리사 부부가 되어갔다. 당시만 해도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수많은 화학물질들이 어디서 오며, 어떤 메커니즘으로 인체에 해를 입히는지 아는 바도 거의 없었다. 다만,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자연이 아닌 것은 해로울 것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설탕을 대신할 것을 찾았다

그래, 남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MSG마저 과감히 뺏는데, 한 가지도 아니고 20가지 이상이나 화학물질이 들어간다는데, 까짓것 설탕도 바꿔보자고 작정했다. 그런데 그 흔한 정제설탕 말고 다른 설탕이 있기나 한가? 아무 정보도 없던 우리에게 대안을 마련해준 것이 시사잡지였는지, 인터넷이었는지,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거나 우리는 정제하지 않은 원당이 두레생협을 통해서 판매되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것은 마스코바도였다. 그런데 이 땅 끝 섬 마라도에서 서울·경기지역에만 있는 두레생협의 설탕을 어찌 살 수 있담?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찾으면 나오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을 그때부터 터득해 온 '지독한' 부부가 아닌가? 내가 평택에 사는 동안 이웃사촌이었던 선배네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했다. 언니, 언니하며 선배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선배의 아내는 훨씬 이전부터 자연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어서 길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법을 찾았다. 언니의 지인이 두레생협의 이사였고, 우리의 사정을 전해 듣고는 마스코바도를 마라도까지 택배로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그 귀한 설탕이 한 달에 한 번씩 박스째 마라도로 날아왔던 것인데, 이렇게 하여 지금도 애지중지 여기는 마스코바도와의 인연은 우리 짜장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서울에서 마라도까지 날아온 마스코바도 설탕
서울에서 마라도까지 날아온 마스코바도 설탕류외향

두레생협은 필리핀 네그로스 섬의 원주민들이 200여 년 동안 이어온 전통방식으로 만든 마스코바도를 공정무역이라는 형태로 들여와 조합원들에게만 판매를 한다. 유기 재배한 사탕수수를 쪄서 짜내어 말린 원당이다. 화학물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서 천연이고, 사탕수수의 미네랄이 그대로 녹아 있어 영양과 맛이 풍부하다. 설탕 하나로 요리가 맛있어진다. 달아서 맛있다고 뇌가 착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를 통해 마스코바도를 알게 된 사람도 부지기수다. 한 번 써보면 그 매력에 푹 빠져든다.

몇 년이 지나 마스코바도의 인기가 오르자,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설마, 하고 찾아보니 죄다 남미에서 온 것들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아 사용해 본 적도 있는데, 입자도 다르고 맛은 더더구나 다르다.

'마스코바도'라는 말의 어원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당당하게 같은 이름을 내걸고 판매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지적재산권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마스코바도를 만나면서 MSG를 넘어서 본질적이고 복잡다단한 식품첨가물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것이다. 설탕이 아니었다면 그저 MSG 하나만 배제한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듯 짜장면을 팔아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게에다 커다랗게 '무(無)정제설탕'이라는 글자도 덧붙였다. 그러나 웰빙 바람이 몇 차례 지나간 지금도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인데, 그때는 오죽했겠는가?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제설탕이 무슨 말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판국에 그 앞에다 '무(無)'를 쓰건 '유(有)'를 쓰건 알 바가 아닌 것이다. '정제'는 '순수'와 동의어로 느끼게끔 기업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어용단어이다. 정제당하는 해당 생물의 각종 미네랄을 '불순물'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목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3무(無)'를 자랑스러워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웅변을 토해냈다. 그것이 호감보다는 반감을 살 때가 더 많다는 것도 경험상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진짜 '순수'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게 하겠다는 오기가 뻗쳤다. 여러 해가 지난 뒤, 제주에 내려와 '시인의 집'이라는 카페를 연 시인 손세실리아 언니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리 어려운 길을 택한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미 두 번이나 망한 뒤여서 정말 절절한 심정이었다. 그러자 언니는 "네가 시인이라서 그래"라고 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아주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맞아, 내가 시인이었지'라는 생각과 '어, 이거 멋진데!'라는 생각과 '진짜 그래서 그랬을라나?'라는 생각이 뒤섞이면서 시인이라서 그랬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숙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였던 것도 같다. 그래서 또 망할지언정 포기란 없다며, 그때야 비로소 '자연주의'란 단어를 당당하게 내걸고 세 번째 가게를 열었다가 보기 좋게 또 망했다.

삼세판 완패면 접을 만도 한데,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네 번째 가게를 열었고, 그것이 지금의 화순 가게이다. 아니, 사실은 갈 데까지 가 볼 자신은 더 이상 없었고,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여기서도 안 되면 모든 걸 접는다는 각오였다. 아니, 그것은 각오라기보다 자포자기에 더 가까웠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달리 해볼 것도 없었다. 다른 무엇을 새로 시작하는 어려움보다 하던 거 하는 게 일단은 편하니까,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다시 설탕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설탕은 자당의 제품명이다. 설탕은 슈거(sugar)이고, 자당은 수크로오스(sucrose)이다. 자당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얻는다. 이 자당을 많이 먹으면 폭식하게 되고, 비만이 오고, 당뇨, 조기 폐경, 저혈당증,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를 유발한다는 내용은 설탕 권하는 사회에서 늘 따라붙는 경고문이지만,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 경고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담배처럼 설탕마다 경고문을 붙여야 할 터이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런 병에 걸리는 것은 출입금지 경고문을 무시하고 들어갔다가 물에 빠지거나 지뢰가 터지는 등의 사고를 당하는 격이다. 결국 모든 것은 절제하지 못한 본인 탓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시시때때로 과잉을 조장한다. 설탕 팔아서 돈 벌고, '혹시 나도?' 하는 건강 공포증을 조성해 보험 들게 해서 돈 벌고, 설탕으로 얻은 병을 치료한답시고 돈 버는 이중삼중의 수탈 구조를 만들어 놓는 것, 그것이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이다.

설탕 때려 붓는 '쿡방 열풍', 폭력이다

 설탕은 순백의 하얀색을 만들기 위해 표백 과정을 거치면서 무려 20가지 이상의 화학약품이 들어간다.
설탕은 순백의 하얀색을 만들기 위해 표백 과정을 거치면서 무려 20가지 이상의 화학약품이 들어간다. pixabay

이 수탈 구조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인데, 최근에는 설탕 파는 대기업의 케이블 채널에서 요리의 맛은 오로지 설탕 맛이라며 대놓고 백설탕을 음식에 '때려붓는' 쿡방 열풍이 식을 줄을 모른다.

'달면 맛있다'는 공식을 무한 주입하는 이 요리사는 전문 요리사라기보다, 성공한 프랜차이즈 기업가다. 전국적인 영업점을 넘어 해외에까지 확장된 프랜차이즈는 음식의 맛을 절대적으로 가공양념에 기댄다. 프랜차이즈의 특징은 어느 영업점에 가도 똑같은 맛을 낸다는 것인데, 이것은 가공양념이 아니면 불가능하고, 가공양념은 대부분의 성분이 화학첨가물이다.

이 프로가 사악한 것은 그나마 조미료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성역으로 남아 있던 집밥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가장 자연에 가깝게 보존해야 하는 집밥을 프랜차이즈식의 가공양념 위주의 레시피로 뒤바꿔놓는 그를 '~주부',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사회에 대한 심각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집밥의 힘으로 사교육 없이 수능에서 만점을 받았다거나 소위 명문대를 갔다는 수험생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왔다. 대개 이와 같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류의 이야기는 얄미워 죽겠는 무용담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사실이다. 여기서 힘은 뇌의 힘을 가리키고, 집밥은 화학첨가물 없는 자연주의 음식을 가리킨다.

MSG는 뇌의 가장 중요한 영양분인 포도당의 흡수를 방해한다. 그리고 뇌세포를 보호하는 혈액뇌장벽을 파괴해 알루미늄, 수은, 납, 아질산나트륨 등의 독성 성분이 뇌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의 역할도 그렇다. (출처: <내 아이의 뇌를 공격하는 나쁜 식품들> 한스 울리히 지음) 그러니 오염된 먹거리에 찌든 아이들은 아무리 많은 시간 책상 앞에 앉혀 놓고 학원을 전전하게 만들어도 학습 능력이 신통찮을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의 방송사가 하필이면 설탕 사업을 벌이는 대기업 소유인 것은 우연일까? 나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는 캐릭터를, 성공신화까지 곁들일 수 있는 잘 나가는 캐릭터를 섭외해 설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희석시켜 소비를 장려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제작 의도는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말이다. 종합편성 채널이 생기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폐단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집밥은 심각하게 오염된 먹거리 문화의 마지막 보루이다. 근대 이후 가공식품의 범람으로 집밥의 요리 시간은 계속 짧아져왔다. 이 줄어든 시간만큼 현대인의 병이 늘어난 것인데, 그럼에도 집밥은 외식 음식과는 일정한 경계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무너뜨리라고 한다. 어디 가서도 자연주의 음식으로 위로받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TV가 없어 먹방도, 쿡방도 시청한 적은 없다. 인터넷을 통해 대충 접하는데, 이 집밥 채널이 몇 년 전에 대대적으로 설탕사업을 재개한 대기업 소유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수입되는 설탕의 원료는 대부분 사탕무고, 사탕무는 대량생산되는 유전자조작작물(GMO) 중 하나다. 예전에는 사탕수수가 주 원료였는데, 내 기억으로 2012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원료는 대부분 사탕무다.

GMO 식품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국내 생산'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원료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현행 GMO 표기법 때문에 원료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원산지마저 죄다 '수입산'으로 둔갑한 지 오래라 어느 나라 사탕무인지도 알 길이 없다. 기업도 안 밝히고, 정부도 안 밝히고, 물어도 묵묵부답이지만, 나는 지금의 설탕이 GMO라는 것을 안다. 그 대기업의 임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누군가가 내게 사실을 확인해주었었다.

정제설탕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많다. 좋은 설탕 역시 음식이 건강해지는 중요한 조건이다. 자신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자신의 요리가 자연주의 집밥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다. 설탕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 '무(無)정제설탕'을 실현해 보시라. 꼭 마스코바도가 아니라도 된다. 비정제 유기농 원당을 써 보시라. 음식 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제매거진 <이코노믹리뷰> 온라인판 11월 4일자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이야기는 2008년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으며, 현재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은 마라도가 아니라 서귀포시 화순에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 #마라도에서온짜장면집 #마라도짜장면 #자연주의짜장 #착한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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