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지난 12일 국정화 행정예고문에서 공고한 전화번호를 가진 전화기.
윤근혁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의 취지와 내용을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지난 12일 교육부가 공고한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행정절차법에 따라 국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교육부에 표명할 권리가 있으므로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044-203-7002번, 직접 전화해 봤더니...이에 따라 교육부는 이번 행정예고에서 "의견이 있는 단체 또는 개인은 11월 2일까지 교육부장관에게 제출하여 주시기 바란다"면서 '의견제출' 항목에 교육부 주소와 전화번호, 팩스번호를 적어놓았다. 국정화 관련 의견 문의를 받는 전화는 044-203-7002번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최근 사회관계망(sns)등에서는 "교육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국정화에 대한 의견을 팩스로 보내려고 해도 자꾸 실패해 전화라도 걸어 의견을 말하려고 했더니 이 또한 불통"이라는 내용의 글도 있었다.
500여 개의 교육사회단체가 모인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사무국에서 일하는 송민희 활동가도 "교육부가 행정예고에서 안내한 전화번호로 전화를 최근에 5번, 30일 오후에만 3번 걸었지만 한 번도 통화하지 못했다"면서 "신호음이 울린 뒤 한참을 기다리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나온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교육부가 안내한 의견제출 전화번호가 있는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5층에 있는 역사교육지원팀 사무실을 직접 방문했다. 법에 따라 의견을 잘 듣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교육부가 행정예고문으로 안내한 전화번호를 가진 전화기는 역사교육지원팀에 지원 나온 한 교육관리 A씨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이날 오후 2시 52분 이 전화기를 앞에 두고 직접 전화를 걸어봤다.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전화기가 얼굴에 닿을 정도로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역시 전화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전화기 액정이 켜지면서 기자의 핸드폰 전화번호가 액정화면에 떠 있었다. 3분 뒤 해당 전화기에 다시 전화를 걸어봤다. 이번에도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국정화에 절박한 의견을 가진 국민들이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확인한 것.
송 활동가는 "교육부가 행정예고를 하면서 시민 의견을 듣겠다고 전화번호를 공표하고서는 전화벨을 줄여놓아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있다니 기가 막힌 일"이라면서 "이런 '불통' 정부가 벌이는 행정예고는 쇼인 것 같다"고 말했다.
행정절차법 제44조는 "행정청은 해당 입법안에 대한 의견이 제출된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존중하여 처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 "벨소리 줄이지 않아, 잘 들으면 들려"이에 대해 A관리는 "지금 국회방송을 켜놔서 그렇지 전화벨 소리가 난다"면서 "전화 벨소리를 줄여놓지 않았다. 잘 들으면 들린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화가 오면 액정에 불이 반짝이기 때문에 (벨소리 크기는) 상관없다"면서 "일이 바빠서 다른 곳에 가기도 하고 그래서 전화를 받지 못한 경우는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