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에 방문한 '헤리티지 파크' 입구. 이날이 마침 9·11 참사일이라 안내소 앞에 조기가 게양되어 있다.
임은경
9월 11일 금요일. 이튿날도 8시 반부터 시작하는 일정에 맞춰 아침부터 서둘렀다. 우리 숙소인 미치와 엔젤네 집의 아래층 욕실 구조가 좀 특이하다. 욕실이 좀 큰 편인데 그 안에 샤워실 두 개와 화장실 두 개로 칸이 분리돼 있다. 일반 가정집 욕실 같지 않고 꼭 기숙사 샤워장 같다. 종혁 씨랑 이 얘기를 하다가, '아마 대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집을 지을 때 하숙 등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숙소에 든 첫날 차를 타고 주변 구경을 나갔다가 유타대학교 캠퍼스가 무척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 숙소가 900East인데 캠퍼스가 시작되는 지점은 네 블록 떨어진 1300East부터였다. 집이 대학교 바로 아래에 있는 셈이다. 솔트레이크시티 동쪽 끝, 산 아래 구릉지에 위치한 유타대학교 캠퍼스는 작은 소도시라 할 만큼 면적이 넓었다.
나무와 녹지가 많은 데다가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캠퍼스는 마치 평화로운 시골 정원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캘리포니아에 가서 본 UC 버클리나 산호세주립대학교 캠퍼스가 학기 초의 분주함과 함께 몰려다니는 학생들, 그라피티 낙서 같은 안내문들, 교문 앞 술집과 카페 등 대학가답게 떠들썩한 분위기로 가득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솔루션 아레나에서 총 아홉 개의 강좌로 진행된 이날 세션은 오후 세시 반까지 계속됐다. 대형 컨벤션에 으레 끼게 마련인 중간 공연 때는 '젠트리'라는 이름의 젊은 남성 트리오와 '오딧세이 댄스 시어터' 팀이 등장했다. '젠트리'의 노래는 꼭 찬송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데세렛 북스토어의 종교음악 CD들 사이에서 이들의 앨범을 발견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대학 기숙사 샤워장 같은 민박집 욕실현대무용 팀인 '오딧세이 댄스 시어터'의 공연도 단순한 동작의 반복 이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었다. 여성 단원들도 모두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를 입고, 목과 팔 이외의 신체를 전혀 노출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 역시 모르몬교 신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만한 규모의 국제 컨벤션이라면 좀 더 수준 높은 공연을 유치해도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러자면 상당한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고, 검소와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이들에게 그것은 지나친 사치일지도 모른다.
전날 점심 자리에서 패트릭이 일부 우수 사업자 회원에게 감사 선물로 핸드백을 전달했는데, 핸드백이라는 이야기에 처음에는 입이 떡 벌어지던 한국 아줌마들이 막상 실물을 보고는 다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핸드백이라는 것이 회사에서 자체 제작한 소박한 가방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사옥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사장인 패트릭도 씀씀이가 그러한데 이들에게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날 점심은 길 건너 솔트 팰리스 컨벤션센터 2층 홀에서 먹었다. 해외 참가자들을 위한 환영 행사를 겸한 뷔페 식사였다. 신선한 샐러드와 볶음밥, 빵, 볶은 채소, 사워크림을 곁들인 닭 가슴살 스테이크, 후식으로는 두 가지 종류의 케이크와 얼음을 넣은 자몽 에이드, 커피가 나왔다.
외국 참가자 배지 교환해 받은 상품... 뿌듯한 점심시간
식사 도중 다른 테이블에 앉은 존 갭메이어 북아시아 국장이 눈에 들어왔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한국 참가자 중 그날 제일 먼저 존을 찾는 사람에게 에센셜 오일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던 이벤트 내용이 생각났다. 혹시나 해서 그에게 다가가 '오늘의 선물 당첨자가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코리아 기념 배지 다섯 개를 다른 나라 참가자들의 것과 모두 교환해오면 오일을 주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머지 점심시간 동안 주변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으나, 그 말을 듣고 단박에 마음이 바뀌었다.
쇼케이스 홀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을 샅샅이 뒤져서 호주, 유럽, 일본, 중국, 멕시코 등 외국 참가자들과 다섯 개의 배지를 모두 교환했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2층 홀에 돌아와 존에게 배지들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에센셜 오일 한 병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었다. 회사 임원들만 사용한다는 가죽으로 만든 명함지갑도 받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뿌듯하게 점심시간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