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에서 이어집니다)
한국 정부 공식 발표와 북한 '불바다' 경고에 대해 일본은 또 다시 들끓는다. 민간 어선에게 총격을 가하고도 오히려 일본 정부에 경고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이 이례적으로 그간 한국 정부에만 쏟아 붓던 '불바다' 위협을 일본에 대해 공식적으로 제기한 데 대해 여론과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북한 당국을 향해 '이웃 나라와 인간에 대한 비윤리적이고, 무례하고 야만적인 작태'라며 판에 박힌 듯 항의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일본은 이런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다. 아니 이런 결과를 의도적으로 이끌어 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고위의사결정연구단이 긴급 소집됐다.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은 상황이 긴박해서다. 다케우치 기조실장이 상황 브리핑에 나서서 보고한다.
"한국 측 정보에 따르면 한국 내 반일감정의 격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위층은 이번 군의 일본 어선 총격에 대해 의견이 갈려 갈등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군 수뇌부, 즉 국방장관의 사과와 사퇴를 언급하고 있는 일부 인사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적절한 대응이었으며, 향후 일본의 영해 침범에 대해 강력하게 응징하라는 반응입니다.
예상대로 강경파가 득세한 것입니다. 일부 온건파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상태라고 합니다. 북한 반응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전문가들 판단입니다. 언제나 자신들이 불리해졌을 경우 짖는 개처럼 상대방에게 폭언을 내뱉는 수준이라는 얘깁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 마스터플랜에 의거해 국내의 반한 감정 고조 여론과 함께 결집된 보수 우익의 힘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짐작은 충분히 했지만 한국은 역시 이성적이지 못해. 흥분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니까. 천황 폐하 어진(御眞)을 훼손하더니 결국 애꿎은 어선에 총질을 해대다니. 더욱이 이번에는 북한마저 우리 작전을 돕는구먼. 우리는 우리 시나리오에 맞춰서 계획을 진전시키도록, 그래서 8월 15일 디데이에 맞춰 한국과 관계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게. 다케우치 료타군."
고위급 회의가 끝난 다음 다케우치는 실무 관계자들을 불러 전국적 시위와 언론통제에 대해 세밀하게 지시한다.
"이젠 전체 지방 조직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시점이다. 반한 시위는 주도면밀하게 실행에 옮기되 도쿄, 오사카, 규슈 등 거점 지역에서는 반드시 재일 한국인들에 의한 폭력행위가 일어날 수 있도록 준비한 대로 진행시켜. 그리고 반드시 동영상을 찍어서 방송국에 전달할 수 있게 장비와 인력도 확실히 챙겨 놓고. 이젠 바로 실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대일본의 꿈을 위해 몸소 행하는 애국이라는 점, 명심하고."
다케우치는 자신의 청사진이 차례로 실행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권력에 대한 야망이 점점 손에 잡혀간다는 자신감에서다. 인터폰을 켠다.
"들어오라고 해."
다케우치의 검사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오하라 검사다.
"안녕하십니까.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늘 그렇지 뭐. 보고해 봐."
"K는 계속 독방에 있습니다. 그런데 미키씨가 제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게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한 IP를 추적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 IP도 가짜고, 외국을 경유해 들어온 거니까 추적이 불가능해. 있는 그대로 얘기해 주면 되겠지."
"미키씨가 걱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얼굴도 영 몰라보게 거칠어졌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둬. 자신이 원해서 마음고생을 사서 하는 거니까. 하지만 결과는 뻔하지 않나? 어차피 K를 찾아 달라 내게 애원할 것이고, 결국 내게 돌아올 것이니까. 그리고 법률 적용 검토해 봤어?"
"네, 너무 많아서 뭘 적용시켜야 할지 정리 중입니다."
"일단, 살인을 기본으로 하면서 그 친구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중심으로 최근 개정된 국가안전보장법상 혐의를 잘 입혀봐. 그래야 비밀리에 그를 처리할 수 있게 되니까.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일은 당신하고 나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도록 비밀 엄수하고. 무슨 말인지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럼 K를 엮기 위해 지난 번 투입된 팀은 해체하고 원대 복귀 시키겠습니다. 흔적을 남기면 안 되니까요."
K의 살인혐의는 다케우치 제작, 오하라 감독, K 주연, 김나영, 이시이 레오 조연의 조작극 결과였다. 물론 조연은 모두 가명이다. 이 모든 것이 다케우치, 아니 최고의사결정연구단, 아니 일본 보수 우익 집단의 소산이라는 게 더 맞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데는 간단한 극적인 장치만이 필요했다.
그들은 10여 년 전부터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소야미사키 근처에 있는 마루야마에 300만㎡가 넘는 땅에 '서바이벌 게임센터'라는 이름으로 민간 군사훈련소를 차려 놓고, 요원들을 양성해 왔다. 소야미사키 공원에 있는 '세계평화의 종'이 무색하리만큼 아시아 패권, 그리고 세계 초강국이라는 그들의 헛된 꿈을 위한 '인간 병기'와 일류 스파이를 만드는 곳이다.
여기에서도 출신 성분에 따라 등급으로 나뉜다. 극우 혈통 자녀들은 간부 요원으로 양성된다. 모집원들 꼬임에 빠져 불우한 환경을 벗어나 돈을 벌기 위해 온 요원들은 행동 요원으로 길러진다. 그들은 최소한 2개어 이상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무술과 사격은 최고 수준이다. 살인과 상해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해부학, 한의학, 독극물학 등을 통해 인체와 약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연기는 물론 심리학을 배워서 상대방을 속이고, 협상과 협박을 통해 인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도 익힌다. 처음에는 통합훈련을 한 다음 나중에는 분과별로 인명처리-산업-정치 요원 등으로 나눠 교육이 진행된다.
처음에는 남녀가 분리돼서 교육 받지만 최종적으로는 미인계, 미남계를 가르치며, 방중술도 전수시킨다. 자신의 몸을 철저히 스파이 활동의 기본적인 도구로 삼는다. 영화 '아즈미 대혈전' 시리즈나 '닌자 어쌔신'에서 볼 수 있는 현대판 '닌자 양성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점도 있다. 시대에 맞게 무기를 포함한 각종 디지털 기기의 사용과 해킹 기술, 일상에서의 폭탄 제조법, 헬리콥터와 소형 제트기까지 각종 교통수단 운전법을 전문가 수준으로 배운다는 것, 그리고 성형수술을 통해 얼굴을 바꿀 수 있으며, 극한 상황을 체험하다 치명상을 입더라도 대부분 첨단 의료기술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부 요원이나 행동 요원으로 길러지면 사람이 변한다. 동료는 물론 피붙이나 친구도 오로지 조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일 뿐이다. 그들에게 윤리나 양심은 그냥 단어에 불과할 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대일본 재건을 위해 조직 명령과 그것을 위해 목숨 바쳐 다한다는 의무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훈련소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만 2년에서 3년이 걸린다.
훈련과정에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간부 요원에 한해 사망 사실이 가족에게 통보되며, 행동 요원들은 자체 소각장에서 화장돼 바다에 뿌려진다. 정확히 2000년, '뉴 밀레니엄'부터 시작된 훈련소를 거쳐 간 사람은 매 기수 30여명 내외로 모두 5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정부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에 특채돼 공식적 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음지'에서 공개적으로 처리할 수 없거나 어려운, '구린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오하라 검사는 태평양전쟁 때 외무성 장관을 지낸 명문가 출신 조부를 둔 간부 요원으로 뽑혀 훈련을 마친 뒤 고시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된 경우다.
K에게 살인 혐의를 씌우기 위해서 정치 요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이 동원됐다. 주로 일본 내 정치나 외국과의 외교부문에서 해결해야 할 사건에 투입되는 팀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적으로 다케우치 개인사에 쓰였다. 그들에게 K를 처리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폭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K가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으로 가장해 만나고 싶다는 글을 게재한 다음 전화로 접촉해 K를 불러냈고, 약물을 사용해 궁지에 몰아넣는 데는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사후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해킹해 그들의 흔적은 모두 지워버렸다. 그리고 일자를 조작해 K가 직접 쓴 것처럼 K의 혐의를 뒷받침해 주는 몇 건의 글을 올렸을 뿐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케우치는 K를 그렇게 살인과 함께 일본 내 '내란 음모 및 교사'라는 엄청난 혐의를 뒤집어 씌워 재판 없이 인신을 구속하고 자기 마음대로 요리하려 한다. 이를 테면 평범한 합법을 가장한 비범한 불법을 자행한 것이다.
모든 게 뜻대로 돌아간다. 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라고 했나. 스텔라의 몸과 체취가 떠오른다. 다케우치의 상징이 일어난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스텔라에게 전화하고, 같은 술을 준비시킨다. 다케우치에게 스텔라는 성욕을 채워주는 자판기, 그것도 여느 식당에서처럼 동전을 넣지 않아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간혹 모르고 꺼낸 동전을 불우이웃 돕기 모금함에 넣으며 갖은 생색을 낼 수 있는 무료 자판기였다.
다케우치는 서두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스텔라를 껴안는다. 그녀의 얼굴과 입술, 그리고 목덜미에 이어 가슴 골짜기까지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집요하게 핥는다. 하지만 스텔라는 자신의 차가워진 가슴에서 다케우치를 격하게 밀어낸다. 다케우치는 연연하지 않고 억세게 다시 스텔라를 안는다. 스텔라는 다시 한 번 그를 완강하게 떨쳐낸다.
흥분한 수컷에게, 섹스의 전희로 행하는 포옹을 거부하는 것은 모멸이다. 다시 또 스텔라의 거리낌을 힘으로 이겨내고 입을 포갠다. 혀를 내민다. 역시 스텔라는 입을 악물고 그에게 항거한다. 다케우치는 강렬한 섹스의 욕구만큼 격렬한 응징으로 스텔라의 뺨을 때린다.
"뭐가 문젠데?"
"당신을 받아들이기 싫어요. 언제나 이런 식이죠. 나는 당신에게 뭔가요? 당신의 아웃렛? 아니면 당신이 원할 때면 언제나 안을 수 있는 섹스돌?"
"왜 그래? 너답지 않게?"
"나다운 게 뭔데요? 내가 당신에게 나다운 게 뭐냐고요?"
다케우치에게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거칠다. 스텔라를 침대에 내동댕이친다.
"안 돼요. 싫단 말이에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둥대는 스텔라를 누르며, 자신의 하의 지퍼를 내린다. 스텔라의 한 손을 꺾어 더 이상 섹스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스텔라를 침대 끄트머리로 사정없이 끌어 내린다. 스텔라를 엎어 놓는다. 스텔라는 울부짖는다. 그 비명이 오히려 다케우치를 자극한다. 스텔라의 하얀 색 원피스를 찢듯이 벗겨낸다. 하얀 팬티마저 우악스럽게 내린다. 스텔라의 팔을 놓아준다. 대신 스텔라의 머리를 짓누른다. 이것은 강간이다.
당하지 않으려는 스텔라의 눈물은 다케우치를 더욱 흥분시킬 뿐이다. 후배위다. 흉포한 칼잡이가 날카로운 칼로 거침없이 급소를 찌르듯 자신의 그것을 스텔라의 건조한 그곳을 포악하게 쪼아댄다. 기계적인 남성의 운동은 채 1분도 안 돼서 끝난다. 다케우치의 볼일은 끝났다. 섹스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지퍼를 올리고는 돌아선다. 문을 세차게 닫고는 그 자리를 떠난다. 울다 지친 스텔라는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결연하게 혼잣말한다.
"다케우치 료타, 이것으로 끝이다!"
스텔라가 겪고 판단한 다케우치는 여지없었다. 예상한 것과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몇 년 전 봤던 영화 '악의 교전'에 나오는 고교 교사 하스미 세이지와 판박이다.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학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교사의 '롤 모델'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는 반대로 내면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는 인간이다.
타고난 '사이코패스다. '이지메', 성희롱, 음행 등 온갖 나쁜 짓을 재미삼아 저지른다. 더욱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혹은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하스미는 차례로 죽인다. 결국 자신의 살인을 감추기 위해 학급 학생 전체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샷 건'으로 인간사냥에 나서 학생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영화에서 핏발 선 그의 얼굴과 다케우치의 얼굴이 묘하게 섞이면서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사람을 추억하고 싶은 스텔라였다. 그래서 다케우치의 폭력은 절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일이기도 했다. 돌이킬 수 없다. 추억은 반복되는 비극을 멈추지 못한다. 눈물을 닦은 스텔라는 컴퓨터를 켠다. 캠을 통해 녹화된 동영상에는 다케우치의 잔인한 몸짓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 장면을 컴퓨터에 다시 갈무리해 놓은 다음 스텔라는 같은 건물 상가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는다. 간단하게 사건의 정황을 말한다. 의사의 도움으로 스텔라는 다케우치의 강간을 증명하는 모든 자료를 준비한다. 의사에게는 비밀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집으로 돌아온 스텔라는 그때서야 뜨거운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더러운 인간의 타액과 배설물을 남김없이 씻어낸다. 바디클렌저로 거품을 충분히 내서 몇 번씩 반복해서 곳곳을 닦는다. 온몸에 묻어 있는 그의 체취는 진한 향수로 없앤다. 그의 흔적을 지울 수는 있어도 오늘 밤 상처는 죽음으로도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케우치는 이 때문에 불시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대가를 톡톡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이 미움으로 변하는 순간 스텔라는 사무치게 외롭다. 어릴 적 스텔라에게 돌아온다던 약속만 남긴 채 떠나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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