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트레일'과 '아이젠하워 고속도로'를 표시해놓은 휴게소 안내판.
임은경
베오와웨 휴게소에서는 젊은 원주민 청년들이 하늘색 돌로 만든 목걸이, 귀걸이, 반지 따위의 장신구를 바닥에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 선명한 하늘색 돌이 무엇인가 했더니 터키석이란다. 인근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많이 나는 터키석을 가공해서 만든 것인데, 이런 장신구 판매가 보호구역 안에 사는 원주민들의 수입원이 되는 듯했다.
보석은 참 예쁜데 그걸 달고 있는 목걸이 줄이며 귀걸이의 디자인은 서툴기 짝이 없다. 원주민 느낌이 물씬 나는 장신구들이다. 터키석은 오래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장신구에 많이 사용하던 보석이다. 나도 수백 년 전 인디언 여인들처럼 푸른 터키석을 목에 걸어볼까.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가 20~30달러 선으로 매우 저렴했지만, 평소 장신구에는 영 취미가 없던 터라 결국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아이젠하워 하이웨이'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하루 종일 길 위에 있는 날은 주변의 자연과 동물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한국과는 모양과 생김새가 다른 새들이 인상적이다. 파닥파닥 날아가는 작은 새가 달리는 차 앞을 순식간에 지나갔다. 온 몸이 파랗다. 크기와 모양이 우리나라의 제비 비슷한데 몸놀림은 훨씬 재빠르다. 이름을 물어보니 북아메리카 대륙에만 사는 블루제이일 것이라고 한다. 이름도 예쁘고 생김새도 예쁜 새. 손에 넣기 어렵다는 행복의 파랑새가 생각났다.
네바다의 사막으로 접어들자 멀리서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활공하는 독수리가 많이 보였다. 날개를 수시로 파닥거리는 작은 새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엄 같은 것이 느껴진다. 독수리는 사람 있는 곳으로는 오지 않아서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다. 달리다 보니 로드킬을 당한 토끼나 사막여우 같은 동물들의 시체가 간간이 눈에 띈다. 고속도로 상공을 나는 독수리들은 아마도 그런 동물의 시체를 찾아다니는 것이리라.
우리도 의도치 않게 마침 길 위로 비상하던 새를 한 마리 치고 말았다. '퍽' 하는 소리까지 났으니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네바다의 사막 한복판 휴게소에는 참새처럼 가게 앞을 뛰어다니는 자그마한 새들이 있었는데 몸 전체가 까마귀처럼 까맣고 크기는 한국의 직박구리보다 좀 작고 날씬했다. 일종의 사막 참새?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참새와 까마귀는 생김새도 크기도 한국에 사는 종류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중에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서 본 갈매기도 그랬다. 도시의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는 곳에는 빠지지 않는 비둘기도 똑같다.
샌프란시스코 부두에 있는 해산물 레스토랑 거리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먹으려고 몰려든 비둘기 떼가 지천이었다. 레스토랑 앞에는 주차장이 있어서 차가 수시로 지나다니는데, 비둘기들은 차가 지나가도 아랑곳없이 음식을 주워 먹다가 차에 치이기도 했다.
사막 한복판 군사도시 호손에서 1박가며 쉬며 종일 길을 달려 이날 저녁에 찾아든 곳은 네바다 주 서쪽 끝자락에 있는 호손(Hawthorne)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80번 고속도로를 타고 리노에 들어가기 전에 95번으로 갈아타고 정남향으로 내려와 당도한 이곳은 근처에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군사도시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지만, 이곳은 네바다 쪽에서 요세미티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라 이날 밤은 여기에서 자기로 했다.
길에서 상당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날이 저물었다. 미국은 국도는커녕 고속도로에도 가로등이 없다. 오로지 내비게이션에만 의지해서 생전 처음 와보는 길을 가는데 갑자기 주위가 온통 깜깜해지자 잠시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결국 길을 잘못 들어 도시 외곽의 군 기지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차를 돌려서 나와야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마침내 예약한 숙소인 Holiday Lodge를 찾았다. 우리 눈에 비친 곳이 전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개의 모텔과 식당 몇 군데, 역시나 네바다라면 빠질 수 없는 카지노, 그리고 50~60여 채의 민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 한복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