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드라마 <정도전>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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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에서 이성계(유동근 분)가 정몽주(임호 분)와 정도전(조재현 분)에게 '중(中)'이라는 글자를 주면서 "내게 한 글자로 가르침을 달라"고 이들에게 청합니다. 그랬더니 정몽주는 '충(忠)'이라고 쓰고 정도전은 '사(史)'라고 씁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성계는 "포은과 삼봉을 함께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데, 그 가르침은 서로가 함께 설 수가 없구나..."하며 탄식을 합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정몽주와 정도전 모두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의해 암살 당하는 운명을 겪지요.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정몽주는 보수우파의 거두이고, 정도전은 진보좌파의 거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국가 건설을 꿈꾸었던 이성계는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죠. 조선이 고려를 계승하여 문인통치의 법통을 이어간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확신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귀족사회와 종교의 타락으로 문약한 사대주의로 빠졌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새로운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천명해야 했기 때문이죠.
이처럼 우리 역사의 격동기에는 늘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가 함께 활동했습니다. 두 세력이 소신 있게 서로의 주장을 펼 수 있고, 그것이 조당에서 팽팽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며 임금에 대한 직언과 간언이 봇물이 터지듯 나올 수 있을 때 비로소 국정운영이 안정감과 역동성을 동시에 가져간다는 것을 당시의 신하들은 알고 있었죠. 세종-문종 시대와 성종 시대, 그리고 영조-정조 시대에 사상·경제·문화 등에 있어서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실제로 정몽주와 정도전은 서로가 정반대의 관점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존중하고 아꼈습니다. 동지 관계였던 정도전과 이방원이 서로 적으로 갈라서게 된 계기가 바로 정몽주 참살이었으며, 고려 말 정도전이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몽주는 구명을 위해 애썼지요. 상해 임시정부와 해방 직후의 건국준비 위원회에서도 좌우 균형이 맞춰졌지요. 그러다가 남북 분단체제가 지속하면서 진보좌파가 설 자리는 점점 없어져 갔지요.
진보와 보수 균형 무너뜨리려는 국정화, 위험한 발상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이죠.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비록 상징적인 수준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김대중을 비롯한 진보좌파 인사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뒀기 때문입니다.
만일 김대중이 없었다면 1980년 서울의 봄도, 1987년 6월 항쟁도, 1992년 군정 종식도, 1997년의 수평적 정권교체도 모두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결국 산업화 동안 민주화의 씨앗이 뿌려졌고, 훗날 민주화로 인해 산업화의 부작용과 병폐가 치유되는 선순환의 사이클을 대한민국이 밟아나갈 수 있었던 것이죠. 왜 대한민국만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가 되었을까요?
일전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를 다니면서 많은 현지 지식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가장 놀라워했던 것은 바로 한국의 교육수준이었습니다. 단지 문맹률이 낮다는 것에 이들이 놀란 것은 아닙니다. 기득권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민화 정책'이 필수적인데, 어떻게 한국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허물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편적 교육에 힘쓸 수 있었느냐는 것이죠. 이 부분은 분명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위대한 업적일 것입니다.
실제로, 동남아 지식인들의 우려는 우리 역사 속에서 현실화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고, 곧이어 1964년 6.3사태로 이어졌고, 1970년대에는 민청학련 사건과 긴급조치, 그리고 1980년대에는 광주 민주화 항쟁과 1987년 6월 항쟁으로 끝내 민주화를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물결로 확정 지었습니다. 그 당시의 기준에서 보자면 이들 시위와 사건을 일으킨 세력들이 진보좌파였으며, 이들 중 일부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나머지도 참혹한 형벌을 견뎌야 했죠.
다소 장황하게 제가 역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가 끊임없이 경쟁하고 격돌한 것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역사였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보수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70대의 상당수는 10대와 20대였을 때에 4.19혁명에 가담했거나 찬동했고, 60대의 상당수는 박정희의 군부 통치에 저항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50대의 상당수가 87년 6월 항쟁에서 '넥타이 부대'를 형성했던 분들입니다. 비록 지금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더라도 진보세력의 씨앗을 말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은 경험상 충분히 공감할 것입니다.
10대의 나이에는 보수우파와 진보좌파 양쪽 모두를 향해 지적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또한, 혈기 왕성한 20대에는 보수우파보다는 진보좌파로의 쏠림 현상이 큰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의 산업화 및 민주화 선배들도 똑같이 그와 같은 과정을 밟았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만일 지금의 5070세대가 10대와 20대 때부터 우경화된 채로 그대로 기성세대가 되었다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국사 국정화 시도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보수우파 집권 기간에 진보좌파의 싹을 아예 말려버리려는 것이기 때문이죠. 만약에 이것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다시는 좌우균형을 통한 역사적 다이내미즘(역동성)의 주역이 될 수 없습니다. 혹 정권이 교체되어서 야당으로 헤게모니(주도권)가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들 또한 국정 교과서 체제에 안주하여 거꾸로 보수우파의 싹을 잘라버리려고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쪽이 되었건 바람직하지 않지요.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 주입하려는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