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없는 서른살 남자, 이렇게 행복해도 돼?

[인터뷰] 문학 전공자에서 요리사가 되기까지, 트리스텅 이야기

등록 2015.11.09 08:53수정 2015.11.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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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자리를 성적순으로 앉힌다는 학교, 급식을 성적순으로 먹인다는 학교, 그렇게 잔인하게 공부시켜서 대체 뭐에다 쓰려는걸까? 그렇게 경쟁하고 피터지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자격증에 졸업증에 식스팩을 준비해서 '좋은'직장에 가고, 학벌과 집안이 '좋은' 배우자를 구해서 결혼하고, 태교에 '좋다는' 성문영어와 정석수학을 임신 중에 공부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좋은' 학원을 한 달에 서너 개씩 보내고.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남들과 똑같은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사례들을 한국의 청년들에게 보여주고자 남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프랑스인들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스케이트보드를 원없이 타기 위해 찾은 직업, 요리사

 손으로 유기농 빵을 반죽하는 트리스텅의 뒷모습
손으로 유기농 빵을 반죽하는 트리스텅의 뒷모습정운례

트리스텅을 만난 것은 유기농 빵집에 견학갔을 때였다. 새벽 4시부터 빵 반죽을 하는 빵집에 6명의 불렁줴(빵 굽는 사람)가 있었는데, 트리스텅은 그중에 가장 친절했다. 일하는 동안 방해되지 않게 피해다니며 틈 나는대로 사진을 찍는 나에게 이것저것 먼저 설명해주고, 아침도 못 먹고 온 나에게 잘 구워진 빵을 먹어보라고 건네준 것도 그였고, 막 구워 나온 빵은 발효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기 때문에 한 김 식혔다가 먹으라고 조언을 준 것도 그였고, 견학을 마치고 자리를 뜰 때 아쉽다는 기색으로 페이스북 연락처를 물어온 것도 그였다.

'나에게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열고 친절을 베푸는 흔치 않은 프랑스인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빵을 구운 지는 몇 달 안 됐다는 그의 지난 10년간 직업은 실은 요리사였다. 내가 견학갔던 빵집에는 휴가 간 직원들을 대신해 2주간 일손을 도우러 왔던거였다. 요리사로 세계여행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시간이 날 때면 스케이트보드를 즐긴다.  

한국같으면 대학 들어가려고 피 터지게 공부하고, 학교 다니면서는 아르바이트에 각종 자격증 따느라 바쁘고, 졸업할 때면 직장 구하느라 피가 마르고, 나이 서른이 되면 여자 친구 하나쯤 있어서 주말에는 데이트하고 결혼자금과 집 장만을 이유로 적금과 은행대출에 허리가 휘어질 텐데, 서른의 나이에 어쩌면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신나게 살 수 있지? 12월부터 3월까지 알프스 스키장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공짜로 스키를 즐기러 간다기에 현재 실업자가 된 그를 서둘러 만났다. 

문학 전공했지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한 때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한 때 트리스텅

그는 파리에서 태어나 넝테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학사를 마치고 1년간 요리를 공부했다. 평소에 요리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은 고등교육을 마치고 나와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고학력 실업자가 늘고 있는 추세 아니던가? 쉽게 직장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실업교육에 있다고 믿었고, 프랑스를 떠나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었다. 해외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행자금을 모으는 방법으로 워킹 홀리데이도 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과일 따는 일이고, 게다가 계절을 잘 맞춰야 한다.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방식은 요리사가 되는 것! 세상 어디를 가도 칼만 있으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사는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대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 2년동안 준비했다. 고민하고 준비하는데 1년, 그리고 1년짜리 요리 전문과정을 다니면서 돈을 모았다. 교육과정상 학교에서 절반의 시간을 보내고, 식당에서 연수생으로 절반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1살에 첫월급을 받았다. 대학 동창 중에 가장 먼저 돈을 벌었다. 대학 동창들은 지금 유명 출판사나 '라 리베라시용'같은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의 친구 중 한 명이 트리스텅이 쓰는 책의 교정을 봐주고 있다고 한다.

교육이 끝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엄마에게서 배운 영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국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일을 구했다. 그 다음은 호주로, 멕시코로, 캘리포니아로, 태국으로.

태국에서는 일이 아니라 여행을 했고 요리는 돈을 주고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스케이트보드 타는 친구와 어울리다가 한명이 채식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쉐프를 소개해줬다.

쉐프네 집에서 1주일을 먹고 자면서 채식요리를 배우고, 마지막 날에는 시장에 나가서 재료 고르는 법을 배웠다. 또다른 잊지 못할 경험은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 석 달동안 요리사로 일하면서 공짜로 여행을 했던 때였다.

'한국에서는 공부 마치면 구직하고 연애하고 집 장만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등의 일련의 사회적 기대감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더니 그런 기대감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란다. 다만 자기는 그 방식대로 살지 않는 것뿐이라고. 이제 서른인데 사랑하는 사람이랑 아이를 갖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여행하는 동안 4년간 사귄 사람이 있었는데 각자 서로 다른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중요한 건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난 지금이 행복해!"

"원하는 대로 살아왔어, 난 행복해"

강가를 거닐며 얘기하다가 운동 중인 내 지인을 만났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트리스텅은 그에게 바로 악수를 청하며 자기 이름을 소개하고는 지인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아직도 존댓말로 대화하는 지인에게 바로 반말을 건넨다.

지인에게 "당신도 아는 그 유기농 빵집에서 일했던 블렁줴다"라고 그를 소개했더니 지인은 "아, 당신네 빵 정말 맛있다. 빵 레시피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트리스텅이 바로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더니 레시피를 적어준다. 여행에 의해 단련된 열린 마음 때문에 초면인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걸까. 

앞날에 대해 걱정이 없느냐 물었더니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는 답이 날아왔다.

"중요한건 현재야. 내가 프랑스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많았어. 보험, 대학교육, 쉔겐조약 등 그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해.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하고싶은 건 다 했어. 난 지금이 행복해."

맞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행복이 올꺼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현재를 견디며 살아간다. 중요한 건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지혜를 깨닫는건데. 나니 모레티의 영화 '아들의 방'에서 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은 뒤 아버지는 그제야 '아들이 같이 야구하며 놀자고 했을 때,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한다. 

"내가 만일 프랑스에서 살면서 집 장만을 해야 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거야. 프랑스에 돌아오면 엄마 집에 머물기 때문에 내 집이 따로 필요없었거든. 앞으로는 내가 프랑스에 돌아오면 묵을 아파트가 하나 필요할 것 같아."

자유롭게 산다고 계획없이 사는 건 아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생활비는 프랑스보다 해외가 더 적게 먹혀. 한 달에 1000유로로 예산을 잡아. 프랑스에서는 월세가 비싸서 1000유로로 한 달을 살 수 없잖아. 잠은 캠핑에서 자고, 먹는건 직장에서 해결이 되고, 남는 시간은 스케이트보더들과 보드를 타러 다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6개월 정도 준비를 해."

오랜 시간의 여행과 타지생활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킨 것 같냐고 물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고급 아파트를 보면서 트리스텅이 말한다.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직장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예전엔 싫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건 그들의 삶의 방식이고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는걸 인정해. 요리사가 돼서 세계를 여행하면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며 사는 건 내 방식이고. 내 인터뷰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모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내가 선택한 나의 방식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다른 방식이 있을거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겨울에 알프스에서 일하려고 해. 스키장에서 일하면 스킨장 시설을 무료로 쓸 수 있거든. 내년 3월까지 거기서 지내고, 그 다음은 인도로 가려고해. 알프스에 아직 구직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일 찾는건 어렵지 않아. 난 내 일을 좋아하고,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해. 아마도 10년 후쯤에는 음식 관련 사업을 하지 않을까 싶어. 유기농이나 채식처럼 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는 먹거리 관련사업 말이야."

행복과 감사함과 자신감에 꽉 찬 그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웃는다.

 트리스텅
트리스텅정운례

#행복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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