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기씨가 뛰어 내렸다는 문제의 창문
추광규
해당 병원의 개원 당시부터 시설물 관리를 맡아왔다는 김씨는 "1980년도 후반 혹은 1990년 초순 경 시설물을 수리를 하던 중 창문 개방 폭이 머리가 빠져 나갈 수 있는 정도인 24cm라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사무실 쪽 창은 그대로 놔두고 병실 쪽 창문을 12.5cm 정도만 개방될 수 있게끔 일괄적으로 볼트 위치 등을 교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투신을 했다는 장소는 당초 병실로 사용하다 1992년께부터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창문 개방 폭을 별도로 조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김씨의 증언에 군 검찰단은 "누구라도 창문 개방 폭을 늘리기 위해 볼트 등을 풀고 조절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문제제기했다. 김씨는 "병원 개원 후 창문을 더 열기 위해 볼트 등을 조절한 경우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군 검찰단이 다시 "창문 개방 폭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김씨는 "매일 건물을 돌고 관리를 하기 때문에 창문 개방 폭이 달라져 있는 것을 모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김씨의 증언을 끝으로 이날 현장조사는 마무리 됐다.
박씨 측은 군 검찰단에게 "다음번 현장조사부터는 군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조사가 아닌, 한민구 장관의 말씀처럼 민간이 참여해 초기부터 조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무한정 기다리게 하지 말고 향후 조사 일정 등을 사전에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군 검찰단은 "민원인 측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오늘 현장조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겠다"라며 "다음번 현장조사 일정과 민간 참여 부분 등에 대한 답변은 다음 주 초에 전화로 미리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헌병대 폭행" vs. "자살시도", 사고 원인 밝혀질까?지난 1994년 12월 17일 저녁시간, 박씨는 민간인 친구 A씨와 함께 춘천시내에서 술을 마셨다. 술자리를 마치고 박씨는 무면허로 차를 몰다 철책을 들이 박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친구 A씨는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은 반면, 박씨는 얼굴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다.
문제는 사고 후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으로 이동한 후부터 군의 조사결과와 박씨가 주장하는 행적이 엇갈리기 시작한다는 점.
군은 2군단 헌병대 초동 수사에서 '박씨는 춘천 시내에서 1994년 12월 17일 오후 10시 30분께 사고를 낸 후, 병원으로 친구 A씨를 데려온 뒤 병원 10층 성당에서 15m 아래로 투신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18일 0시 30분께 3층 옥상 콘크리트 바닥에서 병원 수위장 홍아무개씨에 의해 발견됐다'고 남겼다.
군은 박씨가 음주교통사고를 낸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시도를 해 발생한 부상이기에 군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 헌병대가 병원에 도착한 시점도 박씨가 병원 직원에게 발견된 이후라고 주장한다.
반면 박씨는 현장에 나온 헌병에게 구타를 당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사고 2년 뒤부터 조금씩 기억을 회복한 박씨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자신이 벌금형에 불과한 교통사건 때문에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때부터 사건을 되짚으며 기억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박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경찰조서 등에 따르면 교통사고 시각은 군의 주장보다 세 시간이나 앞선 오후 7시 30분 무렵"이라면서 "병원 도착 시각은 7시 50분께이며, 9시 5분께 112로 경찰에 교통사고 신고를 했고 45분쯤 후인 9시 50분께 춘천경찰서 소속 최아무개 경장이 병원에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 사고라고 판단한 경찰은 헌병 쪽에 연락을 취했고 오후 11시 20분께 헌병 S씨와 K씨가 병원으로 왔다"며 "20년 경력의 헌병 K중사가 병원 별관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으며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다 올랐을 즈음에 내가 '왜 군 차량이 있는 주차장으로 안 가고 반대 방향으로 가느냐'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계속해서 "그러자 K중사는 '범죄자 주제에 수사관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왜 대드느냐'고 화를 내면서 발로 명치 부위를 찼고, 나는 2~3m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의식은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며 "수위 홍씨가 뛰어와 무슨 일이냐고 K중사에게 물었고, K중사가 '병원 내에서 벌어진 사고이므로 당신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은 방법 없겠느냐'고 추궁하는 소리를 듣고 의식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의식을 잃은 박씨는 11일 뒤에 깨어났다. 그는 등골뼈·엉덩이뼈 상하지·발관절 골절 및 양쪽 혈흉(흉강 내 혈액이 괸 상태), 후복막(내장기관을 둘러싼 얇은 막의 뒷부분) 출혈, 우측두엽(기억 담당 부위) 손상 등의 진단을 받았다.
헌병이 1995년 1월 20일 작성한 교통사고 등의 관한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박씨는 '피의자가 병원 3층 옥상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병원 수위가 발견하였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라는 조사관의 질문에 "전혀 기억나지 않으나 어머니가 병원 10층에서 뛰어내렸다고 하여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 이렇게 해서 해당 사고는 자살시도로 인한 부상이라고 결론지어졌다.
한편 이날 현장조사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창문 개방 폭은 지난 몇 차례 조사 때마다 각각 다르게 결론 났다. 2006년 육군 중앙수사대의 보고서에는 24cm라고 되어 있지만, 200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재조사 권고에 따른 군 보고서에는 30cm로 되어 있다. 2009년 춘천경찰서가 보내온 기록에는 21cm로 되어 있다. 현재 국방부 검찰단의 최종 판단은 '확인 불가'이다.
또한 박씨는 지난 2009년 춘천경찰서에 헌병 K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소재 불명을 이유로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군 역시 박씨의 요청에 따라 2002년 1군단 헌병대, 2006년 육군 수사단, 2008년 군 검찰단, 2010년 육군 법무실 등이 각각 재조사를 진행했지만, '헌병 수사관의 폭행 혐의는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당초 수사결과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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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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