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마을 돌담길, 옛 정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골목길이 정겹다.
이상옥
마을 돌담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서비정이 나온다. 서비정은 바로 최우순(崔宇淳, 1832~1911)의 곧은 정신을 기려 세운 정자이다. 최우순 선생은 7세 때 이미 한시를 지어 주변을 놀라게 했을 만큼 당대 존경받는 유학자였다.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이후 경술국치를 당하자, 왜놈의 나라가 있는 동쪽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아호를 청사(晴沙)에서 서비(西扉 서쪽 사립문)로 바꿔 부르고, 집의 사립문을 서쪽으로 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천지가 바뀌어 종묘사직은 망하고, 머리와 발이 뒤바뀌어 삼천리 강토에 편안히 있을 곳이 없으니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이에 호를 바꿔 서비로 부르니 지금부터는 서쪽에서 기거하며 서쪽에서 침식을 하며 서쪽에서 늙어 서쪽에서 죽을 것이다." 경술국치를 강행한 일제는 민심 무마책으로 전국 명망 있는 유림에게 일왕의 은사금을 주었다. 최우순 선생에게도 은사금을 주려고 했으나, 선생은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결국 일제는 헌병을 파견하여 선생을 연행하려고 하자, 스스로 독약을 먹고 절명한 것이다. 그날이 1911년 3월 19일 향년 80세였다.
최우순 선생의 우국충절을 기려 세운 서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