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홍보 캠페인이권우 '학생동물보호협회' 대표가 지난 22일 홍대 앞에서 주최한 채식 홍보 캠페인. 거리에 시청각 시설을 설치하여 농장동물의 현실을 알리고 채식을 홍보했다.
이권우
지난 10월 26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소시지·햄·베이컨 등의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쇠고기·돼지고기를 비롯한 붉은 고기를 2군A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육식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것은 별로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육식은 '풍요의 병'이라 불리는 각종 성인병과 암질환의 주요원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인의 건강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소가 아파하면서 젖을 짜낸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유는… 소의 아픔 때문에 안 먹고요. 달걀을 먹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 (닭) 안에다가 억지를 아기를 낳는 무슨 약 같은 걸 넣는대요. 그런 걸 넣어서 억지로 사랑하지 않았는데도 아기(달걀)가 생겨서 그런 데서 닭이 많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안 먹어요."21년차 채식인인 부모님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11살의 한그림양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위와 같이 밝혔다. 동물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즉 동물의 건강을 위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채식주의 운동이 시작된 배경에는 '공장식 축산'이라 불리는 현대의 육류생산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연재기사를 통해 밝혔듯이, 공장식 축산은 소·돼지·닭을 생명이 아닌 공산품처럼 다룬다. 또한 항생제·성장호르몬제·약물 등을 남용하고,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여 지구를 오염시킨다. 그리고 각종 전염병·신종 바이러스를 양산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공장식 축산 반대와 생명권은 진보정당인 녹색당이 선거의제로 다루고 있다. 동물에 대한 연민을 넘어 사회진보의 가치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채식주의는 '다함께 살자'는 사회운동임에도 방송은 채식인 출연자들의 건강에만 초점을 맞췄다. 방송에서는 9명의 채식인 출연자의 건강 검진을 시행하여 건강 상태를 체크한 다음, 근육 부족·높은 체지방량·비타민 부족·높은 수치의 호모시스테인 등을 문제 삼았다.
방송은 사람들이 채식을 결심하고 지속하는 사회적 배경도 충분히 부각해야 했다. 이런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출연진의 건강만을 파고든 진행방식은 (채식에 대해 모르는) 시청자로 하여금 채식을 '본인의 건강을 도모하는 개인주의'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출연진의 검진 결과를 놓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만을 강조함으로써 출연진을 맹목적인 믿음 하나로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희생시키는 사람들로 오해할 여지를 남겼다.
게다가 채식인 출연진의 검사 결과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채식을 연구하는 의학 전문가들이 보기에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14일 채식을 일반에 알리고 보급하는 의사들의 단체인 '베지닥터'는 '왜곡의 극치를 보여준 MBC<채식의 함정>'이라는 글을 통해 이 프로그램이 "채식을 흠집 내기 위한 요소들만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균형과 공신력 있는 정보전달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 근거로 방송에서 한국인의 사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심혈관질환 및 당뇨병에 대한 기본적인 검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그나마 시행한 검사 결과도 제대로 제시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프로그램에선 분명히 콜레스테롤 검사를 진행했다고 했으나 그 결과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며 "결과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전 출연진의 콜레스테롤 및 중성지방 검사 결과가 매우 양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애초에 채식인의 건강상태를 공정하게 보여줄 의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면, 채식인의 혈중 콜레스테롤 검사 결과도 당연히 제시됐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방송이 채식인의 근육량 부족을 문제 삼은 것과 관련해서는 근육량 자체가 건강의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동물성식품과 식용유 섭취량이 늘면서 한국인의 체격이 커지기 시작한 동시에 당뇨병과 심혈관질환도 증가했다는 사실을 들면서, "적당한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운동이 아닌 과도한 단백질과 지방을 통해 근육량을 늘리는 것은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반박했다.
방송에서 지적한 채식인의 비타민B12 부족과 관련해서는, 비타민 B12 섭취를 위해 동물성식품을 섭취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동물성식품 섭취로 인해 오히려 콜레스테롤이 상승하고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비타민B12를 가장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은 보충제"라고 밝혔다.
베지닥터는 끝으로 건강을 위해 동물성식품을 섭취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식용유·설탕·콩고기와 같은 가공식품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 상태의 식물성 식품들로 식단을 구성하면 (방송이 주장하듯이) '전문가적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참가한 모든 채식인의 검사결과를 확보해 방송에서 제시되지 않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며 제작진에게는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채식의 함정'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베지닥터의 글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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