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두 번 더 바라보다 가셨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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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애틋하게 저를 바라보다가 가셨던 이유를 커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사다주신 사탕과 과자가 종종 사라지곤 했는데, 한번은 장롱 안에서 다 녹은 초콜릿과 과자, 사탕을 발견하곤 바로 어머니가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과 조금 다른 어머니였습니다. 죽을고비도 많았는데, 친구들과 놀다가 눈가를 다쳐 피를 많이 흘리며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찾았지만, 어머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이불을 꿰매고 있으니 다 꿰맨 후 문을 열어 주겠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었고, 간신히 문을 열어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뒤늦게 아버지가 온 후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수술 후 눈을 떴을 땐 할머니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점차 내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만들었고, 여러차례 고비를 넘기며 어른아이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방 한 칸에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와 나, 이렇게 4식구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할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엄마는 이상해요. 말도 잘 안 통하고 고집이 세고 아이 같아요."할머니는 어머니를 전쟁 때 낳았는데 피난가면서 고열로 많이 아팠지만 치료를 잘 못해 뇌에 이상이 생긴 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설명을 들으니 어머니가 이해되었고, 할머니가 곁에 계시니 괜찮았습니다. 할머니는 친구가 되어 주었고, 때로는 어머니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릴 때 공부를 잘 했던 저는 각종 상장을 할머니에게 갖다 드렸고 뛸듯이 기뻐하시는 모습에 뿌듯했습니다. 어디에서 이렇게 야무지고 똑똑한 게 나왔냐며 볼을 어루만져 주시고 안아주셨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어 더없이 기쁜 날들이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저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하고 방학 때면 공장에서 일을 하였고, 일찌감치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항상 나를 응원해 주시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2년간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대입반에서 공부를 하며 돈을 모아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입학식에 할머니는 꽃을 사가지고 와서 축하해주며 내 손을 꼭 쥐고 대견하다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마치 <집으로>라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할머니와 함께 했던 모든 추억이 떠오릅니다.
새벽마다 할머니가 간절하게 올리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