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연평도 주민들이 중국어선을 뒤로 하고 굴과 소라를 채취하고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게 모두 중국어선이다. 사진은 연평도 북단 2015년 10월 3일 풍경이며, 중국어선 뒤로 보이는 섬은 용매도이다. 최근 중국어선은 용매도 일대에서 골재채취 펌프를 이용해 조개까지 싹쓸이하고 있다.
김갑봉
연평도 어촌계와 인천해양도서연구소, 인천평화도시만들기네트워크는 연평도 포격사건 5주기를 맞아 23일 오후 인천시의회 의총 회의실에서 '북방한계선(NLL)과 연평도 주민의 삶'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연평도는 한국전쟁 당시에도 총성이 없던 평화로운 섬이었지만 지금은 남북 간 군사 대치로 가장 위험한 곳이 됐다. 토론자들은 남북 간 정치·군사적 대결을 넘어 중국과 미국 간 정치·군사적 대결 양상마저 연평도에 조성되고 있다며, 남북 핫라인 개설과 '바다 위 개성공단'을 열 것을 촉구했다.
분쟁 억지선에서 분쟁 유발선이 된 NLL북방한계선은 한국전쟁 정전협상을 앞두고 유엔사령관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그어놓은 선이다. 분쟁을 막기 위한 선이 지금은 분쟁을 유발하는 선이 돼버렸다. 분쟁을 막기 위한 선이 어떻게 분쟁 유발선이 됐고, 중·미 간 대결 양상까지 보이는 것일까?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서해 5도 중 연평도가 제일 위험한 이유는 월선(=NLL을 넘는 것)이 용이하고 북한과 가깝기 때문이다. 백령도에서 북한 육지와의 거리가 17km인데, 연평도에선 13km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편집장은 "연평도 인근의 정치·군사적 정세는 남·북한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무관심 영역이라 평화가 유지됐다. 한국전쟁 때 총 한 번 쏘지 않은 곳이지만, 1999년 발생한 1차 연평해전부터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까지 최근 상황을 보면, 지금 한반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 편집장은 서해 상에서 남북 간 국지전은 앞서 밝힌 원인이 연결고리가 된다고 했다. 1차 연평해전은 북한 꽃게잡이 어선을 따라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을 남한 해군이 격파한 해전이다. 당시 북한 쪽 사망자는 국내 언론보도와 달리 150여 명으로 추산되고, 이 연평해전으로 북한의 정세인식이 바뀌었다고 김 편집장은 분석했다.
김 편집장은 "1차 연평해전으로 해군에서 (남한보다) 우위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북한은 충격을 받았다. 보복 기회를 엿보다 2002년 우리 해군에 기습공격을 가해 28명 중 24명이 사상당한 게 2차 연평해전이다. 그 뒤 5년 정도 평화가 유지되다가 다시 2009년 대청해전이 발생했다. 교전수칙에 따라 북한 함정에 경고사격을 했는데, 북쪽에서 대응사격을 하자 우리 해군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응징했다. 그리고 4개월 후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 3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키 리졸브 훈련을 앞두고 북한은 1월에 연평도와 백령도를 향해 해안포 사격을 했다. 포는 NLL 북쪽 곧, 북한 수역에 떨어졌다. 그리고 3월 말까지 NLL 일원에 통항금지구역을 선포하며 남북 간 긴장상태가 조성됐다. 그리고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김 편집장은 이 사건이 여전히 논란 중이고 우리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고 한 뒤, "여하튼 이 사건으로 우리 정부가 5.24조치를 실시했고, 서해는 더욱 전쟁의 바다로 변했다. NLL이 분쟁 억지선이 아니라 유발선으로서 의미가 뚜렷해졌다. 국제 규범에 의해 민간 상선은 통과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전면 봉쇄됐다. 동시에 우리 어민의 조업 통제도 강화됐다. 남북이 대치하는 동안 중국 어선이 이 어장을 싹쓸이했다"고 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해 김 편집장은 "사건 발생 일주일 전부터 남북 간 긴장이 조성됐다. 5.24조치 후 남북 간 핫라인이 사라졌다. (북은) 우리 군의 포사격 훈련이 있을 경우 대응사격을 하겠다고 국제 공용 상선망에 띄웠다. 이날 오전에만 두 번 신호를 보냈다. 경계선(=군사분계선)이 그어지지 않은 데서 사격 훈련 시,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전 10시 우리 군의 발칸포 사격과 11시 105mm 사격 땐 북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군이 점심 먹고 자주포를 쏘니까, 연평도를 포격했다. 자주포는 사거리 40km로 북한군 해주 4군단 사령부 포격이 가능하다. '쏠 테면 쏴라'는 북한의 이 경고를 합참은 무시했다"고 말했다.
"서해 분쟁 관리 못하면 중·미 간 분쟁에 휘말려"연평도 포격사건 발생 일주일 후인 11월 30일,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서해 상에 진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중국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지금껏 남북 대결의 장이었던 서해는 중국과 미국 간 대결의 장으로 확장돼버렸다.
김 편집장은 미·중 간 분쟁이 구체화된 계기는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2012년 조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열도) 충돌, 2015년 남사군도에서 중국 인공 섬을 둘러싼 충돌이라고 했다.
연평도 포격사건 후 올해 들어 한국에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는 중·미 간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김 편집장은 조어도와 서해에서 중·미 간 갈등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사드 논쟁은 북한이 개발한 중거리 핵미사일인 노동미사일에 대한 한국 방어의 필요성 때문에 제기됐지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핵심전력이라는 이중성을 회피할 수 없다"며 "천안함 폭침으로 (한국이) 항공모함을 요청했을 때, 미국은 처음엔 거절했다. 그리고 연평도 포격 이후 조지워싱턴호가 서해로 입항했다. 북에 대한 경고이지만, 중국은 중국 견제로 인식한다. 이대로 가면 G2(=미국과 중국)가 서해에서 대치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또, "사람이 정착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을 때 영토의 가치가 있다. 서해 5도는 군사적 측면에서만 영토가치가 높아졌다. 이것은 안보의 역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서해에서 분쟁을 예방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우리가 중·미 간 지정학적 분쟁에 연루되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 뒤 "연평도 포격 이후 남북 모두 군부를 통제하지 못하는 속도전 양상이다. 그래서 서해에서 적대 행위를 관리할 수 있는 남북의 군사적 핫라인을 개설해 군사행동을 통보하고, 공동 위기관리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다 위 개성공단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