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창이 펴낸 촘스키 교수의 책들
최규화
2002년 우연히 출간한 촘스키 책 한 권... "책이 출판사를 바꾼 것"- 창립 초반에는 어떤 책들을 내셨나요?"1999년 9월에 처음 낸 책이 <사이버 증권거래 초보 벗어나기>라는 책이었어요. 당시가 IMF 외환위기 직후라서 경제경영, 자기계발 책들이 인기였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분야 책들을 많이 내게 된 거죠. 처음에는 어떤 책을 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구체적이지 않았어요. 책을 한 권 한 권 만들어가다가 2002년에 촘스키 책(<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을 내게 된 거예요."
- 저는 출판사 이름도 '시대의창'이라서, 창립할 때부터 뭔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겠다' 하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던 줄 알았습니다.(웃음)"그런 거 없었어요.(웃음) 처음에 직원을 알음알음 뽑아놨는데도 그때까지 출판사 이름도 없었어요. 머리를 맞대고 출판사 이름을 짓기 시작한 거예요. 여러 가지 이름이 나왔는데, 찾아보면 이미 다른 출판사가 쓰고 있는 이름이더라고요. 그렇게 고르고 고르다가 시대의창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멋지기도 해서 시대의창으로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이 이름을 지어놓고 난 뒤에 책을 만들면서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제 마음이 자꾸 무거워지는 거예요. 제 이름도 김성실이라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고 살았는데 왜 출판사 이름도 이렇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웃음)"
- 시대의창이 그동안 펴내온 책들을 보면 어떤 변곡점 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게 촘스키 책이에요. 출판 에이전시가 보내주는 뉴스레터에 그 책이 있었는데, 신입 편집자가 한번 검토해 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보니까 막 끌리더라고요. 사실 초판을 2500부밖에 안 찍은 책이거든요. 그 전까지 주로 내던 경제경영 책들은 초판 5000권씩 찍었어요. 그런데 그 책이 40만 부 가까이 나갔어요.
그 책이 많이 알려지다 보니까 저도 촘스키에 대해 잘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 직원들이 다 같이 사회과학을 공부하게 된 거예요. 촘스키를 보다 보니까 또 다른 진보 지식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시선이 바뀌더라고요. 책이 우리를, 회사를 바꾼 거죠."
- 아무리 촘스키 책이 '대박'이 났다 해도, 사회과학 서적들은 대박의 기준도 좀 낮고, 또 번번이 대박을 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도 사회과학 출판사로서 방향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저도 사회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잖아요.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명감을 가지고 내고 있어요. '이런 책은 나라도 내줘야 되겠다' 하는 생각요.(웃음) 그리고 그동안 사회과학 출판계 전반적으로는 위기가 지속됐지만, 저희 시대의창에게는 특별한 위기가 없었어요. 오히려 저희한테는 도서정가제 이후로 지금이 위기죠.(웃음)"
- 그동안 큰 위기는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지난 16년의 세월 가운데 시대의창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시절은 언제일까요?"사회과학 출판을 시작한 이후부터 최근까지 계속 전성기였어요. 물론 매출 면에서 보자면 경제경영 책 만들 때가 더 잘됐죠. 그러나 사회과학 책을 만든 뒤부터 정말 재미있게 일했어요. 출판인으로서 제 정체성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게 되고 '출판 일을 하기를 정말 잘했다' 하는 생각도 하고요. 그래서 사회과학 출판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계속 저희의 전성기라고 보는 거예요."
- 책을 만드는 분들은 거의 자식을 낳는 심정으로 만드시잖아요. 잘난 자식이어서든 못난 자식이어서든, 조금 더 애정이 가는 책이 있습니까?"저희가 4년 동안 편집해서 만든 책이 있거든요. 원고 나오고 나서 편집 기간만 4년이 걸렸어요. <고사성어 대사전>이라는 책인데요, 제가 이 책을 만들면서 '정말 이런 책을 큰 출판사에서 만들어줘야 된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하다 보니까 시간이나 비용이 너무 만만치 않은 거예요. 사실 이 책을 내고 나서 조금 힘이 빠졌어요. 언론사에 홍보용 책을 보냈는데 어디에서도 기사로 안 다뤄준 거예요. 추천도서 선정도 하나도 안 되고 전혀 주목을 못 받았는데, 나중에 다음카카오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인터넷으로 사전 서비스를 하고 싶다고 해서 꽤 괜찮은 금액을 받고 10년 임대를 하기로 했습니다.(웃음)
사실 올해 책을 많이 못 냈는데, 곧 큰 책이 하나 나올 거예요. 편집만 거의 2년 동안 했어요.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라는 책이에요.(책은 11월 25일 출간됐다 - 기자 주) 1200쪽 정도 되는 책이에요. 시장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출판인으로서 이런 대작을 만들어놓고 나면 기분이 되게 좋아요. 예전에는 훌륭한 편집자들 "나무한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겠다"라는 말을 하면 별로 와닿지 않았는데, 의미 있는 책들을 한 권 한 권 만들어가면서 지금은 그 말이 정말 와닿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