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세상을 '경영'하려면

[노동운동의 메카, 인천의 노동자 교육을 혁신하다 8] 인천 노동자 교육을 위한 제언

등록 2015.12.11 17:57수정 2015.12.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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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노동자 1500만 명과 그들의 가족을 단순합산하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동자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건과 노동자의 삶의 질이 대다수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전국적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노동조건 향상이 경제의 선순환으로 내수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노조 설립과 운영의 동력은 다양한 형태의 학습 소모임을 기본으로 하는 노동자 교육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시대 이후 노동운동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이와 함께 노동자의 삶은 황폐화되고 있다. 노조 활동의 위축과 노동교육의 부재로 경제의 선순환 고리가 끊긴 지 오래됐으며, 비정규직 양산과 실업률 상승으로 전체 세대가 고통 받고 있다.

<시사인천>은 '노동자교육기관'과 함께 현 노동자 교육을 진단하고 21세기에 맞는 노동자 교육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선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의 노동자 교육 사례를 취재했다. - 기자 말

[기획취재] 노동운동의 메카, 인천의 노동자 교육을 혁신하다
1. 인천지역 노동자 조직 현황
2. 인천지역 노동자 교육의 현주소
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교육사업 현황과 전망
4.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충북지역본부의 교육사업 모범사례
5.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교육사업
6.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한국지엠지부 교육위원회
7.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의 학습소모임 확대재생산 실험
8. 인천지역 노동자 교육을 위한 제언 (마지막)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에 사무실이 있는 노동자교육기관의 단체 이름 앞에는 '변혁의 눈으로 노동해방을 여는'이라는 수식어구가 붙는다.

지난 2005년 9월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2006년 3월 창립총회를 한 노동자교육기관은 '신자유주의를 넘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혜와 실천을 모으는 곳으로서 희망이 있는 현장, 대안이 있는 노동운동을 위해 교육ㆍ정책ㆍ노조사업을 한다'고 밝혔다.


내년 창립 10주년 행사를 앞두고 인천지역 노동자 교육에 고민이 많은 노동자교육기관은 <시사인천>과 한국 노동자 교육의 현주소와 대안 모색이라는 취지로 기획취재를 진행했다.

이를 함께 기획한 이옥희 노동자교육기관 집행위원장, 지역 출장을 함께 다닌 이인자 교육실장과 지난 11월 30일 기획취재를 마무리하는 자리를 했다.


사람을 키우려는 교육,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

 이인자 노동자교육기관 교육실장
이인자 노동자교육기관 교육실장김영숙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노조와 노동자 교육단체가 어려운 조건에서도 노동자들의 의식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는 부문별 학교를 3년간 운영하면서 정기적 교육을 안정화했고, 향후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지역 노동자 교육단체들과 연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인천지역본부는 매해 상·하반기 2박 3일 일정의 노조 대표자 교육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인자 교육실장은 이에 덧붙여 박혜경 민주노총 교육원장이 말한 '교육은 관계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며, 중견간부들을 대상으로 교육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노동운동 지도자 과정의 유의미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번 취재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으로 최경천 한국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을 꼽기도 했다.

"충북본부에서 반 상근을 하며 직접 교재를 만들어 조합원 교육을 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충북본부는 연대투쟁도 모범적으로 잘 하고 있다. 2000년 4월 부산지역의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해 모범을 보였고, 전국에 지역일반노조라는 씨앗을 뿌린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은 많이 지쳐 보였다. 지역일반노조는 한 지역이 아닌 전국 단일노조로 갈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전국일반노조협의회도 전국노조 건설을 위해 교육을 통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실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교육위원회가 노조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진행한 주민들과 함께 하는 마을벽화그리기와 우편함 달아주기, 한국지엠지부의 교육위원을 성장시키기 위한 교육활동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또한 "지난 주 방문한 평등사회노동교육원장과 한 인터뷰에서는 노동자들을 학습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세우려는 새로운 방식은 새겨들을 만했다"고 한 뒤 "전국의 노조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관련 사업비를 책정할 때는 후순위로 미루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옥희 집행위원장은 현장에서 진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교육단체 활동가로서 단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 사업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현장에서 뭘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찾는 게 중요하다.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기본적인 교육만 이뤄져도 노동자들이 변했고 교육의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커리큘럼을 다 진행해 봐도 삶이 팍팍하다. 현재 노동자의 삶과 결합한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에 맞춰 교육프로그램도 개발해야한다. 이번 기획취재가 다양한 현장을 방문하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이 집행위원장은 '예전 그대로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몇 차례 강조했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정보는 확장했지만, 노동자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위축돼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정서와 수준에 맞는 교육과 교재 개발이 고민이라며, 진부한 내용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동 교육단체 고유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

취재 과정에서 한 교육단체 활동가는 '노조가 교육 사업을 잘 하면 외부 교육단체는 필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옥희 노동자교육기관 집행위원장
이옥희 노동자교육기관 집행위원장김영숙
이에 대해 이옥희 집행위원장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 수를 다 합해도 전체 노동자의 10%가 안 된다. 조직된 노동자 10%가 건강한 현장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로 끝낼 수 없다.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계획이 필요하다. 미조직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노출돼있다. 그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인천의 노동자 수가 160만이라는 통계가 있는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조합원을 합쳐도 6만여 명밖에 안 된다, 나머지 154만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노조의 질서만으로는 안 된다, 미조직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관건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의 노조가 정규직과 대기업 중심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이 집행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규직이 디딤돌이 돼야 비정규직이 싸울 수 있다. 비정규직ㆍ미조직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기 어렵다. 1차 선봉은 정규직이다. 이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필수적이다. 실업자나 비정규직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고리가 필요하다. 정규직을 적대시하면서 비정규직들이 전면에 나서서 파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인자 교육실장은 "취재를 다니면서 정규직ㆍ대기업 노조를 귀족노조라고 표현하는 일부의 시선이 불편했다"며 "그들의 한계가 분명 있지만, 신자유주의가 전면화 돼 그들의 삶도 불안한 지금 시대에 사회적 문제로 인식을 확장하지 않고 노동자 내부로 문제를 돌리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노동자 교육단체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교육단체의 매력은, 제 삼자의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그 안에서만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시선을 객관화해 다른 노조를 보고 지역사회를 봐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들이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노동자 교육단체 활동을 통해 미조직 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를 만나 그들을 이해하고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다. 20세기 교육이 인식 확장이라면 21세기 교육은 소통과 합의, 관계 맺기다."

노동자, 세상을 경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는 전국의 교육단체 네트워크와 교육활동가대회를 진행해왔다. 노조뿐만이 아닌 전국에 존재하는 노동자 교육단체와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옥희 집행위원장은 "연대로 벤치마킹과 정보공유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천에서도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면 구체적 목적이 있어야한다"며 "교육 수요자 욕구를 공동으로 조사하는 등의 실천내용이 있어야한다"고 전했다. 이어 "예를 들어 미조직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법 홍보 등 권리 찾기 사업만이 아닌, 시민사회영역과 함께 그들을 노조로 조직하기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년 3월이면 노동자교육기관이 창립한지 만 10년이 된다. 이 집행위원장은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 있는 건 아니지만, 노동자 교육이라는 주제로 각종 토론회를 열어 이 시대에 맞는 노동자 교육을 활성화할 계획"이라며 "지역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마지막으로 '노동자는 세상을 경영하는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사람이 바뀌는 건 교육의 초·중급 과정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 교육을 받더라도 스스로 모임을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노동자교육기관은 다양한 소모임을 분과라는 이름으로 둔다. 분과회원들이 분과의 활동내용과 형식을 정하고 자발적으로 운영한다. 자기의 소모임을 만들어 운영의 주체가 되고 이해관계의 주체가 될 때 사람이 바뀌는 것이고, 학습은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다. 그걸 해낼 때 자신감이 생기고 삶의 태도가 변하고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게 공부고 학습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쓴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노동자교육기관 #이옥희 #이인자 #소모임 #노동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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