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일몰 무렵. 베이징 톈안먼광장마스크를 쓴 채 광장을 걸어가는 이와 사람 대신 스모그가 가득찬 톈안먼 광장이 보인다.
조창완
일행 중 처음 베이징에 온 이들을 위해 미세먼지에도 톈안먼 광장을 찾았다. 마침 일몰 시각에 맞춰서 국기 하강식이 열리고 있었다. 스모그 속 국기 하강식은 묵시록의 배경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대부분이 외지 방문자인 여행객들은 마스크를 쓰지도 않고 스모그와 일몰로 어두워지는 톈안먼을 즐기고 있었다.
베이징의 모든 것을 바꾼 스모그이번 스모그는 2004년부터 5년여 동안 베이징에서 살면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한 스모그였다. 그렇다고 다음날은 좋아지리라는 기대를 할 수는 없었다. 정확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중국기상대는 기자가 베이징에 머무는 9일까지 스모그가 심할 거라는 예보를 내놓은 상태였다. 8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창밖을 바라봤다.
예보대로 더 강한 스모그가 닥쳤다. 호텔에서 300여m 앞에 있는 베이징한국국제학교는 형체도 볼 수 없었고, 맞은편 아파트 단지의 잔영만이 보였다. 중국기상대는 중국 대도시 역사상 처음으로 홍색예보(紅色豫報)(대기오염 최고 등급 경보)를 발령했다. 곧바로 자동차는 2부제가 시행됐다. 끝이 홀수인 차들은 베이징 5환선 내부 운행이 금지됐다. 유치원 및 초등·중학생들에게는 3일간의 휴교령이 발동됐다. 일반 사업장도 탄력적으로 운영하라고 지시가 떨어졌다. 당연히 베이징 인근 공장도 가동이 금지됐다. 먼지가 날 수 있는 공사나 화물차의 운행도 금지됐다.
어떤 상황이 사상 첫 스모그 홍색예보를 불렀을까.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여겨지는 스모그 예보는 '스모그 황색예보'(霾橙色预警)다. 황색예보는 가시거리와 습도를 연결해 발표한다. 스모그 예보의 경우 스모그(霾), 오염심각(重度汚染) 등 표시가 다양한데, 이 판단은 베이징시 기상대가 한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홍색예보는 베이징시환경국 안에 설치된 '베이징시 공기중오염 긴급지휘부'의 건의에 따라 '베이징응급반'이 결정해 공포한다. 그리고 홍색예보를 모든 네트워크를 통해 긴급공포하는 것이 의무다.
기자의 중국 핸드폰에도 역시 긴급히 홍색예보 발령과 2부제 시행, 학교 휴교 등의 소식이 떴다. 이날 9시에 베이징 시내 중심에서 북서 방향으로 43여 km 정도 떨어진 회사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가는 내내 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눌러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베이징은 잿빛이었다. 시내에서 벗어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예측은 전혀 맞지 않았다. 외곽도 마찬가지로 잿빛이었다. 팔달령 장성으로 가는 길목은 물론이고, 과수원, 평원 등 모든 것이 스모그에 덮였다. 베이징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후배가 입을 열었다.
"이번 스모그가 심각한 이유가, 이 시기에 부는 북서풍이 아닌 남동풍 때문에 베이징에 나쁜 공기가 갇히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언론들은 말해요." 맞는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은 지형상 북쪽 옌산산맥(燕山山脈)이, 서쪽 예산포(野三坡) 등 높이 1000m에 가까운 산이 막ㅇ고 있다. 아래는 화북평원의 탁 트인 지대다. 그리고 화북평원 지역은 중국에서도 가장 산업이 발달한 탕산, 톈진, 스좌좡 등이 위치해 오염원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겨울이 되면 대기는 잠잠해지고, 난방시즌이 되는 11월 말이면 일반 가정은 석탄을 연료로 난방을 시작한다. 멈춘 대기로 급속히 늘어난 자동차 매연, 가정용 연탄의 스모그, 공장 배출가스가 섞이면 순식간에 스모그 속에 빠진다. 중국 화북지방의 겨울 대기는 보통 일주일 단위로 바뀌는데, 이런 상태라면 격주로 스모그가 이 지역 사람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 이번 베이징 인근 스모그는 화북평원의 도시들이 일제히 베이징을 향해 진격하는 형상으로, 베이징 일대의 하늘을 뒤덮었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는 스모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