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모피 교통사고로 죽은 동물로 만든 쁘띠뜨 모르 퍼(Petite Mort Fur)의 모피 제품. 유튜브 영상의화면 캡처.
2015 Petite Mort Fur
인간의 공감능력은 '비건 패션'이라는 것도 만들어냈다. '비건'은 고기는 물론 우유·달걀, 심지어 벌꿀조차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인을 말한다. 비건 패션은 '동물을 입지 않는 패션'이다.
가죽·울(양모)·앙고라(토끼털의 일종)·다운(오리털이나 거위털)을 비롯한 동물성 의류소재는 그것의 재료가 되는 동물에게 막대한 고통을 초래해서 얻어진다. 채식주의와 마찬가지로 비건 패션은 동물의 고통을 소비하지 않는 실천이다.
그런데 비건 패션을 지향하는 사람도 가죽이나 모피를 입을 수 있다. 채식인을 위해 콩고기가 있듯이, 인조가죽·모피와 같은 대체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건 패션은 채식보다 실천하기 쉽다. 대체 소재가 대중화 돼 있고, 채식처럼 하루 세 번의 선택을 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육식을 해도 패션은 비건을 지향하는 실천을 '고기와 털가죽이 뭐가 다르냐?'며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에서 기아·전쟁·재난 등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겨울철 구세군 자선냄비가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격이다. 세상의 모순을 일소에 해결할 수 없을 바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 세상은 무수한 개인들로 이뤄져있다. 그 중 하나인 내가 변하는 만큼 세상도 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동물성 의류소재 가운데 특히 모피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극단적으로 잔인한 생산 방식 때문이다. 모피농장에서는 동물을 아주 열악한 환경에 가둬 기르다가 산 채로 가죽을 벗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한 모피 업체가 새로운 카드를 내밀었다.
'교통사고 당한 동물'은 입어도 될까?도로에서 야생동물이 차량에 치어 죽는 사고를 가리켜 '로드킬'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로드킬로 죽은 야생동물의 모피로 의류를 만드는 회사가 있다.
'쁘띠뜨 모르 퍼(Petite Mort Fur)'라는 이 신생기업은 '어차피 버려지는' 동물로 만든 자사 제품이 동물의 고통 없는 '윤리적인 모피'라고 홍보한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이 업체는 다른 모피업체들처럼 동물을 끔찍한 환경에서 기르거나 야생에 덫을 놓아 잔인하게 포획하지 않는다. 산 채로 가죽을 벗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기자는 로드킬 모피가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업체가 모피업계에서 동물의 고통 없는 모피를 생산하는 자발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에 덫을 놓는 것은 물론이고, 모피를 위해 동물을 사육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학대를 야기한다. 동물을 참혹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도축하는 이유는 동물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물복지는 생산비용의 증가로 이어져 더 많은 이윤추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동물을 먹기 위해 기르고 도축하는 산업과 마찬가지로, 모피산업에서는 동물의 고통이 무시된다.
로드킬로 죽은 동물로 영리를 취하는 것을 '인도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색하다. 로드킬은 동물의 입장에서는 비참한 죽음이다. 만약 모든 모피업체가 로드킬 모피만을 생산한다고 해도 문제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경우 로드킬로 죽는 동물이 늘어나길 바라야 하나? 이윤을 위해 어떤 편법이 생겨날지 알 수 없다.
모피반대 캠페인의 핵심은 '멋'이나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모피의 가면을 벗기는 데에 있다. '학대'와 '피 흘림'이라는 본모습을 각인시켜 남의 털을 빼앗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진짜 모피를 '패션'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동물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로드킬 모피는 동물학대를 근절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그것이 로드킬로 얻어졌다는 사실을 구매자만 알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로드킬 모피는 동물학대로 얻은 일반 모피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기왕 모피에 반대한다면, 비록 인조라 할지라도 진짜 모피와 단번에 구별되지 않는 제품은 입지 않는 게 좋다.
동물단체 페타에 '로드킬 모피'에 대한 생각 물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