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방학보충수업을 받던 중 쉬는 시간을 이용해 휴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업이 진행될수록 교실은 시나브로 '적막강산'으로 변한다. 이내 졸린 눈 비벼가며 고군분투하는 몇몇 아이들이 잠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친구들에게 에워싸이는 형국이 된다. 고개 떨군 아이들을 깨우는 일은 마치 오락실의 두더지 잡기 게임과도 같다. 여기서 깨우면 저기가 자고, 저기를 깨우면 다시 여기가 쓰러진다. 언제부턴가 가르치는 일은 곧 '깨우는' 일이 됐다.
한 아이는 자는 아이들 깨우려 수업시간 내내 교실을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측은했던 모양이다.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내가 수업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옆 친구 깨워라"였단다. 한 엉뚱한 아이는 직접 세어봤다면서, 얼마 전 1교시 수업 땐 스무 번 넘게 반복했단다. 하도 자주 듣는 말이어서, 아마도 조는 아이들에게 그 말이 자장가로 들릴 거라면서 웃어 보였다.
"선생님, 그래 봐야 소용없어요. 학교 와서 내내 자는 아이들이에요. 그냥 우리끼리 수업해요."
이렇게 말한 아이는 이미 '글렀다'고 했다.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의 생활이 어떠할지가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시험 방식과 학습량, 수준 등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적응한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와서도 어떻게든 버텨내지만, 그 시기 단 한 번 발을 삐끗하면 그걸로 공부와는 담을 쌓게 된다는 거다. 이를 두고 친구들끼리 '국영수의 늪'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학교든 학원이든 늦어도 중2 때부터는 대학입시를 염두에 두고 고등학교 과정을 준비하게 되는데, 정규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죄다 국영수만 공부하게 된단다. 그 역시 잠시라도 한눈팔면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학 공식조차 영어 단어처럼 무작정 암기하고 보는 세간의 공부법은 누가 가르쳐서 된 게 아니란다.
그의 말을 듣노라니, 자유롭게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준다며 시작한 중학교의 자유학기제가 실상 반쪽짜리로 운영되는 것도 그래서이지 싶다. 자유학기제가 운영되는 학기일수록 학원은 되레 문전성시라고 하지 않나. 시험이 없다고 방심한 채 자칫 국영수를 소홀히 했다간 큰코다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가 즐거울 리 있을까.
그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가 일찍 끝난다는 이유로 시험 기간을 더 좋아하며 과목에 상관없이 '찍고 자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수가 조금 더 늘었을 수는 있지만, 고등학교 교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수학 과목에 한정시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확산' 운운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다른 과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교실 분위기를 전했다.
"수업 내용 못 알아들어서 자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