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순례 홍보물내달 2일, 안산으로 떠나는 천일순례 참가자를 모집하는 홍보물. 내용 중 '세월호력 718일'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서부원
한 달에 한 번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팽목항을 찾아가고, 내달 2일에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즈음해 안산을 찾아 천일순례를 이어갈 예정이다.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남남처럼 지냈을 상주모임 회원들은 어느덧 그 수가 400명을 넘어섰고, 이제는 웬만한 시민단체를 능가하는 마을 자치와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월호가 가져온 작은 기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곳 남녘의 훈훈한 온기와는 달리, 단원고가 자리한 안산의 공기는 몹시 차가운 것 같다. 듣자니까 아이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교실이 조만간 '깨끗하게' 치워질 거라고 한다. 교실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원고에 배정된 신입생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그 말에 유가족들의 피맺힌 가슴은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린다.
급기야 화랑유원지에 있는 정부 합동분향소마저 머지않아 철거될 거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들린다. 모르긴 해도, 분향소를 찾는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다는 이야기가 와전된 것일 게다. 분향소를 철거하자고 주장하려면, 세월호 참사의 완전한 진실 규명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노란 리본 보고 '이게 뭐냐' 묻는 학생...정부와 여당은 수백만 국민들이 서명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그토록 몽니를 부리더니, 그나마 '차포 다 떼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조차 대놓고 방해하고 있다. 유가족들 앞에서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대국민 사기극으로 끝났고, 흐르는 세월을 무기 삼아 되레 세월호에 대한 피로감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들이 지쳐 나자빠지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무기력한 야당 정치인들도 도긴개긴이다. 한때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던 그들 역시 진실 규명이라는 당위 앞에서 어느덧 피곤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더욱이 선거를 앞두고 공천과 당선에 목매단 후보자들의 기억 속에는 이미 세월호는 지워지고 없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 2주기의 사흘 전인 4월 13일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선거가 끝나면, 과연 우리 정치는 유가족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그런 섣부른 기대는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당장 언론에서 4.13 선거 결과를 놓고 몇 날 며칠 경마 중계하듯 보도하게 될 경우,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외려 세월호 참사 2주기라는 사실마저 묻히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이 땅의 주류 언론들은 애초 유가족들 '편'이 아니었다.
점심시간 교정을 산책하던 한 고1 신입생이 가로수에 매단 노란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이게 뭐냐고. 정말 몰라서 물었을까 싶다가도, 나 역시 지난 1년 반이 넘게 그 자리에 매달려 있던 노란 리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음을 반성하게 됐다. '계기 수업'을 통해 각자 리본 위에 다짐을 적고, 하나하나 매달았던 선배들의 '진심'을 그가 느낄 수 없는 건, 바로 그러한 망각 때문일 테다.
기성세대들은 대한민국은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며 아이들 앞에서 호언장담했지만,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허언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다. 밝혀진 것 하나 없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세월호가 빠르게 잊히는 현실은 되레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돌이켜보니 "이게 뭐냐"는 그의 외마디 질문은, 그것이 세월호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교정에 천여 개의 노란 리본을 매달면 뭐하나,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라는 푸념이자 기성세대를 향한 질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과연 4월 16일 역시 1년에 한 번씩 하루 잠시 기억되고 마는 그저 그런 '슬픈 날'로 전락하게 되는 것일까.
그 아이와 헤어진 후 간만에 노란 리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리본마다 모서리가 헤지고, 펜으로 쓴 글귀는 어느덧 거의 지워져 그때 아이들의 다짐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오랫동안 비바람 맞아 희미해진 리본 위의 글씨처럼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도 그렇게 옅어져 가는 것 같아 두려웠다. 순간, 더 지워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