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자정 결의대회'에서 학생들이 학교 폭력을 추방하자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묘기를 펼치는 '사인스피닝' 퍼포먼스를 하고나서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교실에서 상습적으로 일어난 학교폭력을 막지 못했다면 학교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광주지법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12년 4월부터 약 6개월 동안 동급생 5명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협박 등 집단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까지 앓게 된 피해 학생이 시교육청과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결과다. 가해 학생들은 이미 성폭력 혐의로 소년 보호처분을 받은 터였다.
학교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학교폭력 예방교육과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보호, 감독의 의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집단 따돌림의 특성상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형식적인 특별교육과 설문조사만으로 그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학교의 책임을 물었다. 다만, 시교육청에 대해서는 "학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판단할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을 접한 교무실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해졌다. "피해 학생이 저 지경이 되도록 담임교사는 대체 뭐했느냐"는 동료교사를 향한 질책부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학교도 안전지대는 아닐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그런가 하면, "재판부가 학교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볼멘소리도 터져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무서워 담임을 빼달라며 통사정하는 여교사가 적지 않다는 걸 알 리가 없다는 거다.
교무실 발칵 뒤집어놓은 '판결'대체로 판결에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학교 현장에서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기피 0순위' 업무였던 학생부장과 담임을 맡겠다고 나서는 교사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고 입을 모았다. 흔히 하는 말로 '국립묘지에 묻힐 각오'가 아니라면, 고작 업무 수당 10만 원 정도에 직을 걸어야 하는 '간 큰' 선택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거다.
이어 재판부가 교육이 '형식적'이었다고 판단한 기준이 대체 뭔지가 궁금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교육청의 지침에 따른 정기적인 예방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인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방식이 문제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혼 없는' 교육을 문제 삼은 것이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이냐"는 하소연이다.
교사에게는 사실 이렇다 할 '무기'가 없다. 체벌이 온존한 시절도 아닌 데다, 설령 허용적인 분위기라고 해도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갈수록 광포해지는 학교 폭력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지금 교사들에겐 태부족이다. 학교마다 한 분이 있을까 말까 하는 전문상담교사에게 모든 아이들을 다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애초 '문제아'가 배정되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복불복'이라고나 할까.
자성과 볼멘소리로 시작된 대화는 결국 '면피 대책'을 서로 나누는 자리가 돼 버렸다. 우리 학교에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장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무적인' 방안들이 공유됐다.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서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반드시 기재되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등 세부적인 내용이 오갔다. 정년퇴임을 앞둔 한 선배 교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증거 능력'을 가진 기록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단 1분을 만나더라도 상담일지를 작성하고, 불미스러운 일로 학부모에게 통신문을 보낼 때는 반드시 등기우편을 이용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렇게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와 면대면 상담을 할 때에는, 경우에 따라선 사전 양해를 구하고 대화를 녹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도 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에서 교사로 살아남으려면, 그보다 더한 짓도 해야 한단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교육에서 아이들과의 '관계'는 사라지고 '증빙 서류'만 남게 될 판이다. 그렇다면 수업은 그저 할당된 근무 시간일 뿐이고, 중간의 쉬는 시간은 교사끼리 수업을 교대하는 과정일 뿐이다. 아이들과 인간적인 교감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교실에서 사제지간이란, 거칠게 말해서, 통제하는 간수와 수감된 죄수의 관계와 별로 다를 바 없다.
더욱이 나이 든 교사들은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한다. 교사도 아이들도 서로를 향해 '말이 안 통한다'며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다. 두루뭉수리 '세대 차이'로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가정에서 밥상머리 교육의 경험도 없고, 어릴 적 또래들과의 공동생활을 통해 협동과 배려를 배울 기회조차 박탈당한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멀쩡할 리 없다.
교사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숫제 '다른 별에서 온 인간'이다. 물론, 전혀 다른 사고를 하고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교사 역시 '꼰대'일 뿐이다. 급기야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삭막한 관계가 되고 만다. 이런 교실에서 교육이 이뤄지기란 애초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지금 그들 사이를 이어줄 최소한의 '끈'조차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이라는 거다.
갓 부임한 젊은 교사들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그들 대부분은 학창 시절 자타가 인정하는 '모범생'으로만 30년 가까이 살아왔다. 주지하다시피 요즘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 진학하려면 웬만한 성적으로는 어림도 없다.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로 언제부턴가 의대나 치대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며 최상위권 학생들만 넘볼 수 있는 곳이 됐다.
그들은 가정 형편도 대개 넉넉한 편이다. 경제력과 학업 성적이 정비례한다는 건 이젠 더 이상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요즘은 모두가 체념하고 수긍하는 우리 사회의 '불문율'이 됐다. 가난한 집안에서 학비 때문에 사범학교에 갔다고 하면, 그들은 언제 적 이야기냐며 코웃음 치기 일쑤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일찌감치 술과 담배를 하고, 떼로 몰려다니며 사고를 치는 '문제아'들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그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지도할 것인가.
한결같았던 학생들의 반응, 놀라웠다수업시간 아이들에게 이번 판결을 다룬 기사 글을 읽게 한 후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집단 따돌림이 벌어진 해당 학급의 담임교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대해 또래 아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었다.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학교마다 그런 일이 드물지 않다며, 학교 폭력 예방교육과 설문조사가 형식적이라는 데 대해서 모두가 동의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해당 학교와 담임교사를 편드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둔감한 교사라도 집단 따돌림이 반 년 동안 지속되었다면 몰랐을 리 없고, 적어도 한 학기에 한 번은 만나게 되는 일대일 상담 때 반드시 도움을 청했을 거라는 추론이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던 데다 입장마저 확고해서인지 의견을 묻는 교사 앞에서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다.
또래 친구들끼리도 혀를 내두르는 '문제아'들이 학교마다 적지 않다는 걸 아이들도 대체로 인정한다. 그럼에도 교사라면, 더욱이 담임교사라면 자기가 맡은 반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해 지도하는 건 당연한 책무 아니냐고 반문했다. 나아가 모름지기 참된 스승이라면 제자들의 눈빛만 보고도 그들의 심정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당돌한' 아이도 있었다.
언뜻 '꾸지람' 같은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된 게 있다. 요즘 같이 험한 시대에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 전에 없던 필요한 자질이 하나 더 있다는 생각이다. 제 상식 밖에 있는 '문제아'들과 스스럼없이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어쩌면 전공 지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교사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미래 교사들을 길러내는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선 이런 학교의 현실을 알고는 있을까. 전국 학교의 담임교사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이 판결을 그 대학 교수들도 모두 읽었을 텐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나 몰라라 할 순 없을 듯하다. 아무튼 미래 교사들의 스승인 그들에게 지워진 짐도 결코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
한창 아이들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맨 앞줄에 앉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한 아이가 고개 숙인 채 혼잣말하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철밥통'이라는 교직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순간 위로인지 조롱인지 헛갈렸다. 알고 보니, 그의 장래희망도 교사란다. 그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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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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