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중 한 장면.
이재구
갑작스러운 조기 방학에 덩달아 마음이 술렁거렸던 내 앞으로 국어 선생님이 지나갔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졸졸 선생님을 따라갔다. 그중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전해줬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말했다.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여름 땡볕에 달궈진 검은 그림자들이 기다란 막대기처럼 늘어져 있었다. 나의 발걸음도 그 그림자 옆을 서성거렸다.
교문 밖을 나서면 선생님은 어떻게 될까. 진심으로 지키고 싶었던 것은 학교인데, 왜 선생님은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선생님은 우리들을 향해 밝게 웃으며 두 손을 크게 흔들어줬다. 무엇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안간힘이 그 손짓 속에 녹아 있었다. 어느새 나의 두 발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나서는 그 길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도망을 치듯 교실로 뛰어갔다.
이제 무엇인가 막 시작해보려던 참이었다. 어떤 하나의 문장이 다르게 보이던 그날 이후로,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문장을 만난 것이었다. 지금 당장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될 난해한 문장 앞에서 나는 두려웠다. 내가 살아갈 세상의 진짜 모습이란 저 교문 밖의 상황이 아닐까. 이 뜨거운 여름 방학의 난기류를 뚫고 질주해야 하는 나는 대한민국의 고3이었다.
나의 고민이 길어진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일이면 학교로 나와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까먹고,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세수를 몇 번씩 해가며 책상머리 앞에서 씨름을 벌여야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은 뻔한 고3의 여름 한 가운데에서, 지킨다는 것은 절실한 다른 무엇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음을 나는 뼛속 깊이 새겨뒀다.
쌍팔년도의 요란한 시류를 타고 불어온 '참교육'의 새 물결은 한 여름 밤의 꿈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쌍팔년도의 올림픽을 떠올린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이상한 결심을 내렸던 그 순간을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무엇인지 한 번도 헤아려본 적이 없던 나에게 '참교육'이라는 신선한 바람을 선사해준 선생님들도 떠오른다. 그때 점화됐던 나의 학구열은 지금도 나의 삶을 불태우는 원동력이다.
어느새 부모가 된 내게는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들 녀석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의 교육은 난항을 겪고 있다. 그 시절의 희망가는 여전히 희망사항으로 남아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우리의 교실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난 가끔 아들 녀석에게 자발적인 배움이 품고 있는 따뜻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녀석의 학창 시절에도 쓰나미처럼 몰려올 폭풍 감동 명장면이 등장하길 바랄 뿐이다.
그 무렵 내게 새로운 별명을 지어준 국어 선생님 덕분에 나는 세상의 어떤 장대비에도 두렵지 않을 듬직한 '우산'을 장만했다. 학생들을 격렬하게 사랑했던 선생님들의 뜨거운 가슴을 의지해 외로운 고3 시절을 잘 보냈다. 그래서 지옥의 한 철 같다던 나의 고3 생존기는 가끔 힘이 들 때마다 떠올리는 내 인생의 명장면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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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보고 나서... 공부해야지 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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