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다면, 당신은 '놀이실조' 상태

대전 인문학 잡지 <상상> 3호 출간

등록 2016.01.06 17:42수정 2016.01.0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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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민아카데미가 펴낸 인문학 잡지 <상상> 3호
대전시민아카데미가 펴낸 인문학 잡지 <상상> 3호심규상
인문 잡지 <상상> 3호가 나왔다. 2호에 비해 더 풍성하다. 두툼하다(230쪽). 재미있다.

첫 선을 보인 '키메라의 눈'에서는 키워드로 '놀이'를 뽑아내 다섯 개의 눈으로 관찰했다. '한 가지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통찰해보는 갈래 비평 형식'이란다.


먼저 대학생과 직장인, 취업준비생 등 5명의 20대가 모여 '이십 대의 놀이문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솔직하게 풀어 놓았다.

이들은 '놀이는 낭비'라는 돈 문화 중심에서 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무는 방안을 즉문 즉설하고 있다.

"건강 악화, 낮은 행복감은 놀이실조 증상"

놀이 관련 궁리 전문가인 조원식은 놀이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풀이했다. '놀이'를 매개로 형성된 놀이 생태계를 인간 축과 공간축, 시간 축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예로 놀이생태계 교란은 교실붕괴, 아동과 청소년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악화, 낮은 행복감 등 놀이실조 증상과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다.

정유진 초등교사는 놀이를 교육현장에 적용, 활용하는 '놀이 사용 설명서'를 제공하고 있다. 대전발전연구원의 정광석 연구원은 도시공간에 정보통신기술과 녹색기술을 융합시켜 감성적인 유희공간을 연출해내는 방법을 제시했다. 대전발전연구원 한상헌 연구원은 인터넷과 게임에 담겨 있는 '놀이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첫 선을 보인 '대전에서 펴낸 책'은 대전에서 펴낸 양서를 찾아 소개하고 읽어보도록 꾀어내는 게 목적이란다. 오수용 대청호보전운동본부 기획국장이 발품을 팔아 찾은 <민화 대전집>은 신선하다. 작정하고 찍어낸 6권짜리 고가의 천연색 화보인 이 책은 물류창고가 홍수에 잠기면서 일찌감치 헌책방으로 흘러들어온 속사정이 있다. 그걸 용케 찾아냈다.

대전에서 45년간, 30년간 헌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장이 들려주는 헌책방의 역사와 애환도 솔깃하다. 한 헌책방 주인은 "알라딘의 500평 중고 책 매장이 전국에 15개 이상"이라며 헌책방계 대기업인 알라딘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 엽서로 보는 100년 전 '대전 혼마치'

대전의 근대도시 형성사를 '근대 사진엽서'와 함께 소개한 '대전의 탄생' 두 번째 연재물은 흥미롭다. 읽을수록 대전 역사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커진다. 고윤수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이야기체 문체와 세밀한 묘사가 엽서라는 볼거리와 적절히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일본인들의 이주와 대전 혼마치(本町, 일제강점기 충무로)'를 주제로 1900년 초부터 1930년까지 대전의 원동과 인동, 효동 거리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호부터 시작된 '한국의 분쟁지도' 첫 사례는 '제주 강정마을'이다. 만화가이자 강정마을 활동가인 리미선씨는 강정마을 분쟁을 정치, 환경, 인권 등 여러 면에서 짚고 '강정의 지금'을 차분하게 전하고 있다.

잡지의 절반을 넘어서자 세 편의 르포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일하는 청소년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성새롬 청소년 쉼터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다. 현장에서 청소년 노동자 등을 밀착 취재해 그들에게 희망을 건네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두 번 째 글은 청년 창업 이야기다. 박은영 도시여행자 대표가 자신의 창업기와 주변 청년들의 창업 현황을 들려준다. 실 사례와 곁들어진 실태 분석이기에 책장이 쉬이 넘어간다.

세 번째 이야기는 대전에만 2만 명 가까이 몰려 있는 '콜센터 노동자'다. 콜센터 메카로 불리는 대전, 하지만 전화를 끊을 수 없는 감정노동자들은 "우리에게도 감정과 인권이 있다"고 하소연한다.

콜센터 메카 대전 "우리에게도 감정과 인권이 있다"

200자 원고지 50여 장에 이르는 긴 호흡의 글(정세연 대전시민아카데미 활동가)의 끝도 콜센터 노동자의 독백이다.

"9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매일 수화기 드는 게 두려워요. 갈수록 힘들어져요. 무슨 협약이든 법이든 먼 나라 이야기 같아요."

뒤를 이어 예술노동자가 꿈꾸는 노동(김택균), 주변부의 과학기술자들(송덕호) 이야기, 알린스키,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의 저자 조성주 인터뷰로 이어진다. 특히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밀집된 대전대덕과학특구에서 일하는 과학기술자들의 푸념은 한국 노동자의 현주소로 다가온다.

잡지의 마지막은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다. 조 교수는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자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왜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약자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하는 데 쓰이는지를 문제풀이 하듯 설명하고 있다. <상상> 3호가 제기한 문제 의식의 요약본이자 결론이기도 하다.

대전시민아카데미가 연 2회 발간하는 <상상>은 지역을 기반한 인문잡지를 표방하며 향후 계간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책 구매(권 당 1만2000원)는 대전시민아카데미(042-489-2130)로 하면 된다.
#대전시민아카데미 #상상 #인문잡지 #3호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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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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