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김동우
쿤밍 우자바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해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걸로 지구 한 바퀴의 장도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출장 등으로 중국을 3차례 정도 방문했지만, 이번 도착 소감은 확실히 비장했다. 그전까지는 매번 가이드나 통역이 붙어 있어 중국어에 대한 불편함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제 말이 되든지 안 되든지 모든 걸 내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숙소 근처 재래시장으로 저녁밥을 먹으러 나섰다. 손님이 제법 있는 밥집이 보였다. 그러나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메뉴도 몰랐고, 가격도 몰랐다. 무엇보다 영어가 안 되는 이곳에서 어느 자리에 앉을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탐색이 필요했다. 식당 벽 한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자뿐이었다. 그렇다고 굶을 수도 없었다.
여행 중 맞닥뜨리는 첫 번째 난관이었다. 피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부딪쳐 이겨내야 했다. 그 길만이 세계 일주를 계획대로 완주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변변치 못한 능력에도 의기양양했던 한국에서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주인은 나를, 두 명의 남자가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있는 테이블에 합석시켰다. 두 명의 남자는 내가 합석을 하든 말든 자기들 밥공기와 사투를 벌이듯 신들린 젓가락질로 밥알을 흡입하고 있었다. 이들의 빠른 젓가락질은 꼭 무협지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신기했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천천히 훑어보니 어설픈 한자 실력으로도 고기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만큼은 한자 문화권에 태어난 게 작은 축복이었다.
하지만 까막눈이나 다름없긴 마찬가지였다. 주인아저씨를 보며 옆 사람이 먹고 있는 걸 가리켰다. 그리고 검지 하나를 펼쳐 보였다. 하나만 달라는 내 소심한 사인이었다. 주문을 받은 주인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성공이었다. 5분 만에 주문한 메뉴가 대령됐다. 하얀 쌀밥 위에 돼지고기 야채볶음이 소복이 덮여 있었다.
밥을 먹기 전 내 앞에 놓여 있는 요리를 사진으로 남겼다. 그제야 합석했던 남자들도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 차렸는지 곁눈질로 날 살피기 시작했다. 나도 속사포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기분까지 기름지게 해주는 돼지기름이 덕지덕지 입가에 묻었다. 주문한 요리는 생각보다 담백한 게 내 입에 잘 맞았다. 맛은 고추잡채에 고추기름을 뺀 것 같았다. 같이 딸려 나온 정체불명의 스프는 어묵 탕과 빛깔이 비슷했지만, 한국엔 없는 맛이었다. 사골육수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조합이었다. 첫 번째 주문치고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아무리 먹어도 바닥을 모르는 화수분 같은 밥그릇이었다. 속사포 젓가락질을 줄기차게 하고 있었지만 밥의 양은 전혀 줄 기미가 없었다. 합석한 친구들은 보란 듯 모두 화려한 젓가락 신공을 뽐내며 나머지 밥을 남김없이 먹고 자리를 떴다. 난 계속 먹어도 줄지 않는 밥 때문에 지쳐갔다. 결국, 한 공기를 다 먹지 못했다.
식당주인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식당주인은 벙어리 손님이 못 미더운지 냉큼 내 앞에 섰다. 내 커뮤니케이션의 90%를 담당하고 있는 검지를 다시 펼쳐 보였다. 그리곤 밥공기를 한 번 가리키고, 메뉴판을 한 번 더 가리켰다. 얼마냐는 이야기였다.
사기를 쳐도 6원에서 9원 사이였다. 식당주인은 아무 소리 없이 8원짜리 메뉴에 검지를 가져다 놓았다. 우리 돈 1500원 정도였다.
[여행 정보] '봄의 도시' 쿤밍 |
2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쿤밍은 중국 남서부 운남성의 옛 도시다. 1년 내내 따사로운 날씨로 유명하다. 중국 사람들은 쿤밍을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고장이라는 뜻으로 '춘성(春城)'이라 부른다. 쿤밍의 중심부는 해발 1891m의 고원으로 한가운데에는 '고원의 진주'로 불리는 뎬츠호(쿤밍호)가 있으며 사방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런 독특한 지형 덕분에 봄의 도시 쿤밍이 되었다. 현재 쿤밍에는 25개 소수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쿤밍의 흙은 철성분이 많이 함유된 붉은색의 적토질로 담배나 차와 같은 식물이 잘 자란다. 이 덕분에 운남성은 보이차와 구감차로 유명하다. 쿤밍은 과거 차마고도의 실질적인 시발점이다. 최근에는 석림과 전지 풍경구를 중심으로 안녕온천리조트-석림 풍경구를 따라 관광지가 형성되고 있다. 이 중 '천하제일기경'으로 불리는 석림이 가장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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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 쿤밍에서 따리로 리얼 중국 버스 여행
▲세계일주
김동우
"쉬푸!" 숙소에서 만난 한국분이 서부 버스터미널로 가달라며 택시기사에게 건넨 말이다. 이 한마디를 못해 택시를 타기까지 얼마나 전전긍긍이었단 말인가.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배낭여행자가 느껴야 할 심적 압박은 상상 이상이었다. 수년간 오지를 돌아다니며 돌발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 능력을 기른 것도 아니었다. 무조건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 날 외국인으로 바라봐 주면 더없이 좋았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날 외국인으로 보지 않았다. 이날처럼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동행이 옆에 있다는 건 엄청난 위안이고 축복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중국 여행을 이렇게 대책 없이 시작했는지 후회막급이었다.
버스터미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현대적인 시설도 눈에 띄었다. 터미널 안 대형전광판에 버스 스케줄이 한눈에 표시돼 있었다. '따리(大理)'행 차편은 제법 많았다. 차표를 사는 건 묵언주문으로는 불가능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메모지에 목적지와 시간 등을 적어주면 한결 수월하겠지만, 처음부터 요령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일단 가장 마음씨 좋아 보이는 창구 아가씨를 골랐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틈을 노려 자신 있게 창구 앞에 섰다.
"따리!" 당당한 어조로 말문을 텄다. 이 단어만 놓고 보면 날 중국인이라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따리?" 곧바로 반응이 왔다.
"예." 기쁜 마음에 나도 몰래 우리말 대답이 튀어나왔다. 내 중국어 실력 그대로였다. 좋았던 건 딱 거기까지였다. 창구 아가씨는 갑자기 유창한 중국어를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내가 대답을 못하자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해주었다.
'그래 그래, 알아. 지금 몇 시 차냐고 묻는 거잖아. 나도 말하고 싶다고 가장 빠른 차 달라고.'내가 할 수 있는 건 검지로 내 벙어리 입을 가리키고 손을 내젓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세상 살면서 이렇게 답답해 본 적이 있던가. 알량한 세 치 혀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벙어리 아닌 벙어리가 되고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 또 한 번 똑같은 말이 내 귓구멍을 때렸다. 그녀의 음성에선 짜증이 묻어났다. 반사적으로 난 손을 내저었다. 창구 아가씨는 이제 상황을 파악했는지 보고 있던 모니터를 신경질적으로 내게 돌렸다. 모니터에는 따리행 버스 스케줄이 모두 표시돼 있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가장 위에 있는 버스 시간을 손으로 가리켰다. 140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그리고 바로 밑을 보니 100원이 조금 넘는 차편이 눈에 들어왔다.
"자... 잠깐..."'드르륵' 소리를 내며 발권기가 순식간에 티켓을 토해냈다. '휴~ 그래 이걸로 감사하자, 첫판치고는 나쁘지 않잖아?' 버스 기사는 표는 보지도 않고 타라는 손짓뿐이었다. 배낭을 짐칸에 넣고 다시 한 번 기사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따리? 따리?" 하고 물었다. 그는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따리행 버스 안에서 한참동안 행선지가 맞는지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여행을 시작한 지 단 삼 일 만에 내 눈동자는 겁먹은 얌체공처럼 사방으로 튀어 다니고 있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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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버스는 2시간 정도를 달려 휴게소에 정차했다. 마실 물과 요기할 과일을 사서 다시 차에 올랐다. 버스 기사는 담배를 물고 승객들에게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눠 줬다. 먹고 잘 버리라는 뜻이었다. 중국에 올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게 있다면 여긴 흡연자들의 천국이다. 한국에선 상상이 안 되는 행동이 여기선 자연스럽기만 했다.
자리에 앉은 버스 기사는 경적을 한 차례 길게 눌렀다. 그때서야 한 아주머니가 뒤늦게 버스에 올라탔다. 기사는 대놓고 화를 냈다. 아주머니도 주눅이 든 기색 없이 같이 화를 냈다. 조금 더 가면 멱살잡이를 할 모양새였다. 누가 승객이고 누가 기사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 길로 버스는 해발 2000m 고지를 넘어 따리로 향했다.
이때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첫 번째 버스 여행이 얼마나 천국 같은 길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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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여행 정보] 따리 |
따리는 쿤밍에서 260km 떨어져 있으며 백색을 숭상하는 백족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또 해발 4200m의 창산(蒼山)이 우뚝 서 있어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앞으로는 해발 1972m에 위치한 얼하이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얼하이 호수는 사람의 귀를 닮았다는 뜻으로 길이가 무려 40km에 달하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크기로만 보면 바다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이런 엄청난 크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얼하이 호수에 바다 해(海) 자를 쓴다.
따리에는 삼탑사라는 상징물이 있다. 남초국 초기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국의 국가중요문물로 지정돼 있다. 3개의 금빛 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천심탑으로 79m나 된다. 따리 시내로 들어오면 고성이 있는데 바둑판 모양의 거리와 웅장한 남북 성루는 여행자들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
따리 고성은 600년 전 티베트로 넘어가던 마방들이 머물며 식사와 물물교환을 하던 유서 깊은 장소다. 이 지방의 대표적인 특산물은 대리석이다. 이곳의 대리석은 단단하면서도 섬세하고, 돌의 자체 무늬가 아름다워 건축 장식 재료나 공예품에 많이 쓰인다. 대리석이란 이름도 이곳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천룡팔부 세트장이 있는 창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트레킹 이외에도 케이블카나 말을 이용하면 된다. 창산은 입장료(30원)를 내야 입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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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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