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군인의 어머니, 왜 과태료를 내야 할까

[대한민국 군 인권 18년의 기록②] '자살' 인정해야 위로금 지급하는 제도, 바뀌어야 한다

등록 2016.01.25 07:43수정 2016.01.2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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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24일 개최된 대한민국 국회 최초의 '국회의원 주최' 군 사망사고 명예 회복 관련 행사 당시 만든 자료집.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2013년 5월 24일 개최된 대한민국 국회 최초의 '국회의원 주최' 군 사망사고 명예 회복 관련 행사 당시 만든 자료집.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고상만

국회 김광진 의원실에서 군 사망사고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관련한 일을 하는 동안 정말 많은 유족을 만났습니다. 당장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잊힌 사건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고통받는 유족들도 많이 만나 왔습니다.

그분들의 주장은 한결같았습니다.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이유라도 알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듣게 되는 그 눈물겨운 사연들. 들을 때마다 참 힘든 피눈물의 사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특이했습니다. 사연들은 다 제각각인데, 그 과정은 어찌나 비슷한지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사연을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군에 입대한 후 단 한 번도 아들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낯선 그곳에 아들만 두고 돌아서는 길에 울지 않는 어머니가 얼마나 될까요. 그렇게 헤어진 아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약 일주일 후쯤 훈련소 측이 집으로 보내서 오는 소포를 통해서입니다. 입소 때 아들이 입고간 옷과 신발. 그 소포를 풀어헤치며 어머니들은 엉엉 웁니다. 이것이 보통의 어머니들이 겪는 두 번째 눈물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눈물부터 달라집니다. 첫 면회를 가거나 또는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을 보며 대다수 어머니들이 울지만, 그런 기회조차 '복 받은 것'이라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바로 군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의 사연입니다.

내 아이 죽었는데, 그 이유는 모른다?

 지난 2013년 5월 24일 국회에 모인 군 사망사고 유족들.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어려서부터 수재였던 이 어머니의 아들은 여전히 순직처리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3년 5월 24일 국회에 모인 군 사망사고 유족들.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어려서부터 수재였던 이 어머니의 아들은 여전히 순직처리 되지 못하고 있다.고상만

훈련소에서 보내온 아들의 편지. 편지에서 아들은 잘 있다고 합니다. 또 "입대 전, 사회생활을 할 때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도 늘 빠지지 않는 글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에 뜹니다. 수신자 부담 전화. 연결하면 아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반가운 마음에 흥분하여 어머니가 정신없이 몇 마디를 물으면 "엄마. 이제 끊어야 해요.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라는 말만 후다닥 남기고 전화는 끊겼다고 합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가던 어느 날, 자대 배치를 받은 아들로부터 첫 휴가를 나온다는 전화가 옵니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한다고 마음이 들뜹니다. 오직 아들이 나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산다고 야단입니다. 그렇게 들떠 부산하게 아들을 기다리던 그때, 아들의 부대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끔찍한 소식.


"아드님이... 오늘, 부대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지금 좀 오셔야겠습니다."

그날부터였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정지되었다고 합니다. 인생도, 삶도, 웃음도, 그리고 가족도.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상실감.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들은 또 말합니다. 군에서 아들을 잃은 것은, 단지 아들 하나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그런 어머니 중 한 분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요. 정말 남 부러운 게 없는 사람이었어요. 남편도 참 잘했고, 경제적 형편도 어렵지 않아 다들 저를 부러워했지요. 어쩌다 아이는 하나 밖에 못 뒀지만 그 아들이 크면서 공부도 잘했고 엄마라면 끔찍하게 위하던 아들이었습니다. 유치원 다닐 때 맛있는 거 생기면 엄마 준다고 가져왔던, 그런 아들이었어요."

그렇게 행복하게 자랑하던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군대 보내서 잃었어요. 그때 알았어요. 전 그때까지 제가 잘나서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들을 잃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전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자식을 잃고 보니 제가 가진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전... 이제 껍데기밖에 남은 게 없어요."

어머니의 울음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화장지를 뽑아 건네는 일뿐입니다. 이분들의 고통은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자식을 잃은 고통만으로도 버티기 힘든데 그 후에 또 다가오는 또 다른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죽은 아들을 대하는 국가의 예우였습니다.

'자살로 처리된' 군인에게 국방부가 해주는 것

군인으로 죽어간 아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합니다. 지난 2013년 5월 24일, 전국에 흩어져 살던 군 사망사고 유족들이 국회에 모였다. 당시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주최한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 행사에 참석한 유족들의 모습.
군인으로 죽어간 아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합니다.지난 2013년 5월 24일, 전국에 흩어져 살던 군 사망사고 유족들이 국회에 모였다. 당시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주최한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 행사에 참석한 유족들의 모습.고상만

지난 2015년까지 의무복무 중인 군인이 자살로 사망할 경우 국가와 국방부는 무엇을 해줬을까요. 진실을 알면 참으로 끔찍합니다. 놀랍게도 국방부가 유족에게 내준 것은 '죽은 아들의 시신 한 구'와 '국방부 장관 명의로 지급하는 위로금 5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500만 원 위로금 지급도 2001년 이전에는 없던 제도입니다.

1998년 판문점에서 김훈 중위가 의문사한 후 당시 제가 일하던 천주교 인권위원회에는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이 매일 찾아왔습니다. 자기 아들도 군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며 "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의혹도 제기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자신의 사연도 김훈 중위 사건처럼 세상에 알려줄 수 없느냐는 호소였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충격적 사실. 당시만 해도 군에서 사람이 죽으면 국가는 피해 유족에게 단 1원도 보상하지 않았습니다. 유족들은 "이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습니다. 왜 국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느냐고 유족들과 함께 국방부에 따지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2001년, 마침내 국방부가 제도를 개선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살로 처리된 군인의 경우' 국방부 장관 명의로 위로금 500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였습니다. 정말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저는 또 의문이 생겼습니다. '피해 유족이 위로금 500만 원은 전부 다 받은 것일까' 하는 궁금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2001년 제도 도입 후 2013년까지 위로금 500만 원을 받지 않은 유족의 현황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였습니다.

약 10여 일 후 국방부에서 제출한 자료가 도착했습니다. 놀랍게도 제 의문은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약 60여 명의 유족이 국방부장관 위로금 500만 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돈이 너무 적어서 유족이 거부한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그래서 또 확인해 봤습니다. 그래서 알게 된 '또 다른 야만',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들 죽었는데, 위로금 대신 과태료 선택하는 유족

국방부 장관 위로금 500만 원도 무조건 그 피해 유족에게 주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이 돈을 받기 위해서는 유족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관할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내 아들이 사망했다는 신고를 해야 하고 이렇게 신고한 서류를 떼어 군 부대에 제출하는 절차였습니다.

문제는 신고서를 낼 때 체크해야 하는 항목입니다. 사망 신고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체크, 바로 '사망의 종류' 중 '자살' 부분에 표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즉, 아들이 왜 죽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족이 국방부 장관 위로금 500만 원을 받으려면 '먼저 자살을 인정해야 하는'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유였습니다. 신고서의 해당 부분 때문에 약 60여 명의 유족이 국방부 장관 위로금 500만 원을 수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위로금을 신청하지 않은 분 중 저와 잘 아는 어머니의 이름도 보여 그 사유를 물어보니 돌아온 답이 그랬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 아들이 자살했다는 군의 발표를 믿을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멀쩡한 내 아들이 왜 아무 이유 없이 자살합니까. 만약 정말 자살했다면 그 자살한 이유를 설명해 줘야지, 왜 이것을 인정해야만 그깟 돈 500만 원을 주니 안주니 합니까? 저는 돈으로 내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팔아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비극은 또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부모님들은 위로금 500만 원만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금 대신 선택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과태료'입니다. 관련 법률에 의하면 사람이 사망할 경우 반드시 1개월 이내에 사망신고를 해야 합니다. 만약 그 기간을 경과하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약 60여 명의 군 사망사고 유족은 아직도 자식의 죽음을 신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은 이미 사망했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처럼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군 사망사고 피해 유가족이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에 한 유가족이 남긴 글을 보시면 그 이유를 아실 겁니다.

"그리운 울 막내야. 오늘은 죽기보다 하기 싫은 그 한 가지 일(사망 신고 - 기자 주)을 하러 동사무소에 왔구나. 용지 하나를 얻어서 너의 이름을 적는 순간 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구나. 다행인지, 복사본으로는 문서 처리가 안 된다는 직원의 말에 황급히 그곳을 나와 버렸구나. 두 번 가고 싶지는 않지만, 아직은 널 보낼 준비가 안 된 엄마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못난 부모 만나서 푸르러야 할 너의 젊음이 접히고 말았구나. 울 막내야.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수백 번, 수천 번을 되뇌어 보아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못난 엄마라서 더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너를 따라가지 못함이 미치도록 견디기 힘들지만, 울 막내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 굳건해지려 한다. 그 길을 아직은 알 수 없기에 미리부터 겁먹고 움츠러들지 않으려 한다. 울 막내야. 그때까지 엄마랑 같이 가지 않으련? 사랑해. 울 아들!"

주민센터에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러 갔다가 통곡만 하고 돌아 나온 사연. 이 어머니의 심정에 비슷한 경험을 먼저 한 또 다른 유가족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다음은 댓글 중 하나입니다.

"나랑 똑같군요. 이런 힘든 일은 그래도 조금은 담담한 아빠를 보내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면서, 오면서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 늦게 신고했다고 벌금까지 물면서 돌아오는 발길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던 기분. 우리가 아니면 누가 알까요."

국방부 장관 위로금 제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다행히 지난 2015년 1월부터 국방부 장관의 위로금 500만 원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자살로 '처리되는' 군인에게 지급되는 위로금이 턱없이 적은 것에 대해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애초 김광진 의원이 요구한 액수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2015년 1월부터 기존의 500만 원이 아닌 1500만 원으로 위로금이 3배 인상됐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이러한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국민이 의무를 다했다면, 그다음엔 국가가 의무를 져야 한다'는 점에서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에 대해서는 사망 원인이 무엇이든 국가가 제대로 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징병할 권리만 있고, 그 사병을 보호할 책임이 없다면 또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이처럼 허망하게 죽어갈까요.

이처럼 국방부 장관 위로금 액수를 현실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위로금을 지급하는 규정의 개선입니다. 지금과 같은 '사망신고 후 위로금을 청구하는' 방식의 야만적 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이는 군 헌병대가 내린 일방적인 자살 결론을 유족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자식이 어찌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부모에게 '돈 받고 싶으면 먼저 자살이라는 군 헌병대 수사 결과부터 인정하라'는 식의 현행 제도는 결코 옳은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주장합니다. 군 복무 중 군인이 사망할 경우, 국방부 장관은 그 사병의 부모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도록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명칭 역시 바꿔야 합니다. '국방부 장관 위로금'이 아니라 '국방부 장관 조의금'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부모에게 '진실을 알지도 못하는데 위로금을 위해 내 자식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야만적으로 강요한다'는 비난은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국방부는 이런 말로 반박할지 모릅니다. 이 돈은 자살로 처리된 군인에게만 지급하는 항목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급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만약 이후에 순직 처리가 된다면 그때 순직 보상금에서 차감하면 될 일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야만은 이제 끝나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군을 운영하겠습니까. 자식도 잃고, 그 부모는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 과태료까지 물어야 하는 세상. 사망 신고를 하기 위해 찾아간 주민센터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어머니들을 우리가 언제까지 봐야 합니까. 이제 그만 끝내야 합니다. 군인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으로, 바꿀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함께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군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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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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