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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 부츠 밑창이 벌어져 그걸 붙이려 구두방에 갔다. 내가 그 곳에 몇 번 들렀던 걸 기억하시는지, 가게 아저씨는 내게 이런 저런 얘기를 건네신다.
"아유. 요즘은 수선 해보면 좋은 신발이 별로 없어. 내가 신발을 좀 아니까 하는 말인데, 예전보다 질이 확 떨어졌다고."
"아, 맞아요. 그런 것 같긴 해요."
"십 년 전하고 확 다르지. 그게 장인정신 갖고 일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야. 어떻게든 눈속임하고 많이 남겨 먹으려고만 들지. 점점 더해."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구두를 수선해오며 답답했던 속을 내가 공감해마지 않을 것을 어찌 아셨는지 내게 털어내셨다. 나는 구두 뿐 아니라 다른 제품을 살 때도 느꼈던 아쉬움을 말했다.
"옷도 그렇다니까요. 패딩 살 때요 전부 오리털이라고 해서 집에 와보면 충전재2라고 폴리에스테르가 들어있는 부분이 요즘 생겼더라고요. 전엔 오리털이면 오리털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 옷은 없었거든요."
"그렇다니까. "
"네, 파는 사람도 그냥 오리털이라고 하고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점점 참…. 여기 내가 쓰는 이것 좀 봐봐."
아저씨는 내게 하얀 솜이 담긴 솜 통을 보여주셨다.
"이거 내가 십 년 째 쓴 건데 전혀 갈 필요가 없어. 목화 솜이라 그래. 이걸 스폰지 같은 걸로 쓰면 일주일이면 금세 냄새가 난다고. 이렇게 천연 소재가 좋은 건데 요즘은 너무 화학섬유만 쓰는 거지."
얼마 전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옷이 세탁된 후 세제를 떨어내지 못해 각종 피부병을 유발한다는 내용을 TV 프로그램에서 봤던 일이 기억났다. 그 방송을 보고, 평소 피부에 화학섬유가 직접 닿았을 때의 불편함이 떠올랐었는데 꼭 피부에 닿지 않는 곳에도 천연섬유의 우월성이 진가를 발휘하는 모습을 아저씨의 솜 통에서 볼 수 있었다.
내 벌어진 밑창에 발려진 본드가 마르는 동안 대 여섯 명의 손님들이 들고났다. 그 중엔
도장에 잉크를 넣으려는 사람,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은 굽을 갈려는 사람이었다.
"그 좀 높은 걸로 할게요."
아저씨는 고무로 된 조금 두툼한 굽을 보여주었다.
"이거?"
"네, 그걸로 할게요. 얼마죠?"
"어, 팔 천원만 해."
"네, 십분 이따 올게요."
그녀와 아저씨의 짧고 간결한 대화도, 영하 10도가 넘어가는 이 날씨에 슬리퍼만 신고 어딘가로 향하는 씩씩한 발걸음도 뭔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저 분 쿨 하시네요."
"여기 뭐 자주 오니까. 그리고 말야."
아저씨의 토로는 손님이 들고남에 따라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 손해 보는 듯하게 장사해야 해. 그래야 또 오거든."
그리고는 어느 정도 본드가 말라가는 내 신발의 밑창을 열기에 댄 후 마무리를 하시며 다시금 그 토로가 시작됐다.
"음식에도 말이야, 맛있게 보일라고 별 짓을 다 하잖아. 전에 설렁탕에다가도 하얗게 보이려고 뭐 탔다는 뉴스가 나왔었는데…"
중국산 가짜 계란에 가짜 참기름과 들기름 그리고 상한 계란으로 만들어진 빵 등등 지난 몇 년간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기사들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세상이 점점 지금의 속도로 그 나쁜 의도의 속임수가 커져간다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구둣방 아저씨는 속 시원한 답을 주실 수 있을까?
"다들 속여먹으려고만 들고, 정말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어. 다들 그런데."
'그러려니'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예전과 달라진 물건을 두고 '그러려니'하면서 스트레스 안 받으면 되는 것일까?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러려니'하면서 사서 신고 입고 먹고 쓰면 되는 걸까? 그냥 적당히 그렇게…. 왠지 그 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키워드같기도 한 게 씁쓸했다.
몇 년 전 <놈.놈.놈>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는 착한 놈, 나쁜 놈, 그리고 이상한 놈이 나온다. 서부영화를 방불케 했던 그들의 광활한 대륙을 누비는 추격전은 착한 놈도 그리고 나쁜 놈도 아닌 착한 놈과 나쁜 놈 사이에서 실리만을 추구한 이상한 놈의 승리로 끝이 난다. 이 결말은 선과 악의 논란이 차치되고 실리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이 시대를 담는 것 같아 씁쓸했던 그 날의 기억이 오늘 다시 한 번 되새김질 됐다.
모두들 너무 바쁘다. 이런 웃기는 시대상 앞에 슬퍼하기엔. 또 "눈 앞에 이익만을 추구하면 언젠가 몰락한다"는 말을 새겨 듣기엔 당장의 삶은 너무 빠듯하고, 눈 앞에 이익만을 좇아가는 그 누군가 조차 너무 많이 속아넘어가며 살고 있기에 그를 나무랄 수도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면 대체 그 시작은 누구였을까?, 문득 그게 궁금해진다. 아니,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이 속이기 때문에 자기도 어쩔 수 없이 그렇다는데 그럼 맨 처음 눈속임을 시작한 그는 대체 누구일까? 모두 중 맨 처음 그 시작을 한 사람이 누구일까?
가짜 계란을 만든 사람과, 상한 계란으로 빵을 만든 사람, 겉모양만 번드르한 편하지 않은 신발을 만든 사람과, 충전재2가 든 패딩을 만든 사람과, 세제 찌꺼기가 빠져나가지도 못할 만큼 질이 나쁜 소재의 의류를 만든 사람, 설렁탕에 뭔지 모를 들어가선 안 될 것을 넣은 사람, 들기름도 참기름도 아닌데 들기름이라 참기름이라 이름 붙여 파는 사람, 아니 그 이전부터 자행됐던 속임수를 썼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 그 중 첫 번째는 누구일까? 대체 당신은 어떤 속임수에 넘어가서 당신도 그런 행위를 하게 됐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몇 년이 걸리는 대 추적을 해나가 그 끝에 있는 그 사람. "다 그래"의 효시, "다 그래"라는 성이 있다면 그 시조 격인 그. 찾을 리 만무한 그.
하지만 "다. 그래."집안의 시조를 찾을 수 없다고 해서 절망하진 않으려 한다. 그 시조 한 사람이 두 사람 되고, 네 사람 되고, 결국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다 그래." 세상이 된 것이 한탄스럽지만, 이건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양심"의 시조 한 사람만 있어도 그게 같은 방식으로 늘어나 언젠가 "안 그래."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속고 속이는 세상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고 장인정신을 지켜가는 "안 그래'의 시조 당신이 되어줄 수 없을까? 혹 "안 그래"의 시조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조금 손해 보는 듯하게 장사해야 해. 그래야 또 오거든."라는 지나가듯 했던 아저씨의 말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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