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천마을회관 뒤로 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외부로 송전하는 철탑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김민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이뤄진 폐로 사례를 중심으로 해체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원자로를 완전 정지한 뒤 압력용기에서 핵연료를 꺼내 원전 내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소로 옮긴다. 핵연료를 빼낸 압력용기에는 물을 채워 2년간 열을 식힌다. 그 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과 철거작업을 시작한다. 방사능 때가 낀 원자력 배관은 제염액을 넣어 씻어내고, 콘크리트 벽과 보조설비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염한다.
시설 철거는 터빈과 발전기, 냉각기 등 오염이 덜한 설비부터 시작한다. 가장 큰 난관은 오염이 심한 핵심설비 해체다. 증기발생기와 가압기, 냉각기 펌프, 압력 용기 순으로 해체하는데, 가장 오염이 심하고 단단한 압력용기는 로봇과 다이아몬드 톱을 원격 조정해서 절단한다. 폐로 과정에서 나온 해체 폐기물은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옮긴다.
이어 원전 부지에서 오염된 흙을 걷어내고 땅을 원상태로 회복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이 모든 작업에 드는 시간이 즉시해체의 경우 15~20년, 지연해체의 경우 50~100년이라는 얘기다.
핵심 기술 38개 중 확보된 것은 17개뿐우리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위해 2030년까지 총 6163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중 4419억 원이 기술개발을 위한 예산이다. 원전 해체를 위한 기술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 지금부터 연구개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업용 원전 해체 기술과 경험을 갖춘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정도다.
연구용 원자로를 해체한 경험을 포함하면 영국과 프랑스를 추가할 수 있다. 이 중 기술이 가장 축적된 미국은 15기 이상의 원전 해체 작업을 부지 복원단계까지 완료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해체 기술은 선진국을 기준으로 제염은 70%, 절단 해체는 6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원전 해체를 위한 핵심기반 기술 38개 중 우리나라가 확보하고 있는 것은 오염토양 처리 등 17개 기술뿐이다. 필요한 기술 중 절반도 안 된다.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위해 오는 2021년까지 부족한 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원자로에서 꺼낸 뒤 방사선과 열을 제거하는 고방사성 폐기물 안정화, 우라늄 폐기물 처리 등 21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해체 사업자인 한수원은 고리 1호기의 자력 해체를 목표로 기술개발을 전담할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부에 해체계획서를 제출하는 2022년 6월까지 기술 확보에 성공하지 못하면 외국에서 사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