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1호기 해체, 주민들은 방사능 유출이 두렵다

[원전재앙은 막자] ⑫ 고리 1호기 폐로결정 이후의 과제

등록 2016.02.03 14:31수정 2016.02.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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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작업이 더 위험하다 카던데..."

부산 장안군 장안읍의 길천마을은 고리원전 1, 2호기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에 있다. 지난해 12월 6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마을로 달리자 10여 분 동안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나지막한 슬레이트 지붕들이 맞닿은 어촌 주택과 카페, 식당이 보이고 해안선 쪽으로 둥근 지붕을 인 기둥 모양의 고리 1~4호기가 나타났다. 마을 어귀에서 옷 수선을 하는 70대의 김아무개(여)씨는 지난해 가동중단 결정이 내려진 고리 1호기가 안전하게 폐로 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해체할지도 모르고, 항상 불안하지. TV에서 보니까 기술도 없어서 외국 사람들이 작업한다던데."

폐로 과정 위험성 걱정하는 마을 주민들

 어촌마을 뒤로 고리 원전이 나타난다. 길천마을은 원전과 불과 1km 거리로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어촌마을 뒤로 고리 원전이 나타난다. 길천마을은 원전과 불과 1km 거리로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김민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평생을 살았다는 김씨는 "원전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곳이 제주도 저리 가라 할 만큼 아름다운 동네였다"고 회고했다. 억새로 지붕을 잇고 돌담을 쌓아 올린 초가집, 집 앞으로 펼쳐진 하얀 모래사장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았다고 한다. 하지만 원전이 들어서면서 옛날 동네는 사라졌고 콘크리트 도로와 방파제가 해변을 메웠다. 그래도 고향을 떠날 수 없어 살아왔다는 그는 이제 새로운 위협 앞에 마음을 졸인다.

원전 해체에 여러 해가 걸릴 것이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방사선에 피폭될 위험이 있다는 것, 국내에는 충분한 기술이 없어 외국 회사가 와야 한다는 등의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가게 앞을 지나는 단골들과 눈인사를 나눈 뒤 무거운 쇠 가위로 바지 밑단을 자른 김씨는 하얀 재봉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와중에도 까만 카세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지난해 6월 16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설계수명을 넘겨 가동되고 있는 고리 1호기에 대해 더 이상 운전 연장을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78년 4월 상업 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39년 만인 2017년 6월 영구정지 된다.


'원전 수명연장 반대'를 외쳤던 부산시민들과 환경단체, 야당은 환영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수면 아래 잠겨있던 '안전한 폐로'라는 또 다른 난제를 떠올렸다. 또 현재 24개나 가동되고 있는 원전 숫자를 줄이기는커녕 2029년까지 10여 기를 더 짓겠다는 정부 정책에도 변함이 없어, '원전 대국'인 미국, 러시아, 일본이 겪은 대형 사고가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오염된 설비 해체와 토지 복원 등에 20~100년


 길천마을회관 앞에는 방사선 비상시 옥내 대처 요령과 옥외 대피 시 마을회관과 월내역으로 집결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길천마을회관 앞에는 방사선 비상시 옥내 대처 요령과 옥외 대피 시 마을회관과 월내역으로 집결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김민지

고리 1호기가 내년 6월 가동을 멈추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체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해체란 사용 연한이 지난 원자로를 영구적으로 정지한 후, 원전 일대를 자연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모든 기술적 행정적 활동을 말한다.

시민단체인 에너지정의행동의 이헌석 대표가 쓴 <미국 사례를 통해 본 한국 핵발전소 폐로 정책의 과제>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을 폐로하는 방식에는 즉시해체, 지연해체, 영구밀봉 등 세 가지가 있다.

콘크리트와 같은 구조물로 시설을 완전히 파묻는 영구밀봉 방식은 1986년 사고를 일으킨 구소련의 체르노빌 4호기에 적용됐다. 즉시해체는 20년 내외로 해체를 완료하는 것이고 지연해체는 50~100년간에 걸쳐 장기적으로 작업을 마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100년이 걸리는 지연해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체 방법과 기한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잠정적으로 핵연료 냉각에 5년 이상, 원자로 오염 제거 및 해체에 6년 이상, 부지 복원 기간 2년 등을 거쳐 2030년경 해체 절차 완료를 예상하고 있어 즉시해체를 추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리원전안전협의회 박갑용(53) 위원장은 "즉시해체를 하면 아무래도 기술축적이 안 되어있어서 (위험하고) 분진만 나와도 방사성 물질이라고 봐야 한다"며 "지연해체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길천마을회관 뒤로 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외부로 송전하는 철탑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길천마을회관 뒤로 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외부로 송전하는 철탑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김민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이뤄진 폐로 사례를 중심으로 해체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원자로를 완전 정지한 뒤 압력용기에서 핵연료를 꺼내 원전 내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소로 옮긴다. 핵연료를 빼낸 압력용기에는 물을 채워 2년간 열을 식힌다. 그 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과 철거작업을 시작한다. 방사능 때가 낀 원자력 배관은 제염액을 넣어 씻어내고, 콘크리트 벽과 보조설비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염한다.

시설 철거는 터빈과 발전기, 냉각기 등 오염이 덜한 설비부터 시작한다. 가장 큰 난관은 오염이 심한 핵심설비 해체다. 증기발생기와 가압기, 냉각기 펌프, 압력 용기 순으로 해체하는데, 가장 오염이 심하고 단단한 압력용기는 로봇과 다이아몬드 톱을 원격 조정해서 절단한다. 폐로 과정에서 나온 해체 폐기물은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옮긴다.

이어 원전 부지에서 오염된 흙을 걷어내고 땅을 원상태로 회복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이 모든 작업에 드는 시간이 즉시해체의 경우 15~20년, 지연해체의 경우 50~100년이라는 얘기다.

핵심 기술 38개 중 확보된 것은 17개뿐

우리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위해 2030년까지 총 6163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중 4419억 원이 기술개발을 위한 예산이다. 원전 해체를 위한 기술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 지금부터 연구개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업용 원전 해체 기술과 경험을 갖춘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정도다.

연구용 원자로를 해체한 경험을 포함하면 영국과 프랑스를 추가할 수 있다. 이 중 기술이 가장 축적된 미국은 15기 이상의 원전 해체 작업을 부지 복원단계까지 완료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해체 기술은 선진국을 기준으로 제염은 70%, 절단 해체는 6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원전 해체를 위한 핵심기반 기술 38개 중 우리나라가 확보하고 있는 것은 오염토양 처리 등 17개 기술뿐이다. 필요한 기술 중 절반도 안 된다.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위해 오는 2021년까지 부족한 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원자로에서 꺼낸 뒤 방사선과 열을 제거하는 고방사성 폐기물 안정화, 우라늄 폐기물 처리 등 21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해체 사업자인 한수원은 고리 1호기의 자력 해체를 목표로 기술개발을 전담할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부에 해체계획서를 제출하는 2022년 6월까지 기술 확보에 성공하지 못하면 외국에서 사와야 한다.

 21개 미확보 원전해체 기반기술
21개 미확보 원전해체 기반기술전기저널 2015년 1월 vol.457

원전의 안전한 해체를 위한 기술이 없다는 문제와 함께, 주민들은 해체 시점까지 과연 고리 1호기가 사고 없이 가동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다. 박갑용 위원장은 "1년 반이 지나야 해체를 시작하는데 그때까지 고리 1호기가 안전하게 돌아갈 것인지 (길천마을 등 지역주민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리 1호기는 지난 40여 년간 국내 24개 원전에서 발생한 고장·사고 684건 중 19%인 130건을 일으켰다. 지난 2012년에는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뻔한 정전사고를 내고도 이를 은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시험성적서 위조와 불량부품 사용 등 각종 비리도 잇따랐다. 주민들은 낡은 설비, 불량 부품, 허술한 운영과 부조리 전력이 있는 고리 1호기가 과연 탈없이 퇴장의 순간을 맞을 수 있을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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