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사태로 민주주의 훼손, 베를린 시민들이 뿔났나

민주주의의 상처: 템펠호프 난민촌

등록 2016.02.01 14:11수정 2016.02.02 09:04
2
원고료로 응원
쾰른 성추행 사건 이후, 난민이 독일 여성에게 꽃을 나눠주는 모습 그리고 독일 여성들이 성차별이 문제이지 난민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치는 모습. 난민의 임시숙소에 테러를 하고, 난민에 대한 혐오를 넘어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거리 시위와 테러가 이루어지는 모습. 이 모든 모습이 2016년을 맞이한 독일의 모습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Wir schaffen das)"라는 메르켈의 말처럼 지난해 독일은 무조건적인 난민 수용 정책에 확고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1000명의 북아프리카계 그리고 중동계 난민이 벌였다는 쾰른 성추행 사건과 관련, 자극적인 경찰 발표와 독일 언론의 받아쓰기식 보도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로 인해 독일 전역에서 극우파의 반 난민 시위가 더욱 거세를 펼치기 시작했고, 난민촌에 대한 테러가 더 늘어났다. 난민의 독일 사회 통합이라는 목표보다 독일의 난민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씩 사회에 쌓여가고 있다.

지난 1월 중순에는 바이에른 주의 페터 드라이어(Peter Dreier) 주 의원이 베를린의 총리 관저로 난민을 태운 버스를 보내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는 독일의 여러 지방자치단체 등이 지속적인 난민 수용으로 인해 큰 부담에 시달리고 있고, 이러한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며 동기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총리실에 "우리는 할 수 없다.(Wir schaffen das nicht)"라는 전화를 걸기도 했다.

 템펠호프 공항 건물 앞에 난민 임시 시설이 들어서있다.
템펠호프 공항 건물 앞에 난민 임시 시설이 들어서있다.신희완

난민 수용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주택확보'

하지만 이런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바로 주택확보 문제다. 단기간에 몰려온 난민들이 서류 작성 등 최초 행정처리를 거치는 동안 지낼 수 있는 임시숙소를 마련하고, 이후 진행되는 난민 심사절차의 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주택을 확보해야 한다.

페터 드라이어 주 의원과 베를린에 함께 간 31명의 난민들도 모두 심사를 위한 서류를 제출한 상태임에도, 머물 수 있는 안정적인 주택이 없어서 임시숙소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주택난에 시달리던 여러 도시에서도 단기간에 유입된 수많은 난민들은 임시숙소를 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베를린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특히 지난 2014년 5월 주민투표 이후로 평온했던 템펠호프 공원이 다시 논란의 중심지가 되었다.

2년도 채 안 된 당시 주민투표에서는 정부의 공항 부지 개발 계획이 다수의 반대로 부결되고, 반대 안이었던 전면 개발 금지를 골자로 한 시민단체의 템펠호프 공원법이 다수의 찬성을 바탕으로 통과되었다(관련 기사: 베를린 최고의 '핫 플레이스', 왜 투표까지 갔을까).


하지만 지난 1월 28일 목요일 베를린 주의회에서는 사회민주당(SPD) 그리고 기독민주당(CDU)의 찬성을 바탕으로 템펠호프 공원법을 변경하였다.

법을 변경한 이유는 기존에 공항 건물 내부에 약 2500명을 수용하고 있는 임시 난민 시설을 공원 부지까지 확장하여, 최대 7000명의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숙소와 교육, 편의시설을 갖춘 하나의 작은 마을로 만들자는 것이다. 기존의 과포화 상태인 보건사회청(LaGeSo, 난민 첫 등록, 서류 처리, 임시숙소 제공 업무를 함)의 업무를 분담할 새로운 관청 건물도 세우기 위해서였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방송(Rundfunk Berlin-Brandenburg) 캡쳐 이미지 템펠호프 공원법 변경에 대한 토론회 관련 보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방송(Rundfunk Berlin-Brandenburg) 캡쳐 이미지템펠호프 공원법 변경에 대한 토론회 관련 보도rbb

템펠호프 공원법을 변경하기 1주일 전 1월 21일에는 템펠호프 공항 건물에서 최종 토론회가 있었다. 법안 변경 전 마지막 토론회에는 약 15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여기에서는 '뮬러 시장은 난민을 2등급 시민으로 만든다', '대규모 난민촌을 만드는 것은 게토(Ghetto)를 만드는 것이다.' '난민촌은 난민이 지역 사회 그리고 도시에 통합될 수 없게 만든다.' '템펠호프 공원에서 손을 치워라'라는 등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캡쳐 이미지 템펠호프 난민 시설 확충을 통해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지 소개하고 있다.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캡쳐 이미지템펠호프 난민 시설 확충을 통해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지 소개하고 있다.Berliner Morgenpost

난민 숙소 계획안,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가장 웃음을 자아냈던 이야기는 베를린의 건축가인 빌프리드 방(Wilfried Wang)이 주정부의 난민 숙소 계획안에 대해 한 비판이었다.

"건축학과 교수로서, 만일 내가 첫 학기에 이런 종류의 작품을 가져온 학생을 본다면, 바로 집으로 보낼 것이다."

많은 실수가 용납되는 대학교 1학년의 작품으로 보기에도 어려운 수준 낮은 계획안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법안 변경 이후 보완이 될 초기 계획안이었다.

마지막 토론회에서 시민들의 여러 대안 그리고 법안 변경까지 포함한 정치인들의 대안은 모두 무시당했고, 70만 명이 넘는 시민의 찬성표로 수립된 템펠호프 공원법은 의회 내의 정상적인 합의 절차에 따라 변경되었다.

법 변경에 반대한 의원들은 이런 식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새로운 문제를 더 만들어낼 것이라며 비판했다. 심지어 공항 건물 내에 시설을 확충할 공간이 충분히 남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개발 금지를 골자로 한 시민들의 법을 변경한 것은 아무리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할지라도 주민투표 내용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에 템펠호프 주민투표를 주도했던 시민단체 '100% 템펠호프 공원'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참고로 대안의 주요 골자는 베를린 내 에어비앤비 등을 통한 불법 휴가용 임대주택, 빈 주택 및 사무실 건물 그리고 빈 정부 시설 등을 난민을 위한 장기 주택으로 변경해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빠른 공급을 위해 컨테이너를 활용한 난민촌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도 있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대안이자, 낭비되는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도 의미 있는 대안이다.

 템펠호프 공항 건물 앞에 난민 임시 시설이 들어서있다.
템펠호프 공항 건물 앞에 난민 임시 시설이 들어서있다.신희완

시 정부는 약 355만m² 에 달하는 거대한 공원 부지 중 녹지를 제외한 공항 건물에 인접한 극히 일부의 땅에만 건설하기로 표명했다. 지난해부터 발표해 온 몇몇 계획안에서 제시했던 템펠호프 공원 내 개발 장소들이 큰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타협안으로 선정된 장소는 공항 건물 보호를 위해 이미 철조망이 세워져 있던 곳이고, 일반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장소라 그나마 논란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공원에 난민 수용시설 건설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은, 이미 건설이 가능하도록 변경됐다. 난민 수용이라는 긴급한 목적을 해결하기 위해 변경된 템펠호프 공원법은 베를린 시민들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독일 #베를린 #도시 #난민 #주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베를린과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1. 유튜브: https://bit.ly/2Qbc3vT 2. 아카이빙 블로그: https://intro2berlin.tistory.com 3. 문의: intro2berlin@gmx.de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