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반올림 농성장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 황상기씨와 삼성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으로 10년째 투병중인 한혜경씨, 그리고 그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이 추위에 그 농성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삼성의 기만과 오만이 이 추위보다 더 몸서리쳐진다며, 삼성이 삼성직업병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때까지 거리에 있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영하 10도를 거뜬히 넘어가는 날씨에 몸 상하면 어쩌냐고 걱정하며 따뜻한 핫팩과 음료를 건네며 연대했지만, 삼성은 아랑곳하지 않던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반올림이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농성을 시작한 건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삼성이 회피하며 일방적으로 '보상위원회'를 꾸렸기 때문입니다. 3년 전 삼성이 먼저 제안했던 교섭이었고, 1년 전 삼성이 도입을 강행했던 조정위원회였음에도 '노동인권선언과 공익 법인을 통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 마련' 권고안이 나오자, 삼성은 권고안을 무시하고, 대화의 주체인 반올림과는 어떠한 논의도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보상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가해자인 삼성이 자신들 마음대로 기준을 세워 피해자를 선별하여 심사하고, 집행까지 한다고 하니 반올림 피해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올림이 요구한 "진정성 있는 사과, 배제 없는 보상,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논의는 어느 하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연말이 가까이 오자, 삼성은 이미 150명이나 신청했다며 삼성직업병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홍보했습니다. 언론도 적극적인 공모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가던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 같은 소식이 비닐 농성장에 전해졌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 수상 소식이었습니다.
속초에서 서울 강남 삼성본관 앞, 근로복지공단, 반올림 사무실만 오가던 황상기 아버님도 모처럼의 명동행에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셨습니다. 춘천에서 서울을 오갔던 혜경씨 모녀도 명동은 처음이라며 "우린 반올림 덕분에 서울 곳곳에 안 가본 곳 없지요~" 라며 신나하셨습니다. 명동역에 내려 한참을 혜경씨 휠체어를 끌며, 밀며, 하얀 입김 불어가며 수상식이 열린다는 명동성당을 오르는데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하십니다.
그 뒷모습을 보니, 아. 우리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신나게 지냈구나 싶었습니다. 숙연해졌습니다. 혜경씨가 미사 내내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잘못된 삼성이 사과하게 해달라고 빌었을까요. 불편한 내 몸이 조금이나마 나아서 사랑하는 우리 엄마 편하게 해달라고 빌었을까요. 간절한 그녀의 기도만큼, 이돈명인권상 시상식은 경건했습니다.
힘이 된 이돈명인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