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해 12월 15일 국회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을 면담한 뒤 의장실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님! 국무회의를 국회 상임위원회식으로 하면 어떡합니까!" 지난 2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온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현기환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이 돌연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도대체 국무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통령 비서관이 서울시장에게 무례를 범하며 따지고 든 것일까?
4일 서울시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국무회의에 참석한 박원순 시장은 누리과정 예산 갈등과 관련해 일부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날선 공방을 벌였다.
박근혜 "서울시, 왜 예산 편성 안하나?" vs 박원순 "근본적인 대안 마련 필요" 이날 국무회의에는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일부 편성한 12개 교육청에 목적예비비 3000억 원을 지출하는 안건이 상정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박 시장은 "누리과정을 둘러싼 국민들의 걱정, 불편, 불안을 해소해야 하며, 여기에 모든 당사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며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재정을 어떻게 얼마나 확충해서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가 관건이며 이 부분에 대한 조속한 해결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교안 국무총리,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누리과정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으니 잘 협력해 달라'는 취지로 당부했고, 이준식 사회부총리는 '서울시가 누리과정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서울시 재정여건으로 5~7개월 누리과정 운영이 가능함에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박 대통령도 나섰다. 박 대통령은 "서울시가 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것인지"라면서, 누리과정 예산편성이 법적 의무사항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다시 박 시장은 시의회, 서울시교육청 등과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서울시가 예산편성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현 교육재정 여건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더라도 4~5개월 밖에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또한, "대통령께서 관련 당사자 전체회의를 소집해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안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울시장에 대한 대통령 비서관의 고성, 왜?
현기환 수석비서관이 박 시장을 향해 고성을 지르며 항의한 것은 박 시장이 박근혜 대통령 등 국무위원들과 공방을 벌인 부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누리과정 예산편성이 법적 의무사항이라 강조했음에도 박 시장이 전체회의 소집 등 소통을 통한 해결을 주문한 게 주제넘은 발언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 발언에 서울시장이 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측근이 서울시장의 면전에 고함을 지르는 무례를 범한 셈이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박 시장은 "국무회의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4일 <朴대통령, 박원순 면전서 "누리예산 왜 말 바꾸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시 국무회의 상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정면 비판을 받은 박원순 시장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서울시는 곧바로 <조선일보>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는 자료를 발표했다.
먼저 이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누리과정 예산은 정부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앞에 앉혀두고 '지난해엔 시도 교육청이 누리 예산을 편성하는 방안에 찬성해놓고 왜 말을 바꾸느냐'며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박 시장은 국무회의에 누리과정 예산이 안건으로 상정되자 바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박 시장이 "누리 예산 부족 사태는 모든 교육청이 똑같이 겪고 있는데 누군 주고 누군 안 주고 할 수 있느냐"며 "시도지사와 교육감 협의회라도 열어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그러자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준식 사회부총리가 연이어 '이미 누리 예산은 다 지급됐다' '각 교육청이 불필요한 지출만 줄여도 수천억 원을 아낄 수 있지 않으냐'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박 대통령도 "박 시장께선 지난해 시도지사-교육감 협의회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누리 예산을 포함시키는 방안에 찬성하지 않았느냐"며 "(교육감들이)받을 돈은 다 받아가 놓고 이제 와서 다 썼다고 또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일선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엄마들은 무슨 죄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고 국무위원들은 전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시 "<조선>보도 사실 아니다"... '박원순 망신주기'? 기사 내용만 봐서는 박 시장이 떼를 쓰다가 박 대통령의 논리적인 반박에 꼬리를 내렸다는 식으로 읽힌다. 특히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국무회의 내용이 특정 언론사를 통해 구체적인 발언까지 보도된 것을 두고, 박 시장을 '망신주기' 위해 일부러 흘린 것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된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서울시는 곧바로 해명 자료를 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특히 서울시는 "(박 시장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는 기사 내용에 대해 "박 시장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분명히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