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근 <내 나이가 어때서> 가요무대 공연 장면
KBS1
설은 나이를 먹는 날이었다. 물론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하나. 1월 1일은 지난 지 오래였지만, 설날이 되어 친척들과 상에 둘러앉아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나이를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설은 나이를 먹는 날이다. 나이를 먹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렇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다는 말은 믿지 않게 된 지 오래지만, 친척들의 뼈 있는 말들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해주기 때문에 그렇다.
으레 올해는 몇 살이냐는 물음이 날아든다. 그 물음은 이내 "올해는 ○○해야지"라는 말로 뒤바뀌었다. 가장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여덟 살이었다. "올해는 초등학교 들어가겠네." 당연했다. 여덟 살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였다.
몇 살이라고? 그러면 이래야겠네하지만 나이를 점차 먹어가면서, 그 질문은 곧 공포와 부담을 뜻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부쩍 성적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딱히 수재도, 영재도 아니었던 나는, 그 질문 뒤에 이어지는 공부 잘한다는 먼 친척 누구누구의 이야기에 주눅이 들 뿐이었다.
해가 갈수록 그런 질문도 점차 늘어났다. "공부 잘하지?"라는 질문은 예사. 수능을 보기 전 맞았던 마지막 명절에는 온갖 불안과 기대와 걱정을 마주해야 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군대에 언제 가느냐는 질문을, 그리고 취업과 학점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들어야 했다.
유독 나만 이런 질문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어린 친척들은, 내가 그 나이 때 들었던 말들을 그대로 듣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사촌은,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설마다 견뎌야 했다. 아마 다음 차례는 내가 되리라. 그렇게 설날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설날마다 나이를 먹었음을 실감했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무척 보편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말들을 하고, 또 듣는 게 내 가족만의 일은 아니었으니까. 명절 때마다 집안 친척들의 잔소리가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 사람들,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취업준비생이거나 결혼할 나이가 됐거나,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할 나이'의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