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걸린 국회의원상친정 거실에 걸린 국회의원상
강정민
친정에 가는 날, 상장을 가지고 갔다. 상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신다. 아버지가 물으신다.
"아이고 이게 누가 준 상이라고?""국회의원이.""얼마나 잘 썼으면 국회의원이 상을 다 주냐?""백일장에 성인들은 별로 참가 안 하잖아? 경쟁률이 낮으니까 내가 상을 받은 거지.""그래도 글을 잘 썼으니까 받지 아무나 받냐?"아버지가 어디다 둘지 고민하신다. 식탁 위의 달력을 치우고 상을 건다. 상장 액자는 식탁 위 가장 좋은 자리에 떡하니 걸린다. 우리 집에서 찬밥 대우를 받던 상인데 친정에선 대접이 다르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진작 저런 상을 받아올 걸 하는 후회가 든다.
하긴 학생 때 나는 글쓰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학생 때 백일장에 나가 국회의원상을 받아 왔다면, 아니 '입선'만 했더라도 동네방네에 자랑하고 다니셨을 거다. 그리고 내가 크면 작가가 될 거라며 부모님은 철석같이 믿으셨겠지. 마흔이 넘은 딸이 동네에서 받은 상을 뭘 이리 좋아하실까? 하긴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오죽이나 한 일이 없으니 이렇게 좋아하시는 거겠지.
한 해 전, 남편이 승진했던 일이 생각났다. 남편은 회사에서 중요 업무를 담당하는 자리로 승진했다. 시댁과 친정 부모님께 전화해서 승진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며칠 뒤 친정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아범 승진 축하한다고 양복을 해 입으라고 돈을 보내 주신다고 하시는데."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자식이 부모님에게 옷값을 받는 게 정상은 아니다 싶었다. 친정 아버지는 남편의 승진에 감회가 남달랐던 모양이었다. 자식인 내가 승진한 것도 아닌데 사위가 승진한 게 뭐 그리 좋으실까. 사실 승진으로 남편이 바빠지기는 하지만 월급이 많이 오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위 승진을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자식인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취를 이뤘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넌 뭘 하든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식탁 위에 떡 하니 걸려 있는 국회의원상을 사진으로 찍어 남편 카톡으로 보냈다.
"엄마랑 아버지가 국회의원상 받았다고 무척 좋아하신다.""그러니까 빨리 책 내세요. 돌아가시기 전에 딸 이름으로 책 나오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냐?"상 받는 것도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진짜 내 이름으로 된 책이라도 낸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내가 여태 써 놓은 글을 모아 책을 내면 어떻겠냐는 말을 남편이 가끔 했다. 실력도 없는 내가 책을 낼 생각을 한다는 게 쑥스러웠다. 자비 출판이라면 내 돈이 아깝고 출판사에서 내준다 하더라도 출판사 돈이 아까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상 하나에도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 돈 들여 자비 출판하는 것도 효도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만일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나중에 책이 나오면 '글 좀 부지런히 써서 책 조금만 일찍 낼걸…' 하고 후회할 게 뻔하다. 얼마 전 엄마가 해 준 말도 생각이 났다.
"너는 뭘 하든 다 잘 될 거야.""왜?""이건 너희 아버지한테도 내가 말씀 안 드렸는데. 네 태몽이 진짜 좋았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엄마의 이야기 속엔 나에 대한 기대가 담뿍 담겨 있다. 엄마의 눈에 난 아직도 모든 가능성이 열린 청춘인가 보다.
세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안주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겼다. 내 작은 성취에도 기뻐하시는 팔순의 부모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나는 아직도 성장을 멈추지 않은 '푸른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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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푸대접 받던 상장, 친정에 들고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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