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튀김제굴은 '하스스톤'에 지르려고 했던 세뱃돈으로 식재료를 샀다.
원형탈모 생긴 아빠를 위해서 굴튀김을 했다.
배지영
"그날 밤에 엄마랑 아빠랑 나랑 텔레비전 봤잖아요. 어떤 사람이 굴튀김 만드는 거 보면서 아빠가 '맛있겠다'고 했어요. 나도 만들어보고 싶었고요. 사실 나는 아빠한테 원형탈모 온 거 보니까 너무 슬펐어요. 그런 건 스트레스 때문이잖아요. 집에서 아빠가 힘든 일은 나랑 꽃차남이랑 싸우는 것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안 싸워요. 결심했어요."2월 10일 아침, 제굴은 아침에 놀러 나가면서 "아빠! 바빠도 저녁밥 드시러 집에 오세요, 맛있는 것 해놓을게요"라고 했다. 남편은 오후 6시도 안 됐는데 집으로 왔다. 친구들이랑 놀던 제굴은 석류, 레몬, 굴, 치즈, 우유를 또 세뱃돈으로 사 왔다. 같이 놀던 친구 주형이한테 "우리 집 가자, 밥해줄게"라면서 데리고 왔다.
제굴은 토마토 퓨레를 써서 토마토 파스타 소스를 만들었다. "유레카!" 목욕하다가 왕관의 무게 재는 법을 알아낸 아르키메데스처럼 흥분했다. "우와! 이거 쓰니까 훨씬 맛있어"라면서 기뻐했다. 주방보조가 돼 채소를 씻던 주형은 덤덤했다. 제굴은 다시 평온한 자세로 토마토와 치즈를 썰어서 샐러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날 본 굴튀김을 했다.
"생굴에 후추랑 소금을 조금 뿌려서 밑간을 해요. 밀가루, 달걀 물, 파슬리 가루를 섞은 빵가루를 접시 세 개에 따로 준비하고요. 생굴을 거기에 차례대로 묻혀요. 그때 나무젓가락에 튀김옷이 좀 묻거든요. 그걸 살살살 긁어서 기름에 넣어요. 그게 온도계에요. 튀김옷을 기름에 넣고 가열하잖아요? 튀김 옷 주변에 거품이 생기면, 180℃ 정도 된 거예요." 나는 마음이 바빴다. 남편은 밥상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 항상 "뭐 볼 게 있다고 그래!"라고 한다. 원형탈모가 생긴 남편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줘야 한다. 제굴이가 차린 밥상을 몇 컷만 후딱 찍고 밥을 먹었다.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많이 먹어본 주형은 굴튀김이 맛있긴 한데 "아직까지는 (제굴) 아빠 밥이 더 맛있어요"라고 했다.
원형탈모 남편 "나 머리카락 좀 났어?"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고, 부엌을 정리하는 것도 제굴의 일. 남편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나는 약초로 만든 발모 스프레이를 남편 뒤통수에 뿌려줬다. 톡톡톡 두드렸다. 남편은 "봐봐. 머리카락 좀 나?"라고 물었다. 음하하하! 나는 노안이 오지 않은, 남편보다 네 살이나 젊은 아내. 뚫어져라 쳐다봤다. 휑한 자리에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돋아나 있었다.
연휴 마지막 밤, 남편과 제굴은 집에서 입는 정장차림(팬티와 런닝)을 포기했다. 주형이가 자고 가기 때문에 반바지를 갖춰 입었다. 우리는 다 같이 <라디오스타>를 봤다. 평상시 제굴은 아빠가 "따뜻한 물" 하면 못 들은 척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잽싸게 부엌에 갔다 왔다. 나는 틈틈이 남편의 머리에 발모 스프레이를 뿌리고 스며들게 두드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