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야지가 튈 때 힘들어... 가서 몇번 깽판 쳤죠"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30대 건설노동자 진혁씨 이야기

등록 2016.02.19 16:21수정 2016.02.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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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힘들고 어려운 일을 '노가다'라는 일본어로 표현하곤 한다.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거나,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막일)을 뜻'한다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래서인지, 작업 공간이나 도구의 특성상 몸을 많이 쓰고 거친 노동이 많은 건설 현장의 일을 노가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그러나 건설업 '노가다'가 정말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막 일하는 그런 노동일까?

우여곡절 끝에 발을 들인 건설현장

 건설현장.
건설현장. pixabay

지난 1월 18일 공사 현장에서 좀처럼 보기 드믄 30대 젊은이인 오진혁(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요즘, 모처럼 큰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감이 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예사지만, 최근 몇 개월은 대형 건설사가 짓고 있는 고층 건물 현장에 투입되어 수도권에서 일하고 있다. 현장 일을 하는 대다수가 40~50대라서 그는 아주 젊은 축에 속한다. 진혁씨 연령의 사람들은 단기간 돈을 벌러 잠깐 알바하러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이미 현장에서 일련의 기술을 가지고 일하는 '기공'이 되었다.

"저희 팀이 하는 일은 건물 내부 벽, 그러니까 벽체와 천장을 만드는 일이에요. 제가 젊은 축이지요. 제 나이대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저도 뭐... 처음에 이 일 시작할 때는 우여곡절 끝에 돈이 필요해서 시작하게 되었죠.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게 장래희망(꿈)인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어쨌든, 이 일한 지 6년쯤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용역부터 시작했죠. 왜, 인력 사무소 있잖아요. 거기서 일 받아서 청소도 하고, '곰방'이라고 부르는 등짐 지는 일도 하고요. 빠루(굵고 큰 못을 뽑을 때 쓰는 연장) 들고 철거하는 일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15명 정도가 현장에 함께 움직이는 '팀'에 속해 일해요. 공사 현장에 가서 벽체 인테리어, 천장만 딱 담당하는 그런 팀이죠. 건물 외벽 말고 내부에 있는 벽들은 다 만드는 거예요."

초짜는 데모도, 숙련 노동자는 기공

자주 바뀌기는 하지만 거의 10~15명 정도로 유지되는 이 팀 안에서 진혁씨는 설계 도면을 읽을 줄 아는 기술자이다. 물론 벽을 세우는 그 자체의 노동도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설계 도면을 볼 줄 알고 도면대로 벽을 세울 위치를 알고 일할 수 있는 '기술'을 더 숙련된 노동으로 쳐준다.


기공은 바로 이런 숙련 기술을 갖고 있는 노동자로서,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일하며 배우려고 하면 1~2년 정도 후 '준기공' 시절을 거쳐 될 수 있다. 현장 경험이 별로 없고 이 숙련기술이 없는 이는 소위 초짜, '데모도(조공)'라고 하는데, 10년차가 되어도 데모도로 남을 수도 있다.

"기공이냐 데모도냐, 경력에 따라 당연히 임금도 차이가 나요. 기공은 요즘 능력에 따라 12만~15만 원 사이를 받고요, 준기공은 평균 10만 원 정도. 데모도는 제가 일 시작할 때만 해도 6만5천 원이었는데 지금은 좀 올라서 8만5천 원부터 받을 겁니다. 이 노임은 하루치 일당('품'이라고 부름)으로 쳐주기도 하지만, 물량 당 정하기도 해요. 헤베당 얼마, 이렇게요. 아, 헤베는 평방미터(㎡)를 일본식으로 부른 거예요. '데모도', '오야지', '데나오시', '야리끼리' 현장에서 이런 일본어를 자주 쓰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죠? 저도 처음엔 못 알아들었어요."


진혁씨가 이쪽 판에 들어와 했던 용역으로 시작했던 곰방이나 철거일 같은 경우, 특별한 기술 없어도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팀에 소속되어서 벽 세우는 일을 배우고, 데모도에서 기공이 된 것이다. 설계 도면을 보는 일은 딱히 누가 앉혀놓고 가르쳐 준 것은 아니다.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동료 형님들에게 배운 것이다. 물어보면 잘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웬만해선 기술을 안 가르쳐 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힘들게 일하면서 배운 기술이고 이게 자신의 밥그릇이니 남에게 쉽게 주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그는 말했다.

오야지에서 오야지로 연결된 구조, 임금 사고 잦아

"품당이든, 헤베 물량 당이든, 계약된 노임 안에 우리 공구비, 식대, 숙박 비용, 차량비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실수령액은 그 부대 비용을 제하고 오야지(하청을 준 사업자) 수수료 떼고 받게 되는 겁니다. 한 오야지가 여러 팀을 데리고 한 현장에 들어가요. 근데 오야지 밑에 한 팀 중에서 또 물량 대비 사람이 딸리면 또 다른 소수의 팀을 데리고 머릿수를 채워서 계약을 하기도 하지요. 이때 한 오야지 밑에서 같은 노임으로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가 또 작은 오야지가 되어서, 데리고 온 팀에게 일정 수수료를 떼고 노임을 전달하는 수도 있죠. 우리는 이렇게 하청에 하청으로 내려가면서 오야지가 수수료를 떼는 걸 '똥 떼먹기'라고 부릅니다."

노임에 대해 묻다가 건설 산업의 다단계 하청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진혁씨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여러 번 설명해 주었지만 이해가 쉽지가 않을 정도로 복잡했다. 건물 하나를 만들 때 내장, 설비, 전기, 외장으로 크게 영역을 구분할 수 있고 각 부문마다 또 미장, 목공, 도배 등등 여러 가지 전문 영역으로 나뉜다. 이를 채우는 노동자들이 나뭇가지 갈라지듯 오야지에서 오야지로 갈려 엮어져 있는 셈이다.

"보통 아침 7시, 동절기엔 7시 반 출근해서 오후 5시 반에 끝납니다. 토요일은 당연히 다 나가고, 일요일도 물량에 따라 안 쉬고 쭉 일할 때도 많습니다. 공사 현장 근처로 숙소를 잡아줄 때도 있지만 특히 지방 현장의 경우 숙소랑 거리가 멀 때는 정말 고역이죠. 저도 예전에 일반 직장 다닐 때는 새벽 2~3시까지 깨있고 그랬는데, 이 일 시작하고서는 술자리가 있어도 9시엔 끝내고 10시 전에는 자요.

그래도, 저는 이 일이 할 만한 거 같긴 해요. 육체적으로 물론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일 안 끊기고 착실히 하면 벌이도 되는 편이고. 근데 오야지가 돈 안 주고 날라서 임금 사고 날 때가 종종 있긴 합니다. 일 자체보다 임금 사고 있을 때가 제일 힘들어요. 지금 현장처럼 시공사가 대기업이면 거의 100% 보전을 해주는데, 작은 현장은 짤 없거든요. 오야지 찾아가서 깽판이라도 쳐야 하는데. 저도 몇 번 엎으러 간 적 있어요."

큰 현장일수록 안전 관리를 잘 한다고 하지만...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건설 현장은 위험하고, 실제로 산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산업이다. 2014년 산재 사망 노동자 1850명 중 486명이 건설업 종사자다. 산업별 재해 사망자 중 가장 많다. 진혁씨가 건설 노동자로 직접 경험한,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현장의 조치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큰 건설 현장일수록 안전 관리를 더 철저히 하려는 거 같긴 해요. 현장 투입되기 전 기초안전교육 4시간 받고 들어가고요, 1달 1회 정기 안전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대기업이 시공사로 있는 큰 현장은 안전관리자가 까다로워요. 허가받은 곳에서만 작업할 수 있게 되어있고, 공구도 허가 스티커 발부받은 것만 사용할 수 있게 해요. 근데 이런 큰 현장은 많지가 않죠. 공장 짓는 천안・수원 쪽이나 영종도 쪽, 지방에 마트 몇몇 곳 정도."

안전점검이 비교적 철저하게 이뤄지는 대기업 발주의 현장은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안전 관리는 외주 하청을 주기 때문에 비정규직인 안전담당자가 실효 있는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타 업종에 비해 일터의 물리적 환경이 더 위험한데도, 현장에서 다쳤을 때 산재처리를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심각하게 다치는 일이 아닌 이상, 산재처리를 요구하면 공사 현장에서 바로 퇴출될 수도 있다고 진혁씨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막노동이 아닌 필요를 채우는 노동인 건설노동자

진혁씨를 인터뷰하며 최근 보도된 호주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건설업 사용주 이익단체인 '호주건설협회'가 "호주 일부 지역 비숙련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높아서 수익이 안 난다"라며 불평했다는 내용이었다. 읽어보니 현지 엔지니어나 경찰, 교사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걸 보며 호주에서는 건설노동자가 '막'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나 엔지니어 같이 한 특정 영역의 전문가로 그 노동을 평가하고 있구나 싶었다. 임금은 단순히 금액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 사회의 '관점'이 임금 액수라는 숫자에 녹아 있는 것이다.

건설 현장의 일은 아주 힘든 일이란 인식이 보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꿈꾸는 노동과 직업이 아니기도 하다. 소위 3D업종으로 분류하며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하기 어려운 일인지 표현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쁘거나 천한 일은 아니다. 의·식·주를 인간생활의 3요소로 부르는 만큼, 주거 공간을 만드는 일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내가 하지 않고, 못하는 그 일을 누군가의 수고로운 노동이 채워주고 있다. 우리가 막노동이니, 노가다니 하며 '막' 부르는 그 노동이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하나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하였습니다.
#막노동 #건설막노동 #건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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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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