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과잉 억지', 북한은 안 변한다

한반도 상황 몰이해만 드러낸 박 대통령 국회 연설

등록 2016.02.17 07:48수정 2016.02.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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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국민 여러분, 이제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개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고, 북한의 핵 능력만 고도화시켜서 결국 한반도에 파국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의 기만과 위협에 끌려 다닐 수는 없으며, 과거처럼 북한의 도발에 굴복하여 퍼주기식 지원을 하는 일도 더 이상 해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하며,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행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 중 일부다. 연설문 곳곳에서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박 대통령의 결심이 엿보인다.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보며 문득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과연 북한이 변화할 것인가? 그래서 박 대통령, 더 나아가 미국과 국제사회가 원하는 대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폐기할 것인가?

먼저 '퍼주기식 지원'을 중단하면 북한이 핵·미사일을 폐기할 것이란 발상은 순진하다.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해 3월 중국-북한 접경지역인 단둥 현지 취재를 통해 북한이 중국과의 암묵적인 커넥션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렇게 전했다.

"북한의 압록강 바로 건너편의 복합단지에서 '중국산' 제품을 생산하는 섬유공장들은 북한 경제의 번영을 지원하는 숨겨진 세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북한인들이 운영하는 이 공장들은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의류를 생산해 수출한다. 북한 공장의 번창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북한의 돈줄을 죄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인식이 틀렸음을 입증한다."

이제까지 미국은 돈줄만 죄면 북한이 백기를 들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북한은 영리했다. 북한은 단둥에 기업을 세우고 중국은 물론 남한, 심지어 미국에 상품을 팔아 이윤을 챙겨왔다. 북한으로서는 단둥 일대 공장들이 제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만인 셈이다. 반면 개성공단이 북한의 대외무역에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폐쇄한다고 해서 북한이 당장 자금마련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핵·미사일 권리 저당잡히지 않아 

두 번째 북한은 설사 자금 흐름이 막혀도 핵, 미사일에 집착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줄곧 상시 포위 심리에 시달려왔다. 한반도 문제의 최고 권위자인 셀릭 해리슨은 그의 저서 <코리안 엔드게임>에서 상시 포위 심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은 미국의 핵전력과 주한미군의 존재가 북한으로 하여금 안보위협을 느끼게 하고 그 반작용으로서 군사적 대응을 준비해 왔다."

다시 풀이하면 북한은 미국이 남한에 배치한 지상군과 핵전력으로 공격해 올지 몰라 항시 불안해 한다는 설명이다. 셀릭 해리슨은 상시 포위 심리를 설명하면서 미국이 북한을 '과잉억지'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역시 이 지적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핵 카드를 꺼내 든 건 미국의 억지력을 상쇄하기 위한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셀릭 해리슨은 미국이 과잉억지의 칼날을 거두기 전에는 북한이 절대 핵 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이 같은 전망은 지금 시점에 더없이 유효하다.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미 공군에 의한 예방적 공격 위협을 제거 또는 감축하는 군비 통제 협정에 참여하지 않는 한, 자신의 핵 프로그램과 미사일 능력을 개발하는 권리를 저당 잡히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무척 미묘하고, 돌발변수도 많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부터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과연 대통령의 공언대로 핵개발이 북한 체제의 붕괴를 재촉할까?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처음 제기된 시점은 1982년이었다. 지난 해 7월 타계한 고 돈 오버도퍼는 <두 개의 한국>에서 북한 핵의 기원을 상세히 다룬 적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82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은 미국의 정찰위성은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1백 km 떨어진 영변의 한 강가에서 원자로와 비슷한 시설이 건설중인 모습을 촬영했다. 수수께끼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88년 미국의 정찰위성은 또 다시 심상치 않은 동향을 잡아 냈다.

"북한이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에 성공한 최초의 영변 원자로 1호는 전력 생산능력 5MW급으로 분류되는 비교적 소형 원자로였다. 그런데 1988년 6월 이보다 훨씬 거대한 원자로가 영변에 건설되는 장면이 위성 카메라에 잡혔다."

북한이 핵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 시점은 1980년대 말이었다. 이후 북한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대기근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북한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핵 카드 역시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핵 기술을 고도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 그리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맞불을 놓았다. 이러자 즉각 중국, 러시아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대목에서 빌리 브란트와 함께 '동방정책'을 펼치며 독일 통일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에곤 바의 사례를 살펴보자. 에곤 바는 선험적인 목표를 두지 않았다. 그저 4대 전승국의 이해 없이는 독일 통일은 요원하다는 인식 하에 움직여 나갔다. 그가 생전에 남긴 회고록의 한 대목은 무척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는 4개국을 조심스럽게 장악하여 노련하게 이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빌리는 자제하고 신중할 것을 충고했다."

독일과 달리 현 정권은 자제와 신중보다 북한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일변도의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미묘함에 대한 인식도, 미일중러 등 주변 4대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도 없다. 대통령 이하 현 정권의 각료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2013년 5월 개성공단은 한차례 존폐기로에 놓였었다. 당시 '개성공단 제1호 기업' 에스제이테크의 유창근 대표이사는 "모든 이들이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로 (개성공단이) 폐쇄된다면 역사가 두고두고 그 폐쇄의 책임을 묻고 평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3년 뒤, 개성공단 입주기업뿐만 아니라 남북화해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이 똑같은 경고를 내놓고 있다. 현 정권은 역사의 죄인이 되고자 하는가?
#셀릭 해리슨 #돈 오버도퍼 #에곤 바 #박근혜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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