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 성관계 사건, 검찰 수사가 제일 아쉬웠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나흘간의 기억> 제20화, 최종편

등록 2016.03.21 12:55수정 2023.04.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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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09년 7월 6일 전남 황전면에서 일어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검찰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로 어머니를 죽인 범인으로 남편과 딸을 지목했다. 그 후 부녀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각각 무기징역과 실형 2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부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검찰 수사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독자 대다수와 인연이 없는 이 부녀의 인생살이를 이 연재물에 담았다... -기자 말



(19화 :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흥미를 보인 검사 편에서 이어집니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서 검찰은 어느 정도 현장을 챙겼는지 살펴본다.



8월 18일, 순천경찰서는 백희정에 대한 강간과 강제추행 사건을 순천지청에 넘긴다. 강남석 검사는 이 사건에 흥미를 보였다. 당시 검찰 관계자가 쓴 기록을 보면 사건 서류를 받은 나흘째인 8월 21일 오전 강남석 검사는 사건 해결 의지를 살짝 드러낸 것으로 돼 있다.




국밥집 주인이 막걸리 판 사람은 다른 용의자?



 
 사건에 관심보이는 검찰
사건에 관심보이는 검찰 공갈만
검찰도 당시 경찰이 다른 용의자를 수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송순대국밥집 주인이 7월 5일경 백경환씨 부부가 아닌, 다른 손님 부부에게 작은 막걸리를 판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대송순대국밥집 주인 기억
대송순대국밥집 주인 기억 공갈만
검찰 관계자 수기를 보면 검찰은 8월 21일 점심을 먹고 바로 대송순대국밥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수기 내용은 실제 식당 주인 기억과도 같았다.



당시 남자 주인은 검찰에게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경찰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며 "나도 장사를 해야 하니 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번 한 번으로 끝내자"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 수기에도 남자 주인 태도가 '더는 찾아오지 말라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적혀 있다.



이때 검찰은 남자 주인에게 한 가지 재연을 부탁한다. 당시 손님에게 막걸리를 판매할 때 어떻게 비닐봉지에 담았는지 보여 달라고 했다. 당시 식당 벽 한쪽에는 철사로 꿰어진 채 매달린 비닐봉지 뭉치가 있었다. 주인은 거기서 비닐 한 장을 툭 떼어내 막걸리를 넣었다.



검찰은 7월 6일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비닐봉지에는 이처럼 가운데가 찢긴 모양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손님이었다던 부부도 막걸리 구입 사실을 부인했다. 국밥집에 간 시점을 부인은 "작년 긴 소매 옷을 입었을 때"라고 말했는데 7월 날씨와는 전혀 맞지 않는 진술로 판단했다.



21일 현장조사에서 검찰은 경찰 수사가 미덥지 못하다는 확신을 얻게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항소심에서 이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항소심이 2011년 11월 11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시작됐다.



변호인 측은 재판이 시작되자 CCTV 자료 제출 요청으로 포문을 열었다. 검찰 공소장에는 '피고인 백경환은 이와 같은 범행 계획에 따라 2009.7.2. 18:00경.. (중략)... 자신의 집에서 화물차를 운전하여 순천시 풍덕동에 있는 아랫시장 내 장원식당에서'라고 적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는 검찰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검찰은 '고흥 살인의 추억 사건'처럼 경찰에 기댔다.



검찰은 "경찰 초동수사에서 가지고 있던 CCTV 자료가 뇌우에 맞는 등 경찰 내부에서 문제가 있어 제출하지 못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 수사가 시작될 즈음 '부녀 성관계' 제보


 
 경찰에 문제를 돌리는 검찰
경찰에 문제를 돌리는 검찰 공갈만
그리고 검찰 수사가 시작될 즈음에 경찰에게 부녀 성관계 제보를 받았다고 진술한다.


 
 경찰에 기대는 검찰
경찰에 기대는 검찰 공갈만
취재하면서 만난 당시 순천경찰서 관계자들은 검찰이 재판에서 경찰 수사기록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수사권과 수사종결권, 그리고 기소권은 모두 검찰에게 있다.



당시 경찰 수사에서 용의자 백씨가 진술을 바꾼 부분은 어떻게 됐을까.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용의자 자백 번복과 비슷한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다. 2009년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을 담당했던 순천경찰서 하권삼 형사과장 예를 보자. 순천 사건으로부터 2년 전 여수경찰서 형사과장 시절로 거슬러 가보자.


 
 2009년 순천경찰서 형사과장 하권삼
2009년 순천경찰서 형사과장 하권삼 SBS
2007년 3월 19일 여수에서 5살 여자 아이가 실종됐다. 하지만, 이 실종사건은 나흘 뒤 살인사건으로 밝혀졌다. 범인은 친아버지였다. YTN이 2007년 3월 23일 방송한 '5살 친딸 살해한 비정의 아버지'라는 뉴스를 살펴보자. 옷차림 때문에 형이 용의자로 몰리자 범인이었던 동생은 형에게 혐의를 떠넘기려 했다. 이를 눈치 챈 형은 죄를 본인이 뒤집어쓰려 했지만 시신 버린 곳을 진술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동생 대신 형이 용의자로 몰렸을까?



당시 이 사건 관계자는 CCTV에 찍힌 사람이 마치 형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CCTV화면 분석에서도 그 찍힌 시간대에 그 옷차림을 하고 가서 찍어서 어떤 색깔로 보이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다. 당시 CCTV에 찍힌 모습만으로 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은 혐의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만 대답하지 못했다. 형은 당시 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곧 다른 증거들이 발견됐고 경찰은 결국 동생에게서 자백을 받아냈다. 동생은 '재혼하려고 할 때마다 딸이 걸림돌이어서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이 사건 관계자는 형이 CCTV에 찍힌 인물이 동생인 걸 바로 알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형은 경찰에게 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신 위치를 확인하고 자신이 뒤집어쓰려 했던 것이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판 1심에서 백경환은 자백 이유에 대해 "제가 짊어지려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히 백경환씨는 검찰 조사에서 처음에는 부인을 했고 이렇게 변명도 했다.



"현장에 가보면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알 겁니다."



법정에서 진술을 바꾼 식당 주인



말을 바꾼 것은 백씨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막걸리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장원식당 주인도 항소심에서는 진술을 바꿨다. 검찰은 항소심 재판에서 장원식당 주인을 증인 신청했다. 검찰은 장원식당 주인이 작은 막걸리도 팔았다는 취지로 다시 증언할 것이라고 했다. 어찌된 일일까? 장원식당 주인은 정말 작은 막걸리를 팔았을까?



장원식당 주인은 1심에서 부녀가 무죄 판결을 받자 검찰이 항소했고 자신을 다시 불렀다고 했다. 그는 그때 검사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했다.



"당신 때문에 졌어!"



장원식당 주인은 처음에는 "대송순대국밥에서 막걸리를 수사하다가 그 화살이 우리에게 왔다"고 표현했다. 이는 무슨 말일까? 이제 대송순대국밥으로 가보자. 다음은 대송순대국밥집 주인 부부가 들려준 이야기다.



경찰이 어떤 용의자를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탐문수사를 했다. 경찰들은 대송순대국밥집에도 왔다. 주인 부부는 기억을 더듬다가 7월 5일경 식당에 온 어떤 손님 부부에게 작은 막걸리를 판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형사들 역시 식당 주인 부부에게 옷차림을 물어봤다. 부부는 자신들이 기억하는 옷차림을 이야기했다. 당시 손님 옷차림은 '얇은 긴소매 남방 티셔츠' 차림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한 형사가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말하며 어딘가 전화를 했다. 잠시 후, 경찰이 옷들을 들고 와서는 식당에다 펼쳐놓았다. 형사는 이 옷 중에서 골라보라고 부탁했다.



그 이후로 형사들이 더욱 빈번하게 국밥을 먹으러 왔다. 식사를 하면서 슬쩍 질문을 했다. 처음 경찰에게 짜증을 냈던 부부도 차츰 마음이 달라졌다. 그 더운 8월에 매일 국밥을 먹으러 오는 형사들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한 형사가 식당 주인 부부에게 최면수사를 부탁했다. 이를 받아들이면 식당 주인은 하루 생업을 접어야 했다. 결국, 남자 주인이 형사와 함께 전북경찰청으로 가서 최면수사를 받았다. 그는 최면수사를 마치고 펼쳐진 상황에 난감했다고 한다.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서명까지 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은 다른 사람들 사건에 끼어드는 일이라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정말 이것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자 형사들은 절절한 표정으로 "그럼 어쩌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경찰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직접 옆에서 봤기에 서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생 바꾼 수사, 의문은 남았다



그렇다면, 검찰이 발견한 '비닐봉지'에 관한 의문을 경찰은 확인했을까? 대송순대국밥집 주인 부부는 당시 경찰이 단지 비닐봉지를 가져가기만 했다고 한다. 사건에 쓰인 것과 같은 재질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여자 주인은 당시 비닐봉지를 항상 철사에 꿰맨 상태로 두지는 않았다고 했다. 손님에게 막걸리를 팔 7월 5일 당시에는 아래 바구니에도 비닐봉지를 넣어두고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막걸리를 비닐에 담아 건넨 것은 남자 주인이 아니라 여자 주인이었다. 검찰은 최면수사를 남자 주인이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가 당연히 팔았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막걸리를 산 것은 부부가 같은 장소에서 함께 보았기에 남편이 부인을 배려해 최면수사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검찰이 재연을 부탁할 때 남 주인은 왜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왜 그렇게까지 검찰에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을까?



식당 부부는 검찰이 한창 바쁠 때 찾아와 질문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늦은 밤에도 전화를 걸어 질문을 하는 게 몹시 불쾌했다고 한다.



검찰은 백희정이 자백하기 전 이러한 사실 관계를 확인했을까? 검찰 관계자 수기를 보면 백희정이 8월 24일 자백하고 난 이튿날, 강남석 검사는 순천경찰서에 전화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범인을 검거했으니 경찰 수사기록 일체를 검찰에 넘기라'고 지휘한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순천경찰서는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수사 서류를 가져왔다고 한다.


 
 검찰로 사건 송치
검찰로 사건 송치 공갈만
살인사건 전체 기록은 8월 25일 검찰에 도착했는데, 검찰은 8월 21일 대송순대국밥집 현장으로 나갔다. 이를 고려해 보면, 검찰이 살인사건 전체 기록을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경찰수사 기록에 '긴소매 복장' 진술이나 '비닐봉지'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취재하면서 만난 전직 형사과장은 경찰들 중에도 '얼렁뚱땅' 조사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판단할 때 검찰이 경찰 살인사건 수사기록을 읽어봤어야 하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경찰에 비해 검찰은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셈 아닐까. 경찰 수사도 완벽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말이다. 부녀 진술에 의존한 수사로 두 사람은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연재한 부분에서 설명했듯이, 부녀의 진술에도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꾼 수사가 의문점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마무리된 것은 꽤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그동안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연재기 '나흘간의 기억'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당시 사회적 흐름을 살펴보자. 순천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항소심이 2011년에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항소심 진행 중에, 경찰과 검찰 조직 간에 지각변동을 예고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2010년 8월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된 것이다. 모처럼 강성인 경찰청장이 등장하며 경찰 수사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2011년은 검찰과 경찰 조직 간에 긴장감이 팽팽했다.

물론 독자분들에게 조현오 전 청장은 차명계좌 발언 하나로 '공공의 적'이 됐다. 하지만, 이러한 검찰공화국 체제에서 검찰을 견제할 시스템을 고민했고 경찰청 범죄정보과 신설과, 지능범죄수사대 창설 등으로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 낸 이는 조현오가 유일할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검찰개혁을 위한 형사소송법 312조(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 등) 개정에 실패했지만, MB정부에서 형사소송법 196조 개정을 이끌어냈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다른 연재물인 <구겨진 제복>에 담았다.
#나흘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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