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순천경찰서 형사과장 하권삼
SBS
2007년 3월 19일 여수에서 5살 여자 아이가 실종됐다. 하지만, 이 실종사건은 나흘 뒤 살인사건으로 밝혀졌다. 범인은 친아버지였다. YTN이 2007년 3월 23일 방송한 '5살 친딸 살해한 비정의 아버지'라는 뉴스를 살펴보자. 옷차림 때문에 형이 용의자로 몰리자 범인이었던 동생은 형에게 혐의를 떠넘기려 했다. 이를 눈치 챈 형은 죄를 본인이 뒤집어쓰려 했지만 시신 버린 곳을 진술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동생 대신 형이 용의자로 몰렸을까?
당시 이 사건 관계자는 CCTV에 찍힌 사람이 마치 형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CCTV화면 분석에서도 그 찍힌 시간대에 그 옷차림을 하고 가서 찍어서 어떤 색깔로 보이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다. 당시 CCTV에 찍힌 모습만으로 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은 혐의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만 대답하지 못했다. 형은 당시 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곧 다른 증거들이 발견됐고 경찰은 결국 동생에게서 자백을 받아냈다. 동생은 '재혼하려고 할 때마다 딸이 걸림돌이어서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이 사건 관계자는 형이 CCTV에 찍힌 인물이 동생인 걸 바로 알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형은 경찰에게 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신 위치를 확인하고 자신이 뒤집어쓰려 했던 것이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판 1심에서 백경환은 자백 이유에 대해 "제가 짊어지려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히 백경환씨는 검찰 조사에서 처음에는 부인을 했고 이렇게 변명도 했다.
"현장에 가보면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알 겁니다."
법정에서 진술을 바꾼 식당 주인
말을 바꾼 것은 백씨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막걸리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장원식당 주인도 항소심에서는 진술을 바꿨다. 검찰은 항소심 재판에서 장원식당 주인을 증인 신청했다. 검찰은 장원식당 주인이 작은 막걸리도 팔았다는 취지로 다시 증언할 것이라고 했다. 어찌된 일일까? 장원식당 주인은 정말 작은 막걸리를 팔았을까?
장원식당 주인은 1심에서 부녀가 무죄 판결을 받자 검찰이 항소했고 자신을 다시 불렀다고 했다. 그는 그때 검사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했다.
"당신 때문에 졌어!"
장원식당 주인은 처음에는 "대송순대국밥에서 막걸리를 수사하다가 그 화살이 우리에게 왔다"고 표현했다. 이는 무슨 말일까? 이제 대송순대국밥으로 가보자. 다음은 대송순대국밥집 주인 부부가 들려준 이야기다.
경찰이 어떤 용의자를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탐문수사를 했다. 경찰들은 대송순대국밥집에도 왔다. 주인 부부는 기억을 더듬다가 7월 5일경 식당에 온 어떤 손님 부부에게 작은 막걸리를 판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형사들 역시 식당 주인 부부에게 옷차림을 물어봤다. 부부는 자신들이 기억하는 옷차림을 이야기했다. 당시 손님 옷차림은 '얇은 긴소매 남방 티셔츠' 차림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한 형사가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말하며 어딘가 전화를 했다. 잠시 후, 경찰이 옷들을 들고 와서는 식당에다 펼쳐놓았다. 형사는 이 옷 중에서 골라보라고 부탁했다.
그 이후로 형사들이 더욱 빈번하게 국밥을 먹으러 왔다. 식사를 하면서 슬쩍 질문을 했다. 처음 경찰에게 짜증을 냈던 부부도 차츰 마음이 달라졌다. 그 더운 8월에 매일 국밥을 먹으러 오는 형사들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한 형사가 식당 주인 부부에게 최면수사를 부탁했다. 이를 받아들이면 식당 주인은 하루 생업을 접어야 했다. 결국, 남자 주인이 형사와 함께 전북경찰청으로 가서 최면수사를 받았다. 그는 최면수사를 마치고 펼쳐진 상황에 난감했다고 한다.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서명까지 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은 다른 사람들 사건에 끼어드는 일이라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정말 이것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자 형사들은 절절한 표정으로 "그럼 어쩌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경찰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직접 옆에서 봤기에 서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생 바꾼 수사, 의문은 남았다
그렇다면, 검찰이 발견한 '비닐봉지'에 관한 의문을 경찰은 확인했을까? 대송순대국밥집 주인 부부는 당시 경찰이 단지 비닐봉지를 가져가기만 했다고 한다. 사건에 쓰인 것과 같은 재질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여자 주인은 당시 비닐봉지를 항상 철사에 꿰맨 상태로 두지는 않았다고 했다. 손님에게 막걸리를 팔 7월 5일 당시에는 아래 바구니에도 비닐봉지를 넣어두고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막걸리를 비닐에 담아 건넨 것은 남자 주인이 아니라 여자 주인이었다. 검찰은 최면수사를 남자 주인이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가 당연히 팔았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막걸리를 산 것은 부부가 같은 장소에서 함께 보았기에 남편이 부인을 배려해 최면수사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검찰이 재연을 부탁할 때 남 주인은 왜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왜 그렇게까지 검찰에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을까?
식당 부부는 검찰이 한창 바쁠 때 찾아와 질문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늦은 밤에도 전화를 걸어 질문을 하는 게 몹시 불쾌했다고 한다.
검찰은 백희정이 자백하기 전 이러한 사실 관계를 확인했을까? 검찰 관계자 수기를 보면 백희정이 8월 24일 자백하고 난 이튿날, 강남석 검사는 순천경찰서에 전화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범인을 검거했으니 경찰 수사기록 일체를 검찰에 넘기라'고 지휘한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순천경찰서는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수사 서류를 가져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