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상사를 다시 만났다, 처지가 역전된 상태로

[나는 고졸사원이다 49] 새 거래처 후보의 관리자

등록 2016.02.26 10:14수정 2016.07.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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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조직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간결한 조직구조와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 개개인의 성과를 빠르게 보상받을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직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간결한 조직구조와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 개개인의 성과를 빠르게 보상받을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pixabay

새로 취업한 회사에서 나는 입사 6개월만에 거래처 200여 곳이 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우리 회사의 '수입검사'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거래처에서 납품된 부품의 품질 문제로 인해 공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거래처에 '클래임'을 걸어 책임을 물었고 그로 인한 보상 절차도 만들었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그 프로세스대로 거래처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프로세스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일이 더 수월해졌고 회사는 눈에 보이지 않던 품질 원가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만든 프로세스로 인해 변화되는 우리 회사와 거래처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본적 없었던 희열이 느껴졌다.

중소기업에서 일을 한다는 건 인력이 부족하고 대기업에 비해 환경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모든 걸 이겨내고, 우리 회사가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많은 것이 부족하고 힘들지만 또 그만큼 나 자신이 우리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까지 콘트롤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중소기업에서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넘어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나는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15년이라는 시간을 직장에서 보냈다. 직장생활을 해온 15년의 시간 중 절반의 시간은 중소기업에서, 나머지 절반은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그렇기에 나는 누구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장단점에 대해서 잘 안다. 나의 성과에 있어 빠르고 확실한 보상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맞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말 그대로 회사 규모의 차이다. 회사의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조직을 가진 회사에는 그에 걸맞게 복잡한 룰이 적용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화합과 융화를 중시하게 된다. 그런 조직 분위기 속에서는 특출난 인재도 없고 특별히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도 잘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다르다. 간결하고 간소한 조직구조를 가지며 적재적소에 딱 필요할 정도의 인력으로만 구성돼 있다 보니 누구 하나가 자칫 '빵꾸'를 내면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줄줄이 문제가 발생된다. 또한 의사결정 구조 역시 간결해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빨리 시행할 수 있고 오너가 전 사원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똑똑한 인재'를 선별함에 있어 왜곡 가능성이 낮다.


고 성과자의 특진이나 보상에 대해서도 오너가 그때 그때 만들어서 시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한 대기업에 비해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고 빠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한다면 그 장점을 잘 활용해 적극적인 인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나는 우리 회사 품질보증팀의 막내였다. 직급으로는 나를 포함해서 총 3명이 같았지만 나이가 제일 어렸기에 우리팀의 막내는 나였다. 하지만 엄연히 나에게는 '담당 업무'가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선임들의 눈치는 볼 필요가 없었다. 직급도 나이도 모두 다른 팀원들에게는 모두 각자의 담당 업무가 있었고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신경쓸 수 있을 만큼의 인력이 아니었기에 모두 자기가 맡은 일을 쳐내기에 바빴다.

내가 하는 업무의 결정 권한은 오롯이 내게 있었다. 물론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재중인 팀장님을 대행하는 과장님께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내가 원하는대로 모든 일을 다 추진할 수 있었다. 가끔씩 사장님은 '관리 부서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문서에 대해서 대표이사까지 결재를 올려라'고 하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내가 새롭게 추진하는 일들에 대해 사장님에게까지 보고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올린 보고서에 가끔 사장님이 코멘트를 남겨서 내려오는 경우가 있었다. 오너의 피드백 문구가 써진 문서. 그걸 보고 있으면 진짜 '일'을 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오너와 직접 생각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중소기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점이다. 나는 이후 대기업에서 8년을 근무했지만 그 대기업의 오너를 단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다.

그저 TV에 나오는 연예인과 같은 사람이 바로 그룹의 오너였고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조직은 '충성'을 강요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충성을 한다고 해서 그 충성이 오너에게까지 가 닿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8년을 그 대기업에서 근무를 했지만 가끔 중소기업에서 허드렛일까지 다 도맡아서 하며 모두 함께 고생하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었다.

돌고 돌다 보면 다시 만나게 돼 있어요

미팅 새로운 거래처 후보를 평가하러 간 자리에서 이전 직장의 상사를 만났다
미팅새로운 거래처 후보를 평가하러 간 자리에서 이전 직장의 상사를 만났다pixabay

수입검사 담당자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을 무렵, 우리 회사는 북경에 있던 공장을 남경으로 이전했다. 북경 공장은 중국 기업과 합작으로 설립한 회사였는데 합작 법인을 철수한 뒤 우리 회사의 아주 큰 거래처인 대기업 중국공장을 따라 남경에 새로운 공장을 만들었다. 남경 공장이 만들어지는 동안 국내 생산 물량이 일시적으로 늘어났다.

국내 공장의 제품 생산은 모두 외주로 진행됐다. 사내 제조반은 검사 공정만을 보유한 상태였고 외주 업체에서 제품을 모두 만들어서 입고 시키면 우리 검사공정을 거쳐 박스에 포장해 바이어에 납품했다. 우리 회사의 제품은 LCD 모니터용 보드였다. LCD 패널에 우리 회사에서 만든 보드들을 결합하면 모니터가 완성된다. 국내의 수많은 LCD TV, 모니터 제조업체가 우리 회사의 바이어들이었다.

외주업체는 PCB(Printed Circuit Board)에 SMD(Surface Mount Device - 표면실장기술) 공정을 거쳐 수삽 작업까지 완료한 상태로 우리 회사에 납품한다. 우리 회사와 거래하던 두 개의 외주업체는 아주 영세한 회사였다. 중국 공장 이전에 따른 국내 물량 증가를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추가로 임가공 거래를 할 수 있는 외주업체를 한 곳을 더 찾기로 했다.

새로운 거래처를 찾을 때는 각 부서에서 다양한 업체 평가를 진행한다. 단가와 납기 부분은 구매전략팀에서 진행하고 우리팀에서는 거래처의 생산 환경과 품질 수준을 평가해 거래 가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각 부서의 팀장급 이상인 사람들이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 우리 회사는 이 마저도 수입검사 담당자인 나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졌다.

후보로 거론되는 업체 몇군데를 제조반장님과 함께 돌아다녔다. 환경이 아주 열악한 회사부터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회사까지 다양하게 돌아보며 각 업체 대표 및 관리자분들을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보 업체를 둘러보기 위해 왜관으로 갔다.

왜관에 있는 한 마을 안쪽에 새로 지은 조그만 2층짜리 공장이 보였다. 그 회사가 오늘 둘러볼 마지막 후보 업체였다. 이제 막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공장을 짓고 장비를 들여 놓았다고 했다. 새로 지은 공장이라 이전에 둘러본 열악한 환경의 회사들 보다는 관리가 용이할 것 같았다. 그 업체 대표님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미팅을 하는데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업체 대표님이 우리에게 관리자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내가 몇해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던 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분이었다. 당시 수삽 라인의 관리자로 있던 대리님이었는데 나는 당시 출하검사실에서 병역 특례 기능직 사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대리님이 볼 때는 까마득한 후배 사원이라고 생각을 했을 텐데 불과 2년만에 우리는 입장이 바뀌어져서 거래처 평가자와 평가받는 거래처의 관리자로 다시 만났다.

그 대리님은 나를 알아보고 예전처럼 반말로 인사를 하다가 이내 멈칫하고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편하게 대하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단 둘이 있는 자리도 아니었고, 상황이 여의치 못해 나 역시 무게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처음 산업기능요원이 되고 그 회사가 어려워져 이직하게 되면서 퇴직 인사를 전했던 거래처 부장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지금이 마지막인것 같아도 이 업계에 있으면 돌고 돌다 또 만나게 돼 있어요. 그러니 섭섭해하지 말아요."

당시 스물한 살의 어린 나에겐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렇게 이전 직장 상사를 '을'로 다시 만났고 그 분이 나를 대하는 모습이 예전과 다른 걸 보며 세상사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치도 못했던 후배 녀석이 자기네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평가자로 앞에 앉아 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들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런 일이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내 행동 하나 하나에 좀 더 신중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된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중소기업 #대기업 #거래처 #성과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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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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