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소녀들의 이야기 <귀향>

24일 귀향을 보러 갔습니다

등록 2016.03.02 16:12수정 2016.03.0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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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영화 <귀향>을 봤습니다.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다시 열린 수요 집회에 다녀온 후입니다. 산 넘고 물 건너 영화관에 갔습니다. 버스에 전철까지, 두 번이나 갈아탔습니다. 상영관이 없어서입니다. 영화표를 예매할 당시 상영관이 전국 57개였습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상영관이 50분 거리입니다. 5명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가는 길이 더 멀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게 된 이유도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이 영화가 14년간 개봉하지 못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며, 눈물 콧물 다 쏟았습니다. 정말 펑펑 울었습니다. 슬퍼서 울고 잔혹해서 울었습니다.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또 울었습니다. 스크린 안의 소녀들은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녀린 소녀를 일본군이 성폭행할 때는 끝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더 가슴이 아픈 것은 그들이 다시 '귀향'했을 때, 누구도 손 내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처를 후벼 파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울었어?"
"우리보다 어린 소녀들이 강제로 끌려갈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 함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났어."
"난 꼭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어. 할머니들이 모두 나머지 삶을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 우리도 이 사건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맞아. 할머니들이 겪은 일은 정말 충격적이야. 그동안 잘 몰랐는데, 앞으론 할머니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뭔가를 해보고 싶어."

저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엔딩크레딧'이 떠올랐습니다. 영화를 만든 제작진과 시민후원자들의 이름이 스크린에 끝없이 이어지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영화 개봉 당일 시민들의 힘으로 상영관이 300개로 늘어났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저는 세상이 두렵습니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면서 작은 행동이 큰 힘 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아니, 수십 년째 올바른 귀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수요 집회를 열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사이 풋풋한 소녀는 백발의 할머니가 됐습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인합니다.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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